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서의 본격 노래방에서 대면
“아. 정말 힘드네. 저희 돌아다니다 세 번째 노래방이에요. 낮술 먹고 기분 좋아서 오랜만에 노래 부르러 온 건데 남자끼리 놀면 재미없잖아요. 가게마다 이게 웬 난리들이야?”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네요.”
털목도리는 체념한 것 같이 돌아서려는 참이었다. 야구모자가 그를 불렀다. 둘이 음료수 자판기 쪽으로 붙어 한참을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종종 둘이 날 힐끗힐끗 눈길을 주며 한쪽에서 고개를 흔들고 다른 한쪽은 끄덕끄덕했다. 그 둘의 모습에 어느 정도 감을 잡았는지 가만히 카운터 옆에 앉아 있는 내게 그녀도 마찬가지로 조그맣게 말을 건넸다.
“윤서야. 쟤네 언뜻 보니 대학생, 애들 같아. 너 보더니 놓치기 싫은 눈치야. 역시 넌 오자마자 사람을 몰고 오는 아이구나. 봐라. 너 때문에 못 나간다. 아마 너 혼자라도 데리고 놀 모양 같아. 잘해라. 너. 보니까 예의들은 바를 거 같다. 내가 말한 그 진상들은 아니야. 전혀 아니니 잘해야 한다. 너의 첫 단골들로 만들어야 해. 알았지? 쟤네들 너 때문에 자주 여기로 올 거 같은 예감이 드네. 그러면 네 말대로 다른 가게로 안 가고 여기서 나랑 자주 볼 테니 좋지 않겠어?”
갑자기 떨렸다. 가슴이 온통 두근거렸다. 내가 드디어 노래방에서 일이라는 것을 하게 됐구나. 이를 어쩌나. 침착해지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곧 그들이 결정했는지 여사장 있는 쪽으로 와서 이내 그들 중의 하나인 털목도리가 말했다.
“그럼 저 아가씨 혼자는 안 돼요?”
“누구요? 아. 안 돼. 쟤는 오늘 일하러 온 애가 아니야.”
엉? 뭐야? 좀 전에는 나더러 잘해보라고 하고서는. 그것 참. 여사장은 아무래도 단수가 높았다. 아마 구단이나 십 단쯤. 아니 그보다 수위가 훨씬 높았다. 지켜보다가 애가 탔는지 이번에는 야구모자가 나섰다.
“사장님. 그러면 왜 여기 나와 앉아 있어요? 일하러 온 거 맞으면서. 그러지 말고 어서 보내주세요. 그 손아귀에서 우리가 구원하러 왔잖아요.”
그는 털목도리를 복도 안쪽으로 밀어 넣고 내게 와서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자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나는 그만 그의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내 웃는 얼굴을 본 그는 신이 났는지 목청이 커졌다. 실은 그들 첫인상이 무척 호감이 갔다. 처음 대하는 남자들이라 분위기가 마치 소개팅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자. 자. 형. 들어가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사장님. 몇 번 방이죠?”
사장은 시무룩하게 있으면서 그가 하는 모습만 멀거니 바라만 봤다.
“아. 몇 번 방이라고요?”
“이러면 안 되는데. 일하러 온 게 아니래도 그러네.”
“사장님. 내 아는 동생인데. 오늘 기분 좋게 낮술 한 거니까, 잘 봐주세요.”
“아. 형 걱정하지 말래도. 자 아가씨 팁까지 해서 얼마라고요?”
“화장실에 갔다, 와. 김 양아.”
여사장은 내게 눈짓을 보냈다. 더 애를 태울 모양이다.
“안된다는데 자꾸 왜 이래요?”
나는 여사장의 계속되는 눈짓에 얼떨결에 화장실로 내몰려서 손을 씻는 척 그곳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어찌 된 거야? 정말 하지 말라는 거야? 아무래도 속을 모르겠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화장실 문을 열고 빠끔하게 얼굴을 내밀어 보니 여사장은 벌써 웃고 있지 않은가. 능청맞은 늙은 여우였다. 꼬리 아홉 개도 모자라 열대 개는 더 달은 바싹 쪼그리든 여우의 현란한 연기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어서 들어가 봐. 잘해야 해.”
그녀는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그 남자들 앞에서 정말 잘 해내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너 같은 미모라면 얼마든지 노래쯤 못해도 옆에서 부추기고 칭찬만 잘해줘도 남자들은 그냥 훅 간단다.”
“그래요. 비코즈 오브 유에요.”
‘Because Of You’를 일부러 말했다. 덕분이라는 말을 나름으로 재치 있게 돋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래도 그녀는 미덥지 않은 눈치였다. 부르려던 노래라서 입에 배었나. ‘김보경’을 꽤 좋아는 했었지. 머쓱해지고 말았다. 어쩐지 바보 같았다.
“뭔 말이니?”
“아니에요. 저 혼잣말이에요.”
“그래. 어서 들어가.”
떨리는 가슴을 안고 방을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나를 기다렸는지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