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멈춘 날
아버지의 병명을 전해 듣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파란 하늘이 회색빛으로 보였다. 병원에서 수술을 거절당한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 고향의 하늘은 맑았다. 패잔병의 기분이랄까? 참 얄궂은 생각들이 뒤엉켜서 디밀고 올라왔다. 고향에서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없는 고향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쯧, 쯧, 쯧."
아버지의 병명을 전해 들은 사람들의 혀 차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사람이 혀를 찰 때는 동정하는 맘보다는 비웃는 농도가 더 강하다는 것을 나는 그때 눈치챘다.
'꼴좋다. 잘 먹고 잘 놀더니, 꼴좋아. 쯧, 쯧, 쯧.'
라고 사람들은 속으로 말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맘을 품고 있다면 절대적으로 아버지 편을 들고 싶었다.
"우야노? 우야면 좋노? 자 이거."
아버지께 병문안 오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두유를 사 왔다. 판때기를 대어 만든 가게 안 하꼬방에는 날마다 두유가 쌓였다. 마치 출석을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외없이 아버지를 보러 왔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늘 다투셨고 우리에게는 독재자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긋나긋하고 친절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 번 본다고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왔다. 아버지는 식도암이라 물 한 방울도 넘길 수 없어서 그 두유를 마시지 못하셨다. 나는 사람들이 들고 온 두유가 보기 싫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두유를 마시지 않는다. 두유가 아버지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던 그 새벽에 나는,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라는 찬송가를 불렀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찬양)
"근아, 근아, 이게 무슨 일이고?
저 자슥들 다 키워놓고 좋은 꼴도 못 보고 이게 무슨 일이고?
보 쳐 놓고 물도 못 대보고...
원통해서 우예사노? 억울해서 내가 인자 우예사노?
나도 갈란다. 나도 고마 니 따라 갈란다.
니 없는 세상에 내가 우예 살겠노? 말 좀 해 봐라. 한 번만 눈 좀 떠 봐라."
사람들은 고모의 곡 소리에 저마다 눈물을 훔쳤다. '나는 이제야 부모님의 싸움을 보지 않을 수 있겠다.'라고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는,
"잘 됐다. 어차피 못 고칠 병이라면 고생 덜하고 가는 기 낫다."라고 말씀하며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오빠는 포효하듯 큰 소리로 울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오빠가 우리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야 할 판이었다. 오빠는 아마도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오빠가 통곡하는 것을 보시고는 눈물을 훔치며 말씀하셨다.
"저 자슥이 저렇게 서럽게 우는데 내가 정신을 차려야지."
"쟈는 왜 저라노? 울어라! 나중에 후회한데이. 울어야 할 때 팍 울어야 되는 기라. 그라고 아부지가 마지막으로 가는 길인데 왜 절을 안 하노? 배운 딸내미가 영 파이네."
곁에서 당숙모가 한 마디 하셨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장례 절차가 마치 연극하는 것 같았다. 마을에서 부모님은 늘 다투기만 했었는데 그런 아버지가 만수무강하지 못하고 아까운 연세에 돌아가신 것이 부끄러웠다. 또래 남자애들도 장례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울고 싶지 않은데 마치 관객 앞에 서있는 연기자 같은 기분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굳이 울며 불며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장례 절차가 얼른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세상 참, 별꼴이네."
상여 앞에서의 내 모습을 보고 친척 몇 분이 수군댔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