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만 하면 망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확실하게 과도한 [공급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IT 플랫폼과 벤처열풍, 낮아진 신제품 진입장벽, 상향평준화된 외주임가공 퀄리티, 쉬워진 온라인 광고/프로모션 방식 등이 새로운 사업과 제품을 쏟아내게 만드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업계의 수많은 신제품들이 대박을 꿈꾸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뷰티 업계에서는 일년에 론칭되는 신규 브랜드가 2천여개가 된다는 말도 있었을 정도니, 우리가 지금 공급이 충분하다 못해 넘쳐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렇게 치열한 경쟁상황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2000년대 초반, 리서치기관 AC닐슨코리아가 진행한 국내 소비재 트래킹 조사는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안겼다. 국내 소비재 약 5천여개를 대상으로 3년간 판매실적을 트래킹한 결과, 신제품 출시 후 24개월 내에 사라지거나 저성장하는 경우를 '실패'라고 간주했을 때, 실패율이 약 80%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처럼 개발/생산/판매/물류 각 단계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빅블러(Big-Blur; 기술 발달로 산업/업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시대에서 더욱 치열해진 경쟁상황을 고려하였을 때, 신제품의 3년내 시장 생존율은 10% 미만으로 추정된다.
한편, 과도한 공급과 치열해진 경쟁상황 속에서 소비자의 대응 또한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얽혀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기 바쁠 때, 소비자는 지나친 브랜드/제품/서비스/광고 커뮤니케이션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다. 성인 1명에게 하루동안 노출되는 광고의 양이 약 2천여개가 넘는다는 미국의 조사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과잉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소비자는 마인드를 극도로 단순화시키기 시작했다. 수많은 정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자신이 필요한 정보만을 미리 선별해 정보탐색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한 것이다. 더욱더 까다로워진 소비자의 마음에 들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그만큼 남들보다 더 매력적이고 좋은 컨셉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좋은 컨셉을 만들어 시장에서 생존하거나, 소비자의 마음에 들지 못해 실패한 컨셉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번 시간(나쁜 컨셉)과 다음 시간(좋은 컨셉)에 걸쳐 몇 가지 사례와 함께 알아보자.
얼마전 우연히 유명 웹툰 <마음의 소리>를 보다가 너무 와닿는 내용이 있었다.
만화속 주인공 ‘조석’은 온라인 쇼핑몰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의자를 구매한다. 배송 온 의자를 보고 ‘조석’은 '인체공학적 설계로 척추부를 보호해주고 피로감이 덜한 유럽 인기 의자'라며 가족들에게 자랑하지만, 막상 식탁 앞에 놓으니 식탁에 비해 의자의 높이가 지나치게 높아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조석’은 의자에 앉아 공중에서(?) 식사를 하며 편하고 척추가 보호된다고 자신의 소비를 합리화한다.
이 장면은 소비자의 사용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즉, [소비자 혜택]을 전달하지 못한 괴랄한 제품으로 독자들에게 웃음을 안기고 있다. 웃음이 목적인 웹툰 속 내용이지만, 사실 우리 주변의 비즈니스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웃기만 할 수 없었다. 우리 마케터들도 제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코웃음칠 내용으로 [공급자만의 매력]을 전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소비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컨셉의 사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약 3년전 온라인 커뮤니티와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이어폰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음향기기 업계의 강자 ‘아이리버’의 유선 블루투스 이어폰 '아이리버 IWB'이다. ‘아이리버’는 2000년대 초반 MP3 플레이어 국내/외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등 휴대용 음향기기의 절대 강자로, 2014년 SKT에 인수된 후 오디오 플랫폼 '플로(FLO)'를 운영하고 다양한 생활가전도 출시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의 유일한 경쟁상대로 꼽기도 한 아이리버는 2019년 유선 블루투스 이어폰 ‘아이리버 IWB’를 야심차게 내놓으며 경쟁자들과 다르게 시장을 공략했다.
블루투스로 연결해 선의 제약이 없는 무선 이어폰이 시장을 선도하는 이 시대에 ‘유선 블루투스’라니, 벌써부터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들의 모습이 훤하지만 일단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3.5mm 이어폰 단자가 없이도 스마트폰 충전포트에 연결하여 스마트폰의 배터리로 작동하여 연결되는, 배터리가 필요 없는 유선 블루투스 이어폰’
온라인 상세페이지에 쓰여 있는 ‘아이리버 IWB’의 핵심 컨셉이다. 이 제품은 8핀 커넥터로 아이폰/아이패드와 연결한 다음 블루투스를 연동해 유선으로 사운드를 재생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상세페이지엔 블루투스 이어폰이지만 충전이 필요 없고, 보조배터리와 연결해 사용 가능하며, 리모트 컨트롤러로 편의성을 더하고, 특수 코팅으로 꼬이지 않는 케이블 등의 제품 특장점이 상세히 적혀 있다.
자, 그럼 이제 소비자의 입장에서 판단해보자. 우선 블루투스 이어폰이지만 무선의 자유로움을 경험할 수 없고, 유선이지만 최초로 연결할 때 블루투스 연결을 거쳐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또한 충전이 필요 없는 블루투스 이어폰이라는 장점을 소구하지만, 애초에 유선 이어폰이라면 충전이 필요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각종 IT 커뮤니티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무선의 단점과 유선의 단점을 합친 ‘끔찍한 혼종’이라는 혹평이 이어졌다.
한편 일각에서는 ‘아이리버’가 이런 제품을 내놓은 이유로, 애플 라이선스 정책에 따라 아이팟에 필요한 Mfi(Made For i) 인증을 받은 IC칩(약 4달러)과 로열티 원가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아이리버’의 기획의도는 기존 무선 이어폰의 단점인 가격부담과 아이폰용 유선 이어폰의 단점인 원가부담을 해결하는 '저가형' 포지셔닝으로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스마트폰에 유선과 블루투스를 모두 연결해야만 작동하는 번거로움과 자유롭지 않은 유선의 불편함, 그렇다고 가격이 엄청 싸지도 않은(17,000원대) ‘단점 투성이’ 제품에 지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유선 이어폰의 KBF(Key Buying Factor ; 핵심 구매고려 요인)인 음질이 중국산 저가형 블루투스 이어폰 수준이라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 명분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아이리버 IWB’는 출시 이후 다양한 IT 인플루언서, 유튜버, 블로거들에게 놀림감이 되며 기업브랜드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앞선 웹툰 사례와 동일하게, 컨셉에서 가장 중요한 '소비자 혜택' 이 아닌, 그럴듯한 표현과 어렵고 복잡한 '공급자만의 매력'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다 생긴 참사다.
매일유업에서 2017년 야심차게 출시한 곡물음료 '헤이! 미스터 브라운'처럼 다양한 특징들을 '섞어서(Mix)' 전달하는 경우도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헤이! 미스터 브라운’은 다양한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키며 건강한 슈퍼곡물 재료로 에너지와 포만감을 채워준다는 컨셉으로 개발되었다. 브랜드 론칭과 동시에 빅모델 헨리를 활용한 광고영상 및 디지털 캠페인과 함께, 헨리와 영상통화를 하면 편의점에서 무료로 제품을 받을 수 있는 모바일쿠폰을 증정해주는 유통 프로모션까지 병행하는 등 내부에서 많은 공을 들인 제품이다. 먼저 이들이 제품을 어떻게 소개하는지 살펴보자.
'헤이! 미스터 브라운'은 ①5가지 이상의 슈퍼곡물(퀴노아/오트밀/검은콩/병아리콩/검은깨)을 함유해 에너지를 채워주고, ②설탕 제로로 당 걱정없이, ③배고플 때 포만감을 주는, ④부담없이 라이트한 ⑤곡물우유이다. 이들이 이 5가지 특성을 섞은 이유는 다양한 소비자들의 니즈를 모두 충족하기 위해서였다. 우선, ①우유의 밍밍한 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소한 곡물 맛을 냈고, ②초코/딸기 우유 같은 가공유의 당성분을 꺼려하는 고객들을 위해 설탕을 뺐으며, ③바쁜 시간 우유로 끼니를 대체하는 이들을 위해 포만감은 더하면서, ④두유의 텁텁함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라이트한, ⑤건강한 수퍼곡물로 만든 우유로 기획했다.
이렇게 다양한 제품의 특징들을 열거하며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전달했지만 '헤이! 미스터 브라운'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입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흰 우유의 깨끗함도, 가공유의 달콤함도, 두유의 든든함도, 견과류의 영양도 모두 갖추지 못한 '두유에 물 타고 설탕 뺀 맛의 정체불명의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편의점 점주는 이 제품이 우유인지, 가공유인지, 두유인지 진열할 위치마저 혼란을 겪어 편의점을 활용한 유통 프로모션 역시 수월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결국 '헤이! 미스터 브라운’은 20억원이 넘는 막대한 광고/프로모션 예산을 사용하며 시장정착을 노렸으나, 계속된 판매부진 속 출시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운영이 중단되었다. 모든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하려 욕심을 내다가, 모든 소비자를 놓치게 된 것이다. 'Simple is the Best' 라는 마케팅 업계 명언처럼, 다양한 특징들을 우리의 장점이랍시고 ‘짬뽕처럼 섞고 버무려서 만들어내는’ 소비자 메시지는 오히려 소비자 마음에 전달되지 않고 분산되어버린다는 점을 명심하자.
위의 사례들 외에도 실패한 제품/서비스 컨셉의 사례는 너무나도 많이 있는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4가지 요소들을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비자의 혜택'에 집중하지 못하고 공급자만의 매력을 소비자에게 강요한다. 제품이나 서비스로 소비자의 혜택을 전달하는 것은 앞서 설명했듯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컨셉팅’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유명한 이솝우화인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처럼,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고 해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맛있게 먹을 수가 없다면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 하물며 내 돈을 주고 물건과 교환하는(Exchange) 소비자들은 내가 지출하는 돈보다 더 높은 가치(Value)를 갖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아니라면 살 이유가 없기 마련이다. 공급자만의 입장에서 좋은 점을 소비자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명심하고, 소비자의 혜택을 경쟁사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전달하는 컨셉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다양한 특징과 혜택들을 무작정 섞어서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다. 이 세상에 모든 이들을 만족시키는 제품은 없다. 좋은 것들만 모아서 다 섞는다고 제품이 더 좋아지는 것도, 세상의 모든 고객이 우리 제품을 반기는 것도 아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장점들이 많아도 무자비하게 섞어 놓으면 각각의 요소가 희미해져 이도 저도 아닌 짬뽕탕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셋째, 전문가와 전문업계의 용어로 어렵고 복잡하게 전달한다. 우리가 제품을 기획하고판매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실수하는 것 중 하나는, 소비자는 우리가 업무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업계 용어를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너무 자주 사용하고 익숙한 용어지만 소비자는 그 용어를 들어본 적도 없고, 당연히 의미를 알지도 못하고, 오히려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에 짜증이 나서 이탈해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물론 사용자와 소비자가 다른 일부 B2B 비즈니스나, 판매대상이 숙련도/관여도가 매우 높은 전문가인 경우에는 일부러 전문적이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용어를 활용하지만, 어렵게 쓴다고 소위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따라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우리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어떤 혜택을 담고 있는지 설명하려면, 그들의 언어로 간단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
넷째, 기존의 경쟁재/대체재들과 차별화되지 않은 똑같은 이야기를 마치 자신만의 이야기인양 전달한다. 나는 ‘국내산 100%’이고,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고’, ‘유기농 인증을 받았고’, ‘편리한 포장을 사용’한 제품이라고 열심히 자랑했는데, 소비자가 함께 고려하는 대부분의 제품들이 다 똑같은 특징을 가진 경우라면 어떻게 차별화가 될 수 있겠는가? 또한, 앞서 설명했던 사례인 ‘아이리버 IWB’는 충전이 필요 없는 블루투스 유선 이어폰이라며 ‘충전이 필요없다’는 특성을 엄청나게 강조하지만, 경쟁재인 유선 이어폰은 애초에 충전을 할 필요가 없다. 내 제품/서비스만 갖고 있는 특성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어쩌면 남들도 다 가지고 있거나,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소비자가 수많은 경쟁/대체재 중에서 왜 나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선, 남들과 다른 ‘차별점’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물론, 마케팅 컨셉은 단순히 제품의 특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 4P로 불리는 제품/가격/유통/프로모션에 다 적용될 수 있다.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경쟁재보다 확연히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거나, 다른 경쟁자가 구매할 수 없는 특정한 곳에서만 구매할 수 있게 하거나, 신선하고 매력적인 증정품/쿠폰/덤/굿즈 같은 프로모션을 통해 차별화된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도 있다.
이처럼 내 제품이나 서비스를 남들과 다르게 보이게 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내 제품을 소비자에게 남들과 다르게 전달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기까지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앞서 소개한 실패 사례를 보다 보면 ‘어떻게 저런 제품을 낼 수 있지?’ 싶겠지만 막상 당신이 기획하는 제품/서비스도 그런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런 함정에 빠진 채로 소비자에게 내 제품/서비스를 소개하려 했다간 그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많은 경제적 손실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