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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Jan 18. 2023

 <특급 비밀> 어머니의 '된장 레시피'

- 어머니는 된장, 고추장의 달인

몇 해 전에 어머니를 뵈러 간 적이 있다. 그때는 어머니가 대구에 사는 여동생과 함께 지내셨다. 내가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냉동실에 있던 찹쌀, 밤, 대추, 잣 등을 내놓으셨다. 그것도 모자라서 어머니는 얼려두었던 삶은 미꾸라지와 단배추 뭉치도 꺼내셨다.

어머니는 커다란 시루에 밀가루 반죽으로 시룻번을 부치셨다. 찜솥 시루에 약밥을 찌기 위함이었다. 나는 옷도 제대로 벗지 않고 곧바로 시루에서 약밥을 쪄냈다. 허리가 굽은 어머니가  약밥 재료를 시루에 안치고 내리는 일이 위험해 보였다. 집에서 많은 양의 약밥을 하는 것은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나는 대구까지 가서 일만 하고 되돌아올 판이라 짜증 났다.  


"이게 뭡니까? 놀지도 못하고 일만 하게 생겼네.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데..."

나는 속이 상했다. 얼굴 마주 보며 이야기하며 노는 게 좋으련만 약밥 쪄내느라 늦은 밤이 되었다.


"요즘 사 먹어도 되고, 배달시켜도 되고..."

"나도 안다. 방앗간에 가서 해와도 되지."

"그런데 왜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요즘 누가 못 먹어서 배고픈 사람 있어요?"

"그게 아니다. 이건 다 신토불이다. 방앗간에 가면 내가 안 보는 사이에 찹쌀이 중국산으로 둔갑될지도 몰라. 대추나 밤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뒤바뀔지 누가 아노?"

어머니는 아무래도 편집성 인격장애가 좀 있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을 일단 의심부터 하니까.


약밥 쪄내는 일을 끝낸 후에 어머니는 연이어서 추어탕을 끓이셨다. 삶은 미꾸라지를 소쿠리에 주물러서 살점만 걸러낸다. 쌀을 일듯이 미꾸라지 가시만 골라내는 일은 시간이 꽤 걸렸다.


"장모님의 추어탕은 돈 주고 사 먹으려고 해도 없어요."

내 속도 모르는 남편은 추어탕을 연신 몇 그릇째 먹으면서 어머니를 부추긴다. 사위가 좋아하니 어머니는 우리가 가는 날이면 반드시 추어탕을 잔뜩  끓이신다. 어머니가 끓인 추어탕은 하루 세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담백한 맛이다. 솔직히 나도 그 맛은 인정한다. 그것이 먹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한 번 시킨 적이 있다. 맛이 별로였다. 그 추어탕을 버리지는 못하고 꾸역꾸역 먹었다. 어머니의 추어탕과는 차원이 달랐다. 수도권에서는 어머니와 같은 방식으로 끓이는 경상도식 추어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식혜만이 제대로 된 음료라고 여기신다.

"콜라, 사이다 같은 것은 못 쓴다."

어머니는 탄산음료는 입에도 대지 않으신다. 어머니가 직접 보리싹을 내서 만든 엿기름을 듬뿍 넣은 식혜 맛은 일품이다.


"이거 그냥 먹기 아깝습니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죠?" 남편은 입에 달짝지근하게 당기는 장모님 표 식혜를 무척 좋아한다. 이럴 때는 남편이 너무 밉다. 나는 남편이 '악' 하고 소리를 낼 만큼 그의 옆구리를 집는다. 그리고 나는 화난 얼굴로 남편에게 눈을 흘긴다.


"사위가 그렇게 말하면 가만히 있을  장모가 어디 있겠어요? 제발 맛있다는 말 좀 하지 마세요." 나는 입을 열지 않고 복화술 하듯 남편에게만 들리게 애먼 소리를 해댄다. 사위가 좋다고 하면 어머니는 우리가 갈 때마다 어김없이 식혜를 만드실 게 뻔하다.


나는 어머니가 약밥을 집안에서 직접 만들고 추어탕을 끓이고 식혜를 만드는 게 너무 싫었다.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힘든 수고를 하시는 것이 싫었다. 그런 음식을 하려면 큰 살림 도구도 구비해두고 있어야 한다. 번거로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어머니는 식혜를 하염없이 다려서 조청을  만드신다. 그 조청은 여러 가지로 활용된다.


조청은 어머니가 만드시는 고추장에 들어간다. 고추장에 태양초를 따로 챙겨두어 고추장도 틈나는 대로 담그신다. 어머니의 고추장에는 세상에 좋다는 것은 다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고추장에는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다. 식혜를 고운 물엿이나 갱엿으로 당도를 조절한다. 그 고추장은 그야말로 말그대로 밥도둑이다. 그 고추장을 먹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런 고추장 첨이에요."라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 조청을 뻥튀기에 버물려서 한과를 만드시고 흰 가락엿까지 만드신다. 뜨거운 조청 반죽을 줄줄 잡아당겼다가 다시 합친다. 그 작업을 여러 번 하면 가락엿이 만들어진다. 온 집안은 엿가루 범벅이 된다.


어머니가 하시는 일 중에 가장 말릴 수 없는 일이 바로 된장, 고추장 담그는 일이다. 어머니는 외가에 부탁하여 노란 콩을 심었다. 콩타작이 끝나면 사람을 사서 메주콩을 삶았다. 그런 후에는 메주를 빚어서 매달아 두신다. 그 메주로 엄청난 양의 된장을 담그신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사위는,

"장모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삼 년 치 된장은 만들어 두셔야 합니다."라고 농담을 하곤 한다.  그런 말을 들으시면 어머니가 담그는 된장의 양은 더 늘어난다. 딸, 며느리는 물론 사돈 팔촌까지 된장 나누기를 하신다.  이모, 고모 댁에도 된장을 보낸다. 한 통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웃과 나누어 먹으라며 몇 통씩 소분하여 보낸다. 내게도 매년 변함없이 된장과 고추장이 택배로 왔다. 내게 뿐만 아니라 이웃의 아무개한테도 꼭 한 통씩 전해주라며 여러 통을 보내신다. 어머니는 인정 중독이 있어보인다. 누가 좋다고 하면 아주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좋아하시는 것을 보니...


남편은 어머니가 보내온 된장을 무척 좋아한다.

"이건 된장이 아니지. 뭐라고 표현할까? 된장차?"

남편은 어머니가 보내주신 된장으로 끓인 된장국은 국물도 한 방울 남기지 않는다.


올케 언니는 어머니 표 된장의 극성팬이다.

"어머니, 이건 보통 음식이 아니에요. 제가 사표를 내고 어머님이랑 함께 된장 사업을 하고 싶어요. 세상에 이런 맛있는 된장이 어디 있겠어요?"

현직 교장인 올케 언니는 어머니의 된장에 진심이었다. 그래서 몇 번인가 어머니와 사업 파트너가 되고 싶다고 말을 하곤 했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는 영 불편했다.


"된장 참 맛있지? 비결이 있어, 나만의 비밀."

"뭔데요?"

"원래 이런 거는 며느리한테도 알려 주면 안 되는 긴데?"

"한 번만 말씀해 보세요. 자, 자 아가씨 얼른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대로 적어봐요. 나중에 어머니가 안 계시면 우리가 스스로 된장을 담궈야 하잖아요." 나는 어머니가 된장 레시피를 줄줄 말씀할 속기사처럼 재빨리 따적었다.


올케 언니가  자꾸 어머니를 추켜 세우니 어머니가 된장, 고추장 담그는 일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늘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올케 언니는 어머니의 된장 레시피를 하나의 소중한 문화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렇더라도 어머니와 함께 사는 여동생은 무슨 죄란 말인가? 여동생이 퇴근하면 어머니가 어질러 놓은 집안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된장, 고추장 담그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밑반찬과 다른 장아찌까지 만드느라 온 집안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니 된장 레시피를 받아 적어서 정리한 것/ 어머니의 레시피대로 내가 직접 담근 된장]



그런던 어머니가 요양원으로 들어가시니 택배로 부쳐오던 된장이 동이 난 적이 있다. 그래서 어머니의 <특급 비밀>인 레시피를 참고하여 된장을 담갔다. 인터넷으로 국산 메주를 구했다. '어려운 공부도 하는 데, 그깟 된장이 뭐라고? 레시피 따라 하면 그만이지.' 나는 맘 속으로 우쭐대면 된장을 담갔다. 모양새는 그럴듯했다. 그런데 된장이 완성된 후에 먹어보니 어머니의 그 맛과는 사뭇 달랐다. 일단 너무 짰다. 어머니의 된장은 간이 환상적이었는데... 어머니의 손맛을 무시했던 게 부끄러웠다. 어머니를 된장, 고추장의 달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썸네일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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