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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Jan 17. 2023

어머니는 '일중독'

-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검사해 본 적은 없지만 아버지는 어디로 보나 알코올  중독자였다. 저녁에 만취하여 일찌감치 주무셨던 아버지는 마을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셨다. 아버지는 첫새벽이면 집안 어른인 나대실 할매 집으로 가셨다. 거기서 해장술을 한잔하신 후에 김치 국밥을 드시고 장터로 출근하셨다.

 

아버지가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 오신 적이 있다. 교수를 만날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교수실을 나와서 정문으로 향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앞뒤를 살피기 시작하셨다. 그러더니 아버지는 동백 가로수 길로 향하셨다. 아버지는 동백 가로수 숲속에서 초록색 소주병을 꺼내셨다. 그리고 곧바로 그것을 가방 속으로 집어넣으셨다. 술을 챙겨다니지 않으면 아버지는 불안할 정도였나 보다. 아버지는 항상 지니고 다녔던 술병을 차마 교수를 만나러 가는 자리에는 지니고 갈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결국 간경화 진단에 이어 수술이 불가능한 식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음식이 들어가는 길에 암이 생겼으니 어떤 암보다 예후가 나쁠 수밖에 없었다.

요즘 같으면 콧줄이나 위루줄을 통하여 유동식으로 영양을 섭취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음식을 드실 수 없으니 암을 이길 턱이 없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셨다면 어머니는 '일' 중독인 게 분명했다. 어머니는 평생 해오던 사업을 여동생에게로 넘겼다. 어머니는 오빠 내외를 따라 고향을 떠나셨다. 부부 교사인 오빠집에서 살림도 하고 손주도 돌보셨다. 그것도 부족하여 틈틈이 미싱으로 수십 벌의 옷을 만드셨다. 자녀들에게 손수 만든 옷을 입히고 싶어 하셨다. 그러다가 뜨개질을 하기 시작하셨다. 구정 뜨개실로  온 식구들의 여름옷을 다 뜨셨다. 나도 어머니가 떠 주신 여름 가디건이 형형색색으로 여러 개 있다.


지금은 부부 교장이 된 오빠 내외가 젊었을 때는 조치원에 있는 교원 대학원을 다녔다. 오빠 내외분은 관리자로 승진되기 위한 준비를 그때부터 하셨던 것 같다. 어머니도 오빠네와 함께  조치원에서 사셨다. 그때도 어머니는 쉼 없이 무엇인가를 했었다. 그 당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글을 한 편 쓴 적이 있다.  '은행털이'라는 콩트다.




                                   은행털이   

 밤이 되면서 세상이 컴컴해졌다. 번개가 번쩍이는가 싶더니 ‘우르릉, 쾅쾅’ 거리며 천둥도 쳤다. 추석을 하루 앞둔 밤 치고는 너무 을씨년스러웠다. 보름달을 보기는 애당초 틀린 것 같았다. 그때 몽실댁은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내일은 반드시 털어야지.’ 때마침 마음이 통했는지 며느리, 둘레 씨가 초저녁 선잠에서 깨어나서, “내일은 한 번 털러 갈까요?”라고 말을 꺼냈다.

철길의 양 레일처럼 간격을 두고 달려오던 고부지간의 마음이 그 약속으로 의기투합했다.

마음이 딱 들어맞았다.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둘레 씨는 지지고 볶는 음식 장만을 하지 않았다. 장손 맏며느리 둘레 씨는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되었고 명절이 되어도 들락거릴 동기간도 없었다. 맘이 편한 둘레 씨와는 반대로 몽실댁은 쓸쓸하게 추석을 맞이하려니 고향에서 보냈던 추석날이 떠올랐다. 그 생각의 한가운데는 몹쓸 병으로 빚만 잔뜩 안겨주고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남편에 대한 원망보다는 그리움이 슬슬 생겼다. 하지만 몽실댁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무정한 사람~’     


“어머님은 명절이라 내일은 붕어빵을 팔 수 없어서 서운하시겠어요?”

 둘레 씨는 전에 없이 살갑게 몽실댁에게 말을 건넸다.

“니가 내 맘을 안데이, 호박 깊은 집에 주둥이 긴 며느리가 들어온다 카는 옛말이 딱 맞데이. 나는 할 일이 없으믄 병나는 사람이데이.”     


 몽실댁은 여태껏 며느리에게 당당할 수가 없었다. 둘레 씨는 결혼 이후 지금까지 맞벌이를 했지만 몽실댁이 넘겨준 빚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런 며느리를 대할 때마다 몽실댁의 가슴은 콱 막혀왔다. 몽실댁은 목숨이 붙어있는 한, 무엇을 해서라도 며느리에게 넘겨준 빚을 덜어 주고 싶었다.     


‘내가 큰소리칠 수 없제이, 저것이 꼴사납게 그러싸도 내가 참아야 하는 기라, 유산은 못 물려줄망정 빚을 안겨주지는 말았어야 하는 긴데. 내가 죄가 크지.’

몽실댁은 늘 그런 생각에 야코가 죽었다.     


‘어디서 돈벼락이라도 맞아뿌마 얼매나 좋을꼬?’

몽실댁은 길을 찬찬히 살피며 걸을 때가 있었다. 어쩌면 돈뭉치가 떨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은행을 통째로 차지하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빚만 없으믄 살겠는디, 빚만 없으믄 큰 소리 치것는디.’

 몽실댁은 며느리를 나쁘게만 보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때때로 며느리로부터 가슴에 콕콕 박히는 서운한 말을 들을 때도 있었다. ‘며느리 살이’를 하는 날이면 몽실댁은 고향에서 불렀던 ‘시집 살이’라는 노래를 조용히 읊조리곤 했다.   

  

성아, 성아, 사촌 성아! / 시집살이 어떻더노?

어라, 야야, 그 말 마라. / 시집살이 말도 마라.

쪼그마한 도리판에  / 수저 놓기 어렵더라.

쪼그마한 수박 식기 / 밥 담기도 어렵더라.

우 벗은 시 동상은 / 말하기도 어렵더라.

(  '바지 벗은 시동생'의 경상도 사투리)


 그렇지만 몽실댁은 며느리가 대견스러울 때가 있었다. 며느리는 요즘 젊은이답지 않은 구석도 있었다. 몽실댁에게 붕어빵을 팔아보라고 권유한 것도 둘레 씨였으니 말이다.


“어머님 붕어빵을 한 번 팔아보세요.”

 둘레 씨는 리어카와 붕어빵 틀을 사서 그녀의 회사 앞에다 떡하니 차렸다.     


[몽실몽실 붕어빵]     

 리어카 허리에 브랜드 이름도 붙였다.

 둘레 씨의 생각은 적중했다. 몽실댁은 일 년에 단 이틀(설, 추석)만 쉬고 붕어빵을 구워 팔았다. 보라는 듯이 삼 년 만에 몽실댁 자신이 지어놓은 자질구레한 사채를 다 정리했다.

 둘레 씨는 퇴근이 빠른 날은 붕어빵 리어카 있는 곳에 와서 돈을 계산하고 붕어빵을 뒤집으며

몽실댁에게 자근자근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돈이 요망스러운 거제. 내가 돈을 좀 버니께 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몽실댁은 생각했다. 며느리가 몽실댁에게 나긋해진 것은 코 묻은 돈이지만 매일 벌어주기 때문이라고...


“저는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돼요. 빚 때문에 죽네, 사네 하는 사람들을 더욱 그래요. 뭐든지 하면 되잖아요? 어머님도 이렇게 일하시는데?” 둘레 씨는 몽실댁을 추어주기까지 했다.    

 



 마침내 고부지간에 은행털이를 준비했다. 먼저 모자를 푹 눌러썼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둘레 씨는 커다란 작대기를 준비했다. 몽실댁은 장갑과 자루를 준비했다. 추석날 새벽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전날 늦게까지 놀았던 사람들이 꼭두새벽에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둘은 말없이 복도를 빠져나왔다. 밤새 불었던 바람이 여전히 우우하며 불어댔다. 몽실댁은 둘레 씨를 향하여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냈다.


 길 한 편에 소주병과 맥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어느 옘병할 놈이 지난밤에 퍼마신 모양이네. 퉤퉤, 재수 없는 놈들!”

 몽실댁은 침을 뱉었다.


“빈 병을 모아서 팔기만 해도 돈이 꽤 될 텐데.”

 둘레 씨는 널브러져 있는 병을 주워 자루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벤치에서 덩치가 큰 사내가 부스스 일어나며 말했다.    

 

“뭡니까?”

“은행을 털라 칸다. 와?”

 몽실댁이 당당하게 사내의 말을 받았다.

    

“은행을 왜 텁니까?”

“묵고 살라고 그런다. 와?”

“묵고 살라고 은행을 턴다? 묵고 살라고? 우홧, 핫하하!”


 사내는 몽실댁 고부에게 다가왔다.     

“은행을 털면 먹고살 수 있습니까? 은행을 털면 돈이 됩니까?

은행을 털면 돈이 우두둑 떨어집니까?”

“이 양반이 아무래도 돈 때문에 미쳤구먼. 쯧쯧.”

 몽실댁이 사내를 향하여 핀잔을 주었다.

 “같이 털어서 나눕시다.”

 “마음대로 하슈.”

 몽실댁은 부르주아처럼 거들먹거리는 어조로 사내의 말을 되받았다.  

    

세 사람은 마침내 은행을 털기 시작했다. 바람이 여전히 불고 있었다. 어둠은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사내는 나무를 한껏 흔들었고 몽실댁은 작대기로 가지를 두들겼다.

둘레 씨는 우박처럼 떨어지는 은행알을 한 군데로 모았다.

 “살살 흔들어요. 남의 집 호박에 떨어지면 다 깨집니다.”

둘레 씨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는 한껏 나무를 흔들었다. 몽실댁은 작대기를 휘둘렀다.

사내는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은행 털기~ 하하핫, 은행이 돈이다. 은행이다. 돈이다. 은행이다.”     


그해 가을은 노란 은행에서 풍기는 구린내가 오래도록 몽실댁 베란다에 머물렀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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