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의 오늘
어린 날 새벽에 보았던 엄마의 부엌이 소위 김밥 전문점으로 옮겨가고 꼬리까지 알맞게 포장되어 2천 원 가격표를 달았을 때 정성은 무안이 되었달까. 김밥은 금새 사 먹는 음식이 되었다. 분식집에선 라면보다도 저렴한 메뉴이다 보니 ‘김밥이나’ 먹고, ‘김밥도’ 시키자는 표현이 들어맞았다. 뒤에 나라 부도가 나고 전국에 김밥천국이 들어섰을 때, 그곳의 김밥 가격은 천 원이었다. 대학 식당 운영권을 대기업이 갖는 일로 대자보가 붙을 무렵 2천 원 넘는 학식을 뒤로 하고 종종 김밥천국엘 갔다. 천 원 김밥은 삶을 응원하는 것도 같고 추락한 우리를 나타내는 것도 같았다.
그 시절을 지나온 나에게 4천 원, 5천 원으로 시작하는 김밥집 메뉴판은 맛보다 먼저, 지나간 시간과 사장님이 줄이려 했을 비용을 떠올리게 한다. 옆 동네 부부 사장님네 가게에선 신동진 쌀, 완도김에 국내산 우엉, 당근, 단무지, 시금치, 햄, 계란, 맛살까지 넣은 기본 김밥을 4천 5백 원에 판다. 한 줄 바꿔 내릴 때마다 5백 원씩 더해지는 메뉴판 국룰이 이 집에도 있다. 사장님은 5천 원 안 넘는 김밥으로 메뉴판을 꾸리려고 첫 김밥의 값을 고민하셨나 보다.
4천 5백 원은 어떤 값일까. 아이가 다니는 경기도 중학교 급식비는 한 끼에 4,857원이다. 이 중 재료비가 4,387원이고 나머지는 전기, 가스, 수도, 소모품에 쓰인다. 조리사 인건비는 포함되지 않았다. 가게도 운영하고 가족도 거느리는 사장님의 대표 메뉴가 학교 급식 원가 정도다. 사장님의 메뉴판은 오르는 물가에 저항하는 플래카드 같다.
분투하는 사장님의 하루를 찾는다. 주문은 무인 키오스크, 남자 사장님이 부엌의 큰 집기를 정리하면서도 시선은 김밥 마는 부인의 손 끝에 붙여 놓았다. 즉석김밥을 더욱 즉석이게 만드는 역할이다. 하나가 말아지는 즉시 가져와 포장을 하시는데, 내가 “비닐 주지 마세….아!” 하는 사이 김밥은 검정 비닐에 단무지와 함께 담겨 카운터 위에 탁 놓인다. 말릴 새도 없이 한 동작으로 흐르던 남자 사장님의 손은 보자기에 싼 아이를 내려놓는 황새의 목덜미 마냥 아치형으로 멎는다. 빛과 같은 우아함에도 여자 사장님은 다음 주문을 받아내느라 눈도 들지 않았다. 우리집에서는 불가한 부부 일심동체던데, 김밥집 인건비 앞에서는 종종 목격한다. 물은 셀프고, 젓가락은 필요한 사람만 가져갈 수 있으며, 테이블은 학교 책상만큼 작고 좁게 붙었다. 또 뭐가 있을까. 어깻짓, 김밥을 마는 몸동작. 꾹꾹꾹꾹 단단히 말며 사장님은 ‘작아져라, 작아져라’ 주문을 외우는 것 같다. ‘줄어라, 줄어라, 백 원 이백 원 덜 받아도 어울리게 줄어들어라.’인지도.
김밥은 희한하게도 내가 한 수고를 남이 모르도록 꼭꼭 말아 숨기는 게 전략인 듯 값이 매겨진다. 오르는 물가를 염두에 두고 일주일 식구들 식사를 챙기다가 맥이 풀린 날, 편안히 끼니를 지나려고 김밥집에 들렸다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결국 내어놓는 정성과 가격의 부조화에 아득해진다. 5천원이 안되는 김밥을 보면 사장님 오래 하실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7천원에 다다른 김밥을 보면 ‘김밥 한 줄’로부터 소외되는 사람이 많아질까 염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