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일승 Oct 29. 2021

우리도 국가대표였다(3)

우리가 준비했던 스위치 맨투맨은 정확히 말하면 런앤점프 ( Run and jump)switch man to man 으로 하프 코트 프레스 개념이었다.

러시아 필리핀 등에겐 아주 효과적이었지만 대만에는 그러지 못했다. 스피드도 좋고 순발력이 뛰어나 조금만 스위치가 늦으면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휘슬이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대만 과의 결승에서 도리어 3-2 zone이 효과를 봤다.

앞선 황성인 표명일 두 센스쟁이들이 패스를 예상하고 페이크로 하는 락스텝에 적잖이 당황한 대만 선수들이었다

아쉬운 승부였지만 선수들도 열심히 뛰어주었고 기대보다 웃도는 성적에 선수단의 분위기는 웃음기가 넘쳐났다

시상식을 마친 후  임원들은 대만 협회의 초대를 받아 회식에 참석을 하였다

단장님의 폭탄주 사랑이 지속될 때  젊은 선수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간 즈음 김승환 코치를 숙소로 들여보냈다

 


시상식에서 우리 팀 임원들과 함께

 

2차로 옮긴 장소는 노래방 같은 MTV는데. 노래방 기계와 테이블에 술이 놓여 있었다.

술은 조니워커 블랙 라벨이었다.

두 협회 모두 참석인원이 8명이었는데 테이블 위에 한 열 병정도 양주 모습이 우리를 기다렸다

"아 이놈들 정신 바짝 들었을 거야"

하지만 협회분들은

"단장님 그래도 조심하셔야 돼요"

이 친구들 술이 아주 세요 하면서. 평소 교류가 잦았던 협회 임원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이 보였다.

저쪽에 한 사람이 뭐라 일장 연설을 한다.

두 협회가 어쩌고 저쩌고. 우호증진. 등등 그런 얘기다. 당시 유학생이었던 아르바이트 통역 여학생은 술 취한 단장님의 대화를 통역하느라  힘겨운 모습이었다  술자리란 게 다 그렇듯 시간 지나면 하는 말  또 하고 또 하고  ᆢ

지금은 어엿한 교수님 되셨지만 그때는 아주 어려운 알바였을 것이다 나이 드신 분들 요구사항도 많고  한꺼번에 다 통역하느라 ᆢ


대만 임원들은 이제부터는 자신들 방식으로 술잔을 돌리겠단다.

맥주잔에 조니워커를 붓고 고량주 잔에 맥주를 섞는다.

아니. 이게..

우리 임원들. 고개를 전부 저었다.

하지만 우리 단장님 좋아 내가 이 놈들 모두 상대해 주지. 하며 혼자만 찬성을 한다.

" 자식들 얼마나. 버티겠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술을 모두 따르고 같이 원 샷으로 한다.

와...

대만 술 국가대표가 왔구나.  저렇게 잘 마시나.

원. 샷!

"맞다 대만 술 젤 잘마시는 사람 뽑아 왔어"

연신 심판 선배는 그들의 주량에 감탄을 한다

이렇게 양주에 맥주 조금 섞은 폭탄주는  벌써 7잔이 선수들 목을 적시고 있었다.

1차서 먹은 것도 있고 해서 어느 정도 일 줄 알았는데 이건. 술 약한 내가 볼 때. 인간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내가 목격한 술 대마왕은 기아 선수 시절 정덕화의 아버님 빈소에서 젊은 기아 선수들 상대로 1대 7로 상대를 하시는 당시 연세대 감독이신 김동원 감독님.. 지금은 인도네시아 계신데..

아무튼 그분 이랑 선수들이 마신 그날 밤 소주 한 짝을 더 먹었다. 한 짝은. 한 박스로 50병이었다.

선수들이 한 명 씩 드리면 마시고 바로 주신 그 장면.. 최소 20병 은 혼자 드셨다.

우리는 하마터면 관을 들다 패대기 칠 뻔했다. 다들 숙취에 고생을 했다.

산소를 오르는 길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아침에 김 감독님은 운전을 하시고 귀가를 하셨다. 당시에는 음주운전이 통념상 관대했던 37년 전 일이었다.

다시 가오슝.

단장님의 발음이 조금씩 늘어지고 당황한 표정이 느껴진다. 마치 오래된 카세트테이프가 열을 받아 더 늘어진 것 같았다.

왜냐면 마신 후에 인터벌도 없이 바로 다음 잔이 기다리고 있었다.

"추 감독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단장님의 자세 좀 흐트러진 것을 느꼈지만... 한 30분이 지나도 단장님은 오시지 않았다.

심판으로 온 선배가 내가 좀 가볼게.

"추 감독. 여기 좀. 와봐야겠는데"

나는 화장실서 미처 바지도 추스르지도 못하고 바닥에서 꿈나라로 가신 단장님을 엎고 호텔로 돌아왔다.

괜히 김 코치를 미리 보냈군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이게 무슨 개고생이란 말인가 ᆢ

아니 적당히 좀 하시지 ᆢ

술 가지고 국위선양에 도전하다니 ᆢ


그렇게 양국의 농구와 술의 경기가 이루어진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양국의 진 한 우호증진의 날이었다.

오늘은 하루가 조직위가 마련한 관광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김승환 코치가  급하게 방 문을 노크하며 나를 깨운다.

"감독님! 큰 일 났습니다."



다음 편에 죄송합니다.. 중계로 글이 잘 진도가 안 나가네요..

작가의 이전글 우리도 국가대표였다(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