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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앤 Mar 29. 2022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책다솜의 열두 번째 나눔 도서,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 만난 40가지의 눈부신 이야기들을 통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 내 삶의 순간순간을 마주해본다.


첫 번째, 타인-사랑은 떠나고 세계는 남는다.

만남이란 놀라운 사건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선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는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 안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p.34

 우리 만남은 당시 유행하던 세이클럽 채팅에서 시작되었다. 신랑과의 만남을 떠올릴 때마다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내가 그때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았더라면, 핸드폰이 망가져 내 연락처가 사라진 그에게 내가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어떻게 되었을까?


 거의 매일같이 전화하던  한 달 가까이 연락이 없자 그의 안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 신랑과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통의 메일과 목소리로 이어진 사이였지만 매일 조금씩 가까워진 그는 어느새 내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의 통화가 은근히 기다려졌고 언제부턴가 무뚝뚝한 신랑의 목소리가 편하게 느껴졌다. 말수가 적어 좀 심심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나의 수다스러움을 귀엽게 받아주는 그가 싫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언제부터인가 전화를 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람이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면 누구라도 '혹시 무슨 일이 있나? 내가 먼저 전화해 볼까?' 하는 걱정과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신랑 전화번호를 눌렀다. 궁금증으로 가득했던 전화 한 통화는 며칠 후, 어색한 첫 만남으로 이어졌다. 통통한 체구에 까까머리, 누가 봐도 갓 제대한 복학생  같아 보였던 그가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대학 졸업 전에 연애 한번은 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수줍은 고백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시작되었고, 8년이라는 긴 연애 끝에 부부가 되었고,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어있다.


 함께하는 동안 서로 아끼고 사랑했지만 우리의 세계는 결코 완전하지 않았다. 때론 어설펐,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처럼 수시로 삐걱거리고 흔들렸다. 서로 부딪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다른 세계로 떨어져 나갈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우린 결국 이렇게 울고 웃으며 매일 함께하고 있다. 여때껏 그래 왔듯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투닥거리기도 하며 남은 삶에 동행 할 것이다.


각자의 세계 속에 머물러 있던 남편과 나는 너와 나로 이어진 '우리'라는 세계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두 번째, 세계-삶을 움켜쥐고 싶을 때 만다라를 생각한다.

나의 모든 노력과 정성은 집착이 되어 모래처럼 쌓여가고, 우리는 이것을 붙들고 싶지만 결국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그나마 한 줌이라도 움켜쥐고 싶지만 그것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고 마는 것이다.
-p.117

 가까이하고 싶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해 정성을 들인 적이 있었다. 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했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 거짓말처럼 우리 관계는 무너져 내렸고 나는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지금껏 그 사람에게 했던 나의 모든 정성과 노력에 대한 결과가 고작 이거라니?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몇 달 동안 괴로워했다. 상처와 배신감으로 똘똘 뭉쳐진 화는 결국 신랑과 두 아이를 향해 날아갔다.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대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 모든 게 나의  집착이었음을... 나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고, 내가 다가간 만큼 상대방도 내게 가까이 다가와 주길 바랬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내가 앞서간 만큼 상대방도 똑같은 걸음으로 다가와 주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에는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법이다.

그걸 모르고  마음을 다해 다가가기만 했던 관계는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끝나버렸다. 어리석은 나는 이렇게 뼈아픈  경험을 하고 나서야 서로에게 필요한 적당한 거리를 게 되었다.


  사회적 관계뿐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뭔가를 원하면 원할수록, 움켜쥐려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릴지 모른다. 마음속에 항상 *만다라를 기억하며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야 함을 새기고 또 새겨야만 할 것이다.



세 번째, 도구-책을 읽는다는 것

책을 펴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글을 깨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체험이 필요하다. 독서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한글이 아니라 선체험이다. 우리는 책에서 무언가를 배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우리가 앞서 체험한 경험이 책을 통해 정리되고 이해될 뿐이다. -p.176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1학년쯤이었다. 숙제로 제출해야 할 독후감상문에 어린왕자의 순수함을 닮고 싶다는 나름의 감상을 적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여섯 나이에 어린왕자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던  같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쳐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번 어린왕자를 읽었다. 사랑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어린왕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더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불혹의 나이에 서있는 지금, 다시 만난 어린 왕자는 훨씬 더 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사랑,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소중한 것의 의미,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과의 다름에 대한 이해...


 어린 왕자와 여우가 나눴던 ‘길들여지기’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삶의 경험치가 쌓인 지금에서야  더 크게 와닿는다. 쉰, 예순, 일흔... 그리고 삶의 끝에 이르렀을 때 만나게 될 어린왕자는 내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네 번째, 의미-상실과 소멸이 우리를 일으켜준다.

죽음이 안타까운 건 그것이 개체의 소멸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관계의 끊어짐 때문이리라. 인생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짜낸 관계의 직물은 죽음과 동시에 올올이 풀리고 흩어져 사라지고 만다.
-p.206

 얼마 전, 몇 년 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한 친구로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문자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당황할 새도 없이 그날로 부랴부랴 장례식장을 찾았다. 친구는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얼굴, 잔뜩 잠긴 침울한 목소리로 나를 맞았다. 우리 만남은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은 장례식장에서 7년 만에 이루어졌다.


 슬픔에 잠겨있는 친구와 가족들모습은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 책에서 보았던 상실과 소멸에 관한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했다. 오랫동안 아프셨던 아버지였기친구와 그녀의 가족 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 하지만 두 번 다시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죽음은 개체의 소멸이 아닌 관계의 끊어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의 육신은 영원히 사라져 버리지만 그와 함께한 수많은 시간들이 가족 모두의 삶 구석구석에 남아 있을 테니 죽음은 남은 이들에게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이 몇십 년을 얽히고설키며 한 올 한 올 짜낸 관계의 직물을 온전히 풀어내려면 그와 함께한 시간만큼의 기다림필요할지 모른다.



다섯 번째, 의미-세계란 무엇인가

세계는 빛이고, 빛은 나의 특성이다. ‘세계’와 ‘자아’와 ‘빛’은 동일한 현상의 다른 표현이다. 이것들은 자아의 울타리 안에서 광활하게 펼쳐진다. 내 앞에 펼쳐진 빛으로서의 세계가 곧 나 자신이라는 진실. -p.240
모든 보는 존재는 충분하고 완벽한 세계를 자기 내면으로 갖고 있고, 그 내면의 빛은 그 존재를 부족함 없이 사로잡는다. -p.241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유○○’이라는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와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에 의문을 갖게 다. 내가 보는 세계는 나로 인해 재해석되고 나를 둘러싼 수많은 세계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나의 세계는 밝게 빛나기도 하지만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때론 내가 갇힌 세계에서 벗어나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고자 아프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할 때도 다. 헤세가 만들어낸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말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 책다솜소북소북과 함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책 모임명입니다.


* 만다라: 밀교(密敎)에서 발달한 상징의 형식을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佛畵)

*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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