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채를 주고 떠난 남자들
요즘 누가 부채질하나?
그래서 사람들이 더위를 견디는 힘이 부족해진 듯하다.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는 손 선풍기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러나 요즘 부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05년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교사 임용을 위한 연수를 받을 기회가 왔다. 대학을 졸업한 지 22년이 지났던 때였다. 그 이야기를 브런치스토리에 발행한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mrschas/17
집을 떠나 합숙하며 영어 부전공 연수를 받았다. 신물 나도록 공부를 했다.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공부를 했다. 잠도 거의 자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학구파가 아니다. 그러나 내 앞에 닥친 일을 해치우는 타입이다. 그때 공부를 해야 하는 일이 내게 펼쳐진 셈이었다. 그래서 그 해는 머리 싸매고 공부하며 7개월을 보냈다.
그 연수가 끝나는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함께 연수를 받았던 조쌤이 뒷짐을 지고 내게로 왔다. 물론 남자쌤이었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꼭 임용되시기 바랍니다."
'임용(任用)'이라는 말이 잔잔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과연 임용될 수 있을까? 교사 임용은 그냥 남의 일처럼 들렸다.
조쌤은 S대 교육학과 출신이었다. 국립대 졸업생들의 교사 발령 적체로 미발령 되어 지내다가 그해에 부전공 연수를 받은 분이다.
조쌤은 미리 접부채를 구입했던 것 같다. 그 부채에 기막힌 글귀를 적었다.
[조쌤이 전해 준 부채 / 그 부채에 적힌 글귀]
부채에 그려진 그림과 글귀가 어우러지니 멋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죽지상혼(竹紙相婚) 기자청풍(其子淸風)'이라는 말이었다. 그 내용은 '대나무와 종이가 혼인하니 그 아들은 맑고 밝은 바람이구나.'라는 뜻이다.
감사한 맘으로 간직하고 지냈는데 부채의 예언처럼 나는 임용이 되었다. 교직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이번 8월 말에 정년 퇴임한다. 조쌤이 건네준 부채가 전에 없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내게 부채를 건네어 주었던 조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수소문하여 조쌤을 찾아 이 부채를 보여주고 싶다. 돌아보니 세월이 순식간에 흘렀다. 약 20년이란 시간이 지났으니 길에서 스쳐 지나가더라도 서로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 일장춘몽처럼 내 교직생활은 끝나고 있다.
조쌤의 부채는 내가 무사히 교사의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부채질을 했을 것 같다.
또 다른 접부채에 대한 얘기다. 몇 해전 내 옆자리에 앉았던 정쌤은 미술교사였다. 그분은 교사이자 화가였다. 우리 학교 복도에는 정쌤의 그림이 층층마다 걸려있다.
자신이 정년 퇴임하며 내게 특별한 부채 하나를 선물로 건네주고 떠나셨다.
정쌤이 부채에 그림을 그리고 글귀를 써 주셨다. 아, 글귀가 어려워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림과 글씨가 예술 그 자체다. 잘 간직해 두면 가보가 되려나?
"항상 Cha쌤을 보면 이 글이 생각이 나요."
"이 글의 뜻을 제가 알 수가 없네요."
"매화가 어려움과 추위를 견딜수록 더 진한 향기를 발하는데 Cha쌤도 딱 그래요."
"아하, 그런 뜻이군요. 정말 감사해요."
시경에서 가져온 글귀란다. 정쌤은 잘 설명해 주었지만 한문에 조예가 얕은 내가 그 깊은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梅經苦寒 發淸香人 亦如此 <매경고한 발청향인 역여차> (매화는 추운 고통을 겪어야 맑은 향을 내뿜고 당신도 마찬가지다.)
수려한 필체의 글맵씨가 예술이다. 또한 붓으로 매화를 그리고 글귀를 쓰는 동안 나를 얼마나 응원하셨을까? 그 마음이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정쌤, 참 감사해요. 두고두고 잘 간직할게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 둔 부채가 두 개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 그 부채를 집어드니 감회가 새롭다.
요즘 누가 부채질을 하랴 만은 나는 부채를 한 번씩 흔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