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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Jan 16. 2023

결혼 혼수 이불을 두 번 받았어요

-  순면 꽃 무늬 차렵 이불

순면 꽃무늬 차렵이불

고향의 봄은 찬란했다. 지천으로 만발한 봄꽃들을 배경으로 아버지의 상여에 있던 종이꽃도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4월은 가장 화려한 달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리고 T.S. 엘리엇이 말했듯이 '4월은 잔인한 달'이기도 했다. 대주 가장이 없는 집안이 되고 보니 스스로 힘이 없다고 느껴졌다. 어머니는 싸움 상대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오히려 속은 덜 상하셨을 것 같았다. 어머니 마흔아홉, 아버지는 오십 두 살이던 해 봄은 그랬다.


지금도 봄꽃이 만발하면 꼭 고향 생각이 난다. 4월이면 습관처럼 아버지 생각도 새록새록해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어머니는 습관적으로 한숨을 쉬셨다. 죽음의 문턱까지 참았다가 내뱉는 해녀의 숨비 소리 같은 것을 뿜어대셨다. 그토록 죽어라, 죽어라 아버지께 퍼부으시더니 그걸 대신하여 한숨을 쉬게 되신 것 같았다. 내 귀에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거슬렸다. 어머니가 한숨을 쉬면서도 하던 일상은 잘 감당하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보다 더 혼이 날아갈 일이 어머니께 몰아닥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해 12월에 당숙이 돌아가셨다. 돌아가신 당숙을 염하는 것부터 장례를 주관하는 일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사흘간 당숙의 장례를 치른 후에 어머니는 부랴부랴 일상으로 돌아오셨다. 나흘 뒤에 오빠의 결혼식 날짜가 잡혀 있었다. 아버지 없이 개혼을 치르는 어머니는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으셨다. 결혼식 하객 수송을 위한 전세버스를 계약하고 피로연 음식을 준비하셨다. 어머니가 감당해야할 일이 산더미였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다."

어머니는 거의 난리통에 도망가듯 일을 처리하고 계셨다. 홀어머니가 며느리를 보는 일을 거뜬히 치러 내긴 했지만 그때부터 어머니가 약간 이상해졌다.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지셨다. 물건을 심심찮게 떨어뜨리셨다. 한 번씩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셨다. 어떤 때는 하던 일을 잠깐 멈추기도 하셨다. 아무래도 어머니가 이상해지셨다. 


"사는 기 뭔고 모르겠다."

어머니 얼굴에는 웃음기가 거의 사라졌다. 어머니의 기가 많이 빠져 보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꾸역꾸역 일상을 헤쳐 나가셨다.


슬픔은 견디며 살 수 있으나 남편 없이 혼자서 자녀의 혼사를 치르는 일은 슬픔보다 더한 것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한숨을 쉬던 어머니는 오빠를 결혼시키고는 정신줄을 거의 놓으셨다. 


오빠의 결혼 이후 이태가 지났다. 어머니는 조금씩 정신을 차리셨다.

나는 신혼살림을 위한 간단한 가재도구를 준비했다. 어머니는 목화솜을 틀어서 이불 한 채를 만들어 주셨다. 그 바쁜 와중이었지만 당숙모와 어머니가 마주 앉아 대바늘로 한 땀 한 땀 목화솜을 누벼서 만든 이불이었다. 꽃자주 붉은 이불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산뜻해질 만큼 화려했다. 아마도 이불에 핀 꽃처럼 내 결혼생활이 활짝 피어나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그 이불을 볼 때마다 포근하고 정다운 느낌이 들었다. 

 

딱 10개월 뒤에 바로 밑의 여동생이 결혼을 했고 연이어 일주일 뒤에 막내 여동생도 결혼을 했다. 어머니는 1년 안에  딸 셋을 모두 여웠다. 어머니께는 오빠의 혼사에 비해 딸 셋을 연이어 결혼시키는 것이 덜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내가 결혼한 지 약 20년쯤 지나서였다. 어느 날 아주 예쁜 차렵이불이 택배로 도착했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것이었다. 예사로운 이불이 아니었다. 이불을 보는 순간 바로 드러눕고 싶을 정도로 좋아 보이는 차렵이불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통화를 했다.


"이게 뭐예요?"

"이불이지."

"왜요?"

"내가 항상 한이 돼 갖고 내 눈 감기 전에 니 한테 좋은 이불 하나 장만해 줄라꼬."

"어? 나 결혼할 때 혼수 이불 해주셨어요?"

"그랬나? 아닐 낀데? 내가 항상 한이 맺혀 살았는데?"

"결혼 전에 큰 집 아지매랑 엄마가 직접 솜을 틀어서 이뿐 이불 만들어 주셨잖아요?"

"그랬나? 나는 그런 거 기억 안 나는데? 그라마 그냥 잘 덮어라. 그 이불!"

어머니는 딸 셋 중에 누군가에게는 결혼 이불을 못해주신 것을 늘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혼수로 이불 해주는 것을 빠뜨렸다는 것은 아는데 몇 째 딸에게 그랬는지 기억을 할 수없으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혼자서 5남매 모두 대학 졸업 시키고 일 년에 딸을 셋이나 결혼시켰으니 여러 가지 기억들이 뒤엉켜서 조작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신혼 때 해 온 이불은 여러 번 이사 다니는 과정에 짐을 줄인다고 버린 지 오래됐다. 

그러나 어머니가 착각하고 보내 주신 두 번째 혼수 이불, 순면 꽃무늬 차렵이불은 고이고이 잘 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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