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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Aug 25. 2024

29 내가 먹는 김

김밥의 오늘

 어떤 재료든 끌어안아 한없이 새로워지는 김밥의 창출은 김 한 장, 바로 그 종이 같은 생김새에서 온다. 싸 먹는 원리로만 따지면야 쌈밥도 비슷하지만, 김이 밥에 찰싹 붙어 수분을 머금고 질겨지는 성질 때문에 우리 기억에서 김밥이 쌓아온 정서는 쌈밥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쌈밥이 셀프라면 김밥은 레터랄. 김 한 장은, 김밥을 만든 이와 먹는 이 사이, 시간을 띄우고 장소를 벌린다. 지연된 시간에 도시락 뚜껑을 연 그 자리로 만든 이의 손길이 소환된다.     


 아무렴 아무 재료나 넣었겠냐만 아무튼 김밥이기만 하면 그런 효과가 있다. 연안에서 사라지는 꽁치 소식에 막연한 염려가 무궁무진 김밥 속을 훑다가 문득 김은 괜찮은가 싶다. 속이 많아 팔뚝만한 김밥이든, 속이라곤 없는 충무김밥이든 김은 있어야 김밥일텐데.      

 

 김 소식을 찾았다. 김은 수출량이 급증하며 ‘검은 반도체’라는 별명을 얻었고, 대통령이 지원을 약속하고, 해수 온도 상승 탓에 주변 국가 생산량이 급감했고, 세계에서 인기고, 많이 팔리니 가격은 연일 오르고, 김밥집 사장님들은 “다른 재료도 아니고 김 때문에 속을 썩일 줄은 몰랐다”며 한숨짓고, 반면 김 업계 사장님들은 그동안 가격이 낮았을 뿐 이제야 제값을 메긴다 하고, 정부는 축구장 3800배 넓이 양식장을 새로 허가 내기로 발표하고, AI 기업이 김 품질을 판별하는 솔루션을 만들어 세계 시장 진출에 이바지하겠다 나서고, 식품 회사는 기후 변화에 대비해 육지에서 기르는 김을 연구 개발 중이란다.      


 연잇는 요란한 소식과는 한참 멀리 떨어진 듯, 뉴스가 되지 못한 목소리도 있다. 김이 자라지 않는 따뜻한 바다 나라에서 온, 김 만드는 사람들의 자기소개다. 

“제 이름은 줄리입니다. 동티모르에서 왔습니다.”

“제 이름은 하나피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왔습니다.”

“저는 민남이에요. 저는 베트남 사람이에요.”

“나는 카야입니다. 스리랑카에서 왔습니다.”     

이들은 우리말로 겨울 바다 일을, 고향에선 뭔지도 몰랐던 김을 이제는 먹을 수 있게 된 일을 얘기한다. 수익이 치솟는 사업 뉴스엔 이들 이야기가 없다. 배 한 척에서 하루에 사십 통 오십 통씩 바다로 부어지는 염산 이야기도 없다. 사라질까 염려했던 김은, 사라졌으면 싶은 얘기들로 엮였다. 우리집 부엌 김밥 너머엔 울 엄마가 있었고 김밥집 창 너머엔 또 다른 엄마가 있고 검고 푸른 김 너머엔 줄리, 하나피, 민남, 카야가 있다. 내 입에 들어오는 건 무역흑자도 아니고, 정부정책도 아니고, AI 신기술도 아니고, 얄팍하게 숨겨진 노동 한 덩이다.


< 내가 먹는 김. 드라이포인트 >


이야기 발췌: 유튜브 <김, 바다에서 밥상까지 인권> 2021, 이주와인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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