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만의 방법으로

by 김인영



약간 덥다고 느끼며 일어나 밖을 보니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이다. 도대체 몇 시간을 잠길에 빠져있었던 것일까. 천경자 님 평전을 읽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며 만삭의 몸으로 결혼식을 못하고 피로연만 했다는 것까지 읽은 것은 기억나는데 아니 한 시간 푹 자고 잠시 거실에 나온 것도 기억하는데 방으로 다시 들어와 이렇게 아침을 맞은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정겨운이가 보낸 배려의 문자에 고맙다고, 그리고 나도 참 많이 보고 싶다고 답을 한다. 그리고 한 달째 믹스가 아닌 커피로 다시 길들이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며 보상의 차원으로 우유에 달달한 자일리톨을 반 스푼 넣어본다.


어제 난 우이동 소나무길과 연산군 묘를 돌아보는 코스를 지난번과 똑같이 택했다. 마음에 담아둔 계곡에서의 맛난 점심을 위해서 호기심과 신선함이 다소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곳은 여전히 거대한 산을 뒤로하고 푸른 숲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밤나무는 노란 향기를 더욱 진하게 사방에 날리고 있을 뿐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주변 경관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다 나 역시 조금 변했을 것이고 화려한 등산복과 햇볕을 가리느라 눌러쓴 모자 속에 감추어진 그들의 모습도 마음도 지난번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새날과 더불어 낡아가는 육신을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른한 몸을 물 맑은 계곡에 내려놓고 점심을 먹으며 예전 우리 조상들의 풍류와 지혜를 감탄하고 그리고 닭 한 마리와 맛난 묵무침이 비어질 무렵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나이 듦과 함께 오는 공허함에 대하여 부부관계와 자식들에 대하여. 늘 그렇듯이 관계의 문제이다.

많은 부부들이 그냥 산다고 한다. 더구나 평생 가정과 자녀를 위해 밖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가장들은 은퇴 후 갈 곳도 받아주는 곳도 없이 쓸쓸하게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여성의 천국인 듯 모임도 많고 다양한 취미 생활로 바쁜 아내와 청춘의 고민과 자신의 가정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머리 아픈 출가한 자녀들에게 가족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사이에도 내 보일 수 없는 초라함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국민소득 2만 불과 함께 자라난 독버섯이다.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까? 어떻게 행복하게 6월의 장미를 바라볼 수 있을까?


나만의 방법으로 살자. 그이가 사는 방법이 아닌 나만의 탈출구를 찾자.

그날이 닥치기 전 미리 준비를 하여야 한다. 물질만능의 세상이라 말하기는 하나 하루를 보내기에 많은 돈이 드는 것은 아니다. 만원의 행복이라는 말도 있지 아니한가. 우선 마음을 비우고 주변의 것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낼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자. 날이 맑으면 더욱 좋다. 신을 신고 밖으로 나가 아침 산책을 하는 겁니다. 한 시간 후에 들어옴 맑은 아침 공기로 새로운 시작의 설렘을 느끼겠지요. 읽을거리를 찾는 겁니다. 신문을 읽고 그곳에 실리는 동시를 보고 선생님 같은 신문을 통해서 우리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정보의 콘텐츠를 늘려 가는 겁니다. 오늘 2016년 6월 20일은 엄마는 우승컵보다 5살 딸을 먼저 안았다는 프로 골퍼의 기사가 행복하고 환한 미소가 나를 덩달아 웃음 짓게 만듭니다. 새싹을 가꾸며 매일매일 물을 줍니다. 하루하루 다르게 보이는 생명력으로 자라나 내게 힘을 주는 그 작은 씨앗은 닷새면 우리의 식탁을 초록으로 만들어 주지요. 꼼꼼히 읽은 신문으로 오전의 시간이 흘렀겠지요. 이젠 한 잔의 차를 마시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연을 들으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지요. 어쩜 그리도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지요.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은 그 일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이가 그녀가 내 곁에 있으니 이런 기막힌 행운이 어디 있겠어요. 오후가 되면 우리 또래의 친구들이 잇는 곳에서 멋진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일주일에 한두 번 시간을 내는 겁니다. 그곳에서 내가 젊어서 사느라 바빠 놓치고 자신 없어 미루었던 것을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 나이엔 다 소중하지 않던가요. 새로운 도전에 가슴 뛰는 희망의 펌프를 눌러봅시다. 일 주에 한 번 아니 마지막 수요일엔 고궁을 거닐며 도시 속 자연을 오래전 내가 그곳에 살았던 것처럼 아주 천천히 뒷짐을 지고 나무 아래를 걷고 우물도 들여다보며 정자 밑에서 잠시 쉬었다 오는 겁니다. 영화 한 편쯤 조조 관람도 있잖아요. 조조를 보고 나면 점심을 가볍게 먹고 동네 한 바퀴 돌아 집으로 옵니다. 영화와 식사는 혼자 하는 것 아직 익숙하지 않으니 함께 하는 겁니다. 오랜만에 서로 밖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곁에서 호흡을 느끼니 적당한 긴장감이 들지 않던가요.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어 너무나 서로를 잘 알아 때로 열외로 밀쳐 내던 습관을 얼마든지 자연스레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지금 시작하면 언젠가 자연스레 일상이 되어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지 않을까요. 나를 사랑하니 남도 나를 존중해 줄 겁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고운 향기가 퍼져 나가 굳었던 얼굴이 펴지고 말씨도 부드러워지며 자주 웃게 되고 타인의 가시가 아픔이던 것이 그저 용서하게 되어 푸른 삶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방법입니다. 작아지는 눈이 좀 더 커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8월에도 크리스마스 멋진 날들이 오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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