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럴 때면 시내버스를 탑니다
토요일이면 세컨 하우스에서 아들(중증으로 장기간 투병 중)이 지내고 있는 아파트(본가)에 간다. 토요일 오후에는 남편, 활동보호사와 함께 세 사람이 하는 일이 있다. 아들을 '침상목욕'시키는 것이다. 세 사람은 굳이 아무 말하지 않아도 목욕을 끝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서로 합이 잘 맞는다. 한 달에 한 번 아들의 이발도 한다. 그때도 3인조가 함께 한다. 여하튼 우리는 손발이 척척 잘 맞는다.
세컨 하우스에서 아들이 지내는 아파트까지는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다. 걷기에는 어중간해서 시내버스를 타곤 한다.
그날 시내버스에 올라타고 있는데 기사님이 뭐라고 잔소리?를 했다. 무슨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기사님이 민감한 어조로, 마치 아이를 혼내는 어투로 승객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거기, 서 있지 마세요.
거기, 손님~ 자리에 앉지 않으면 버스 출발하지 않겠습니다.
얼른얼른 타세요.
절대로 미리 일어나지 마세요.
반드시 버스가 멈추면 일어나세요.
버스 기사님이 하는 말이 백 번 맞다. 버스 내에서 승객들은 안전을 위해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승객들이 기사분의 말을 들은 척하지 않았다. 겨우 두 정거장 가는 동안 내내 기사분은 큰소리로 이래라저래라 하고 있었다. 그런 말을 쉬지 않고 들어야 하는 승객들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바른 소리인데도 듣기가 거북했다. 버스 기사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듯했다. 버스에서 가급적 빨리 내리고 싶은 맘이었다. 그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다행히 나는 두 정거장 만에 내리면 그만이었다.
또 다른 토요일이었다. '인천 시내버스 87번'을 탔다.
버스에 올라타는데,
반갑습니다. 선생님, 어서 오세요.
아주 명랑하고 활기찬 목소리가 들렸다.
어? 내가 아는 분인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기사님이 다정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버스에 올라타는 각 사람을 향하여 기사님은 개별적으로 환영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다음 정류장에 내리는 승객에게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라고 큰 소리로 배웅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그 인사를 받고 나도 그분께 '수고하세요.'라고 맞인사를 했다.
아파트 입구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기분이 좋았다. 그날은 다른 날보다 덜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들의 침상 목욕을 끝냈다.
또 우연히 '인천 시내버스 87번'을 탔다. 그때는 세컨 하우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또 기사님은 목청껏 승객들에게 인사를 해주고 있었다. 그러는 도중에 샛길에서 어떤 차가 매너 없이 끼어들기를 했다. 일반적으로 그럴 경우에는, '에이, 씨×× ~, 어떤 놈이야?' 이렇게 화를 내는 경우를 봤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기사님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상냥하게 인사하던 컨셉으로 있다가 갑자기 무지막지하게 화를 낼 수 없지 않겠는가?
온종일 큰 소리로 인사하는 것이 운전하는 것보다 더 에너지가 나갈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87번 버스 번호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곧바로 다른 차가 꽁무니를 물고 가서 차 번호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멀리멀리 사라지는 시내버스를 쳐다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얼핏 봤지만, '인천 시내버스 87번, 71바 5757'이었던 것 같다.(정확성은 98% 정도)
검색을 해보니 87번 버스 기사님 중에 그런 분이 있었다는 '칭찬합시다'라는 글이 몇 개 보였다. 그렇다면 87번 버스에서 운전하는 모든 기사님이 그런 인사 멘트를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아들이 지내는 아파트 버스 정류장을 경유하는 모든 버스는 나의 세컨 하우스를 지난다. 버스 도착 정보판에 곧 도착할 버스를 안내하고 있다. 몇 개의 버스가 동시에 도착할 때도 있다. 당연히 87번 버스를 골라서 타고 싶은 맘이었다.
어느 날 87번 버스를 탔는데 기사님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87번 버스 기사 분 모두가 그렇게 인사를 건네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그분이 대단해 보였다. 나도 브런치에서 그분께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