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6

레이디퍼스트. -다 일연 이야기(액자소설)

by 이규만

아우성들이었다. 어딜 가도 이렇게 빼어난 미모를 지닌 여자를 만날 수 없었어. 털목도리의 진언이었다. 마음에 없는 소리인지 진짜로 우러나오는 소리인지 몰라도 듣기에는 좋았다. 그에 더하여 야구모자가 침을 튀겨가며 흥분된 어조로 떠들었다.

“형. 봤어? 카운터 옆에 앉아 있을 때의 고혹적인 자태. 난 이미 그녀에게 빠져들었어.”

“이야. 자식 세게 나가는데? 처음부터 이러면 곤란해. 저 아가씨 이름이 뭐죠? 저는 성복입니다. 정 성복. 처음 만났는데 악수부터 하죠.”

“어? 반칙이야. 이런. 손까지 벌써 잡고. 저는 다 일연이라고 합니다. 저도…….”

어리둥절하면서 그들이 잡는 손과 인사에 정신이 없었다.

“저는 윤서에요. 김 윤서.”

“가명 아니죠?”

“제 본명이에요.”

“정말이죠?”

야구모자가 생각에 잠긴 것 같은 표정으로 이내 턱을 괴고 나를 바라봤다. 그런 몸동작이 갑자기 진지해 보여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하마터면 나는 그쯤에서 웃음을 터뜨리뻔하다 겨우 참고 말을 이어나갔다.

“정말이에요. 실은 저 오늘 첫날이에요. 노래방에서 일하는 거. 잘 부탁드려요.”

나는 정말 진심으로 그들에게 잘 봐 달라는 의미로 일어서서 정중하게 인사를 꾸벅하였다.

“일연아. 들었냐? 첫날이란다. 첫날. 오늘 너랑 억세게 운이 좋은가 보다. 이런 윤서 씨를 오늘 만나고. 와. 정말 기분 좋네. 오늘 너랑 술 마실 때부터 뭔가 굉장히 느낌이 좋았어. 일연. 빨리 땅겨 봐. 그녀를 위한 노래. 하나 불러야지.”

“그 성원에 보답 고자 벌써 선곡했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자. 갑니다.”

그가 노래를 부르는 광경에 그만 기가 찼다. 털목도리 성복은 일연이 부르는 노랫소리에 귓가를 손가락으로 틀어막았다. 자칫 잘못 들으면 저게 악을 쓰는 것인지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하게 질러대 목청의 혹사를 제대로 들려줬다. 그래도 리듬은 분명히 타면서 따라가고 흘러갔다. 저런 것을 록이라고 부르나? 록이라고 지칭하기에는 대 번 무리가 왔다. 윤 도현 가수가 천천히 노래를 부르다 순간적으로 높거나 이탈 음에 이르러 큰 소리로 내지를 때에 록적이다, 한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이 기억이 났다. 하지만 이것은 록과 엄연한 차이가 있어 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친 목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았다. 모니터 화면의 가사가 흘러가지 않았으면 과연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을 정도로 너무 험한 소리였다. 다 가수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김 건모 더러 저렇게 부를 수 있겠나 물어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정말 물어본다면 좋은 노래 다 망쳐 놓으니 제발 저런 식으로 부르지 말 것을 권고할 것이다. 즐기는 거는 다 차이가 있고 노래의 선택은 각양각색이지만 자신의 노래가 저렇게 변모되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신나게 부르는 거야 말리지 않겠지만 일연의 스타일은 반대할 것이다. 그가 부르는 순간, 완전히 색깔이 달라졌다. 옆에서 들으면, 있는 악 없는 악을 써서 소리만 냅다 지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가만히 집중해 보면 반주와 맞아서 떨어졌고 가사도 일치해서 소리만 질러대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노래는 정열적으로 흘러갔다. 그래도 레게를 부르는 김 건모는 일연의 노래 스타일은 싫어할 것이다.

발라드 계열을 선호하던 내게 그의 노래는 정말 특별함이었다. 성복은 처음에는 귀를 막고 있다가 서서히 그의 노래에 익숙해져 가는 모습이었다. 매번 같이 다니면서 들어보았을 터인데 그가 노래 부를 때마다 곤욕을 치르는 거처럼 처음에 난감한 거는 나처럼 똑같이 굴었다. 같이 있는 사람들과 맞추기 위해서 한 일종의 허세이었나. 이제는 같이 손뼉을 쳐주고 열정적으로 같이 추임새를 넣어 주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부분적으로는 손을 흔들어주며 같이 따라 부르기까지 하는 모습이 공연장의 열광적인 팬과 다를 바 없었다. 내가 조금 아는 시나위나 딥퍼플, 혹은 레드 제플린을 연상하게 했다. 나도 어느새 동화되어 거친 매력적인 목소리에 빠져들어 열렬하게 소리치고 머리를 흔들었다. 스피커가 찢겨나가고 노래방이 무너져 내릴 거 같았다.

-춤추고 노래해. 한 마리 새처럼.

그래서 사람들이 노래방을 오는구나. 그래서 여기서 갇혀있던 스트레스를 다 풀고 가는구나. 시간은 멈춘 거 같았고 계속 노래는 끝이 없었다. 성복에게 잠깐 이야기를 들었는데 헤비메탈이랬다. 헤-비-메-탈. 그 단어 한 음절씩을 읊조리며 가슴이 온통 폭삭 가라앉았다.

성복은 마지막 쐐기를 박듯 내게 못을 박았다. 이게 다는 아니야. 진정한 헤비메탈을 느끼려면 아직 멀었어. 헤비메탈은 말이지…. 그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처럼 나의 가슴은 타들어서 바싹바싹 침이 말랐다.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소리를 내지르고 싶었다. 아니 내뱉고 싶었다. 그만들 작작 좀 해. 이것들아. 도대체 노래는 언제 끝나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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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퍼스트. -다 일연 이야기



컴퓨터를 켰다. 순서대로 메신저에 로그인했다. 그동안 왜 접속하지 않은 거야. 접속되자마자 레이가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닌가. 웬일이야. 반기는 눈치였다.

그녀와 채팅할 때는 말이 빈번히 끊겨 지루한 편이었다. 접속만 하고 다른 일을 하는 중이었던 것 같다. 다른 이들과 대화하느라고 그랬겠지. 기다리는 나를 이번에도 또 져 버릴 것 같았다. 무미건조한 내 느낌을 말로 쳐서 올렸다. 남자랑 대화하는 것 같아. 말이 바로 올라왔다.

-그래? 내가 남자라고?

-응.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러니 나랑 대화가 별로였던 거지.

-그래서 그동안 접속을 안 한 거야?

-…….

-정말 소심하다.

-그러면 여자란 것을 증명해 봐.

-오빠. 그렇게 못 믿겠으면 나랑 만나.

-…….

-만나서 확인해.

뭘 확인하라는 거라는 건지. 내친김에 갈 데까지 가보자. 속물근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싫으면 나가 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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