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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Jan 02. 2023

불이 미처 나지도 않았는데...

- 불을 미리 껐다


우상사

'우상사'라 불리던 비렁뱅이는 우리 부모님이 다투는 걸 몹시 싫어했다. 그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군대에서 상사를 지냈다고 했었다. 자기의 성이 우 씨라 하니 모두들 '우상사', '우상사'라고 불렀다. 그는 일 년 내내 씻지 않고 이를 닦지도 않았으며 한데서 잤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한테 해를 끼치거나 귀찮게 굴지는 않았다. 그래서 근본 거지 근성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정신이 나갔던 것 같았다. 그는 어쩌면 군대의 상사였을지도 모른다.


"저런 비렁뱅이를 거두어서 뭣에다 쓰려고?"

"그러게 말이야, 혹시 불이라도 내면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우상사는 충견처럼 나의 아버지를 따랐다. 그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말없이 도왔다. 아침 첫차에서 신문 꾸러미를 내려 '성안 여객' 매표소 뒤편 보급소로 가져오는 일을 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구독자의 명렬을 보고 산너머 마을에 살고 있는 독자들까지 일일이 주소를 적었다. 우상사는 그 신문 꾸러미를 들고 우체국으로 가져가 우표 딱지를 붙여서 탁송했다. 그 일이 끝나면 장터에 사는 독자들에게 신문 배달을 했다. 우상사는 독자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 독자들의 집도 다 기억하고 있었다. 우상사가 글을 모르는 것 같은데 나름 독자를 기억하는 법이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신문 배달 사고가 난 적은 없었다. 심지어 동아일보, 한국일보를 구분하여 배달하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었다. 우상사는 이른 아침부터 아버지만 따라다녔다. 아버지가 가시나집(기생집)에 가면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가게가 정신없이 바쁠 때도 우상사의 눈길은 아버지에게만 꽂혀있었다. 우상사는 돈을 몰랐다. 돈을 줘도 길에 집어던졌다. 우상사가 제일 좋아하던 것은 막걸리였다. 우상사는 아버지 일을 돕느라 아버지보다 더 바빴다. 


"피창 터져 죽겠네."

"인생 참 더러버서  몬 산데이 인생이 말이야, 인생이 말이야."

"사람이 허파가 뒤집어져서 몬 산다." 부모님이 다투면 우상사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안절부절을 못하며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싸움이 격해지면 꺼이꺼이 울기도 하고 이불속에 묻어둔 막걸리 병을 들고 벌컥대며 마셨다. 그래도 부부싸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그는 하모니카를 꺼내어,


인생은 나그넷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숙생이라는 노래를 구성지게 연주했었다. 음정과 박자가 정확한 그의 하모니카 연주 실력은 인근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약발이 먹히지 않으면 우상사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곱사등이 춤을 출 때 우상사의 손끝에는 예술인의 혼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상사, 최고다!"


사람들은 부모님의 다툼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우상사가 추는 춤을 구경하며 손뼉을 치곤 했다. 그 정도 되면 부모님의 다툼도 시들해졌다.


선이와 건이


선이와 건이는 숙부님이 우리 집에 맡겨둔 사촌 동생들이었다. 건이는 젖먹이였다. 밤마다 배가 고파서 건이가 울면 여지없이 선이도 쌍고동이 울리듯이 함께 울었다. 사촌들이 청승스럽게 울어대면 그것 때문에 부모님이 다툰 적도 많았다. 배가 고파서 울던 건이가 부모님의 다투면 더 서럽게 울어 제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잔소리하던 화살을 할머니에게 넘겼다. 


"저것들까지 내 속을 썩이네. 연놈들은 퍼 자빠져 놀면서 왜 얼라들을 우리 집에 데려다 두는지 모르겠네. 우리도 5남매나 되어 정신이 없건만. 이건 다 어머니 탓입니데이. 어머님이 오냐오냐하며 저것들을 거두니 그것을 믿고 저 얼라들을 여기다 맡겨놓은 거 아닙니꺼?"


어머니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타작한 곡식을 널어놨다가 비가 오면 흠뻑 적셔서 못쓰게 될 때도 숱했다.


"단 하루도 술을 안 마시면 입에 혓바늘이 돋는가? 가시나집은 와 그리 자주 가나? 곡식을 널어놓은 멍석이 물에 떠내려가도 그걸 치울 생각은 않고 곯아떨어져서 자니 내가 우예 사노?"


싸움의 출발은 늘 따발총 같은 어머니의 잔소리였다.


"그만해라. 시끄럽다."


아버지는 몇 번 어머니를 제지하다가 점점 화가 올라오면 물건을 어머니께로 집어던지거나 어머니를 때렸다.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싸움의 전개과정은 비슷했다. 비가 왔었고 말려둔 곡식이 비에 다 젖어 못 쓰게 되었다. 일 년 동안 땀 흘려 거둔 곡식을 비 간수를 제대로 못하여 망쳐버린 날이었다. 


"그러면 좋다. 이 지옥 같은 세상, 다 끝내자. 내가 우리 집에 불을 다 싸질러 뿌릴 테다. 우리 모두 죽자."라고 아버지가 소리쳤다.


지진보다 무서운 발언이었다. 나의 우주가 온통 흔들리는 소리였다. 아직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나는 불난 집에서 도망가는 매뉴얼을 짰다. 재빨리 빠져나가는 연습을 맘 속으로 몇 번이나 했었다. 그날은 그야말로 3차 대전이 일어나는 듯했다. 등잔이 날아가고 그것을 맞은 어머니는 정신을 잃었다.


"불을 확 싸질러서 모두 다 같이 죽여 버릴 테다."


그날 아버지는 그냥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불을 낼 작정으로 보였다. 그러다가 싸움은 이상하리 만큼 조용해지고 정전 상태가 되었다. 어머니도 살기를 느꼈던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아마도 아버지가 실제로 불을 내려고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렇다면 불이 나더라도 쉽게 타오르지 않게 미리 예방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물, 맞다. 우물!'


나는 동생들을 설득했다. 불이 나면 우리 모두 죽는다고, 불이 나더라도 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뒤란에 쌓여 있는 짚단에 물을 잔뜩 끼얹으면 큰 불이 니지는 않을 것 같았다. 또한 장작더미에도 물을 충분히 부어놓는 일이었다. 집안에는 큰 물항아리에 먹을 물이 조금 있었을 뿐, 불이 나면 끌 수 있는 만큼의 물은 없었다. 동생들과 나는 바케스와 바가지를 들고 마을 입구에 있는 우물로 갔다.


우물은 두레박으로 물을 풀 수 있었다. 키가 작은 우리들은 자칫하면 두레박 무게에 딸려서 우물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물에 빠져 죽는 한이 있어도 불에 타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병정들처럼 물을 떠다 날랐다. 한 동생은 물 푸고 다른 동생은 물을 날랐다. 나는 짚단이나 장작에 물을 뿌리는 일을 했었다. 분업이 착착 잘 맞았다. 몇 시간 물을 퍼다 나르고 나니 뒤란에서 넘쳐난 물이 마당까지 줄줄 흘러내려왔다. 우리들은 그날 완전히 지쳤다. 아버지는 결국 불을 지르지는 않았다.


창피함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끝이라는 것이 참 두려웠다. 살고 싶었다. 그리고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그 어린 나이에 죽는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했다. 또한  우리 집에 불이 나서 다른 집까지 번진다면 그건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그것은 창피함을 넘어선 일이었다. 놀라고 지쳐서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순이네가 생각났다.


순이는 어머니랑 단 둘이 살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었다. 하지만 해가 질 녘이면 어김없이 순이 어머니가 순이를 부르며 동구밖에 놀고 있는 순이를 데리러 나왔다. 둘은 만나면 서로 껴안고 미주알고주알 하루 동안 있었던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었다. 아침에 반들거리게 양갈래로 묶어준 머리인데도 머리를 쓰다듬고 정돈해주는 순이 어머니의 모습이 참 부러웠다. 그때쯤이면 우리 집은 폭탄에 타이머를 장치해둔 것처럼 금방이라도 부모님의 다툼이 시작될 시간이기도 했었다. 순이네의 단조롭고 평온한 일상이 내게는 동화책 속 풍경처럼 느껴졌다.


대문을 나서면 창피했었다. 부모님이 다툰 다음날은 자식인 내가 부끄러워서 동네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공부 잘하면 뭐 해?"

"돈 좀 벌면 다야?"

"똑똑하면 다 무슨 소용이야?"

"집안이 편해야지, 저 얼라들 야꼬 죽은 거 봐라 쯧쯧"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우리 집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단 하루도 싸우지 않는 날이 없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님 싸움에 우리 형제들은 많이 울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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