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을 먹을 때마다

- 수박에 눈물이 섞이면?

by Cha향기

여름철 과일로는 뭐니 해도 수박이 최고다. 요즘은 로켓 배송으로 수박을 시키니 참 편리하다. 저녁에 시키면 새벽에 도착해 있고 아침에 주문하면 저녁에 문 앞에 수박이 당도해 있다.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에는 수박이 흔한 과일은 아니었다. 시장에서 어쩌다 수박을 끈에 묶어서 사 오면, 우물물에 온종일 담가 두었다가 반으로 잘라서 박박 긁은 후에 일종의 화채를 해서 먹기가 일쑤였다. 내게는 수박에 대한 기억이 남다르다. 수박을 먹을 때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나만의 아픈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부모님들이 몹시 화를 내며 혼을 냈다.

“그런 데는 다니는 거 아니다. 예수는, 가난뱅이나 병 있는 자들이 다니는 기다. 다시는 교회에 가면 발모가지를 부러 버릴 테다.” 어머니는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너거 아부지는 니가 교회에 다니면 호적에서 파내어 버린다고 한데이.”

“우리 동네에서 단 한 집이라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 가 찾아 봐라. 유독 니가 왜 그런 데를 다닐라고 하노? 조상이 무섭다.”라고도 하셨다.


우리 집안은 제사나 차례를 지냈고, 새로운 음식이 있으면 그릇에 담아서 장롱 위에 올려놓고 조상들이 맛보게 하며 유교를 믿었던 것 같다. 십리 안에, 유명한 사찰. 해인사가 있었지만 부모님은 절에는 다니지 않았다.

사그라질 줄 모르는 부모님의 엄포가 너무 무서웠다. 그래도 몰래몰래 교회에 갔다. 내게 신앙이 있는 것은 아닌 듯했고 교회에서 하는 프로그램이나 처음으로 접해보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좋아서였던 것 같다. 교회가 마냥 좋았다. 어떤 때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 할머니가 뒷덜미를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갈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에, 내게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니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몽사몽이었다.

밤이 되면, 삼 칸 집의 작은 방에는 막내 동생과 부모님이 자고 큰방에는 할머니와 우리 사 남매와 사촌 동생 두 명이 함께 잤다. 내가 잠이 드는 순간,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어가는 듯했다. 어떤 강한 힘에 의하여 강제로 끌려 나가곤 했다. 나는 그 힘에 이끌려서 온 마을을 밤새 돌아다니다가 다시 잠자던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그건 너무 생생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실제로 내 몸이 끌려 나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당시로는 분명 현실적인 그 시간이고 그 장소였으니 어떻게 설명이 불가능하다. 어린 마음에 두려움에 벌벌 떨었지만 누구에게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이라고 불러 볼 수밖에 없었다.

“저를 좀 도와주세요, 저는 너무 두렵고 무서워요.”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하나님과 대화하듯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두려움을 이겨 보려고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즈음에, 산에 소를 먹이러 가면 혼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보며 자연에 대하여 생각을 하곤 했다. 자연의 출발이 어디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태초부터 자연적으로 있었던 것인가? 누군가 창조한 것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이 하늘을 향하여 찬양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자신들을 창조해준 조물주를 향하여 감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인간인 나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 만 같았다. 그리고 깊은 밤에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니 그 광활한 우주가 자연히 생겨서 한 치의 오차 없이 돌아가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신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부모님들의 닦달은 점점 심해지고 나는 혼자서 남몰래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있었다. 나를 꾸짖는 그분들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마귀가 나를 향하여 달려드는 기분이었다. 중학생이 된 나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수요일 저녁 예배도 참석했다. 그럴 때면 온 가족이 모여서 수박 한 통을 나눠 먹은 후에 밤 예배에 가버린 나의 몫을 챙겨서 그릇으로 잘 덮어두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 몫의 수박을 먹을 때마다 코끝이 시큰거렸다. 달콤한 수박은 눈물이 섞여서 야릇한 맛으로 변했다. 부모님이 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싫어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요즘도 수박을 먹으면, 낡은 툇마루 한쪽에 놓여 있었던 수박이 생각나고 오래전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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