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a향기와 찬양Lim Jan 21. 2023

어머니를 '수신 거절' 했습니다

- 치매인 듯 치매 아닌 듯

정말이지 양가감정은 참 힘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이 어머니일진대 제일 싫은 사람도 어머니다. 두 마음이 늘 내 속에서 다툰다.


어머니는 한사코 무엇을 쏟아부어주시려고만 하셨다. 내가 싫다고 해도 디밀듯이 보내주셨다. 그것이 참 싫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주고 싶은 맘이라 그러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잔뜩 보내오는 택배를 열어보기가 싫었다. 그 속에 동봉해 오는 쪽지를 읽기 싫었다. 어머니가 비뚤비뚤 적어서 보내는 쪽지를 보면, '내가 알아서 잘 사는데 왜 잔소리를 하셔?'라는 반항감이 생겼다.  '나의 어머니인데 내 마음을 이렇게도 모르실까? ' 하며 짜증 내는 나 자신도 싫었다. 


어머니는 쌈꾼이었다. 어머니 속에 응어리진 것을 싸움으로 풀어내는 분이었다. 성인군자처럼 점잖은 아버지에게 너무 하시는 같았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하는어머니는 아버지를 한사코 갈구셨다. 솔직히 어머니가 이해되긴 하지만 어린 마음에는 제발 싸우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어머니는 울화통이 터져서 그러셨겠지만 그걸 지켜보는 자식들은 우주가 흔들리는 위협느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다툼이 잦아질수록 아버지의 삶은 더 망가지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결국 아버지는 천수를 누리지 못하시고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떠나 신 후에 어머니는 홀로 우리 모두를 교육시키시고 출가도 시키셨다. 그 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는지 어머니는 조금씩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정신을 서너 번 잃으셨다. 다행히 골든 타임을 넘기지 않아서 그때마다 큰 일은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CT나 MRI를 판독해 보면 어머니의 뇌는 '연화'가 심하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어머니는 분노나 행동 조절이 어렵다고 했다.


어머니는 기억력이 뛰어나게 좋으시다. 그래서 모든 연락처를 다 외우고 계신다. 어머니는 아무 때고 자녀들에게 전화를 하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신다. 어떤 때는 전화로 당신의 쌓인 분노를 다짜고짜, 따발총 쏘듯이 쏟으신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오면 어머니께서 하는 말씀의 내용을 듣지 않았다. 대부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들었던 내용이다. 아니면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였다. 어머니는 한 참 얘기하시다가 내가 아무 반응이 없으면,

"니, 듣고 있나?"

라고 화를 내시곤 했다.


어머니의 잦은 전화에 견디다 못한 나는 통화를 시작하자마자 아예 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면 한 30분 후에 폰이 잠잠해지곤 했다. 어머니는 혼자서 독백을 실컷 하신 셈이다. 이렇다 보니 어머니의 전화 요금은 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수십 통씩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오곤 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어머니를 끊지 않으면 내가 미칠 것만 같았다. 꿈에도 어머니의 전화가 울리곤 했다. 그래서 어머니 전화를 수신거절 목록으로 이동시켰다. 수신 차단 목록에 떡하니 '어머니'가 있다


그러나 나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크다.


"아무래도 니가 젤 안정되게 살고 있으니 니가 이걸 챙겨라." 어머니는 고향 옛집에 나뒹굴어 다니던 사진들을 다 모아서 대형 봉투에 담아 내게 전달하시며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 중에는 나를 제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니는 참 똑똑하고 이뿌다."

어머니는 내게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니 나는 어머니를 가장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머니께 살갑지 못하게 대하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다. 맘 복잡한 양가감정이다.


어머니께 '재가 요양사'가 와서 잠깐 돌봐주신 적이 있다. 그분은 싹싹하고 좋은 분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매사에 고집을 피우고 그 요양사를 의심하여 결국은 그분이 그만두셨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무엇인가를 만든다고 온종일 일만 벌이셨다. 혹시 화재라도 날까 싶어서 겁이 났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의논하여 어머니를 '어르신 유치원'에 등원시켰다. 그러나 어머니는 거기도 얼마 다니지 못했다. 계속 다른 어르신들을 의심하고 걸핏하면 다투셨다. 어르신 유치원에 다니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본인이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요양원에는 안 간데이. 나를 요양원에 보내면 나는 접시물에 빠져 죽을끼다."

어머니는 늘 우리들에게 엄포하듯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어머니가 낙상을 하여 입원한 적이 있다. 그 옆 건물이 요양 병원이었다. 그렇게 하여 어머니는 원치 않았던 요양원 생활을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셨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부적응 어르신이었다. 요양원에서 점점 어머니 모시기를 힘들다고 하소연을 해왔다.


차라리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으면 더 나을 판이었다. 치매 전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모시면 그곳은 다 그러려니 할 텐데... 설령 어머니가 별난 행동을 하셔도 용납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치매라는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총기가 또렷하여 연산 테스트에서 한 치의 오차가 없었다.

100-3? 하면 97!

97-3?이라고 물으면 94!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틀리지 않고 뺄셈의 정답을 말하셨다. 치매는 연산하는 능력이 망가진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어머니는 치매인 듯, 치매 아닌 듯 애매한 상태였다. 그냥 감정 조절 장애였다.


그 요양원으로부터 강제 퇴원을 암묵적으로 부탁해 왔다. 우리 형제들은 정말 난감했다. 감당이 안 되는 그 어머니를 모실 자식이 없었다. 어머니를 모시기 힘든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결국은 건강도 좋지 않은 둘째 여동생이 십자가를 지듯이 어머니를 모셔보기로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울산에 있는 요양원을 떠나서 진주로 가셨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이전 11화 <특급 비밀> 어머니의 '된장 레시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