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물을 준비했어요
'어린이날'이라고 매스컴에서 떠들썩했다. 그도 그럴 것이, 4년 만에 마스크 없이 아무 데나 맘 놓고 갈 수 있으니 어린이는 물론이고 모두가 신이 났을 것이다.
뉴스를 보니 어린이날 선물이 웬만하면 20~30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그 선물을 받은 어린이가 그것을 얼마나 오래도록 가지고 놀지? 애먼 돈만 날리고 또다시 새로운 선물을 기대하고 있을 어린이들도 많을 것이다.
어린이날이라고 하지만 나는 막상 선물할 데도 없다. 아직 손주가 없으니...
그런데 신생아 보다 더 손이 많이 가는 34살 된 아들이 있다. 11년째 병상을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그 녀석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아들에게는 어떤 선물도 아무 의미가 없다. 입으로 음식을 삼킬 수 없고 손으로 무엇을 할 수도 없는 절대 무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의 생일이라도 무엇을 해줄 수 없다. 그 마음을 적었던 브런치 글이 있다. 그러한 마당에 어린이날이 무슨 대수겠는가?
https://brunch.co.kr/@mrschas/165
특별한 날이라 여기며 아들에게 딱 필요한 것을 생각해 봤다. 아들에게 반팔 메리야스를 선물하고 싶었다. 실제적으로 그에게 요긴한 선물이 될 것 같았다.
병원에 있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환의만 입고 병실에서 지낸다. 그런데 나는 아들에게 환의 속에 내복이나 반팔티를 입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환의 속에 겨울에는 내복을, 여름에는 반팔티를 입힌다. 그렇게 하니 땀을 받아내기도 낫고 배에 생바람이 스치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라운드 반팔티는 목의 삽관이 있는 곳까지 목 테두리가 닿아서 드레싱 할 때 늘 불편했다. 그래서 목이 늘어진 반팔티를 더 자주 입힌다. 그러다 보니 환의 속에 있는 반팔티는 후줄근해 보였다.
'침대에만 누워있는데 아무 거나 입으면 되지.'
보기가 좋지 않아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린이 보다 더 어린 아들을 위해 이 날을 <<자녀의 날>>이라 나 홀로 제정했다. 아들에게 부드러운 순면 반팔 메리야스를 선물하기로 했다. 아들도 그걸 입으면 기분이 상쾌해질 것이다. 순면 4종 반팔 메리야스 세트.
그리고 한 가지 더 선물하기로 했다. '죽사'(뱀부) 목욕 타월이다.
2017년 북경 여행에서 처음 접한 죽사 타월은 흡습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때부터 아들을 위해 죽사 타월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었다.
밤낮없이 씻기다 보니 타월이 많이 필요했다. 침상 목욕을 시킬 때는 타월 10개도 부족하다. 그래서 몇 년 전에 구입했던 죽사 타월은 구멍이 송송 날 정도가 됐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서 욕실 바닥에 있는 물기 닦는 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정한 <<자녀의 날>>에 아들에게 꼭 필요한 죽사 타월도 선물했다.
내년 <<자녀의 날>>이 기다려진다. 그때도 아들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을 준비할 예정이다.
내년 그날에는 먹을 수 있는 것을 준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준비해도 되는 상황이면 좋겠다. 아들이 입으로 먹을 수 있다면 한 트럭의 먹거리도 준비할 수 있겠다. 아들이 휴대폰이나 펜 등을 들고 사용할 수만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만질 거리를 잔뜩 준비할 수 있겠다.
아들이 내년, <<자녀의 날>>에 좀 더 업그레이드된 선물, 자신이 직접 누릴 수 있는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참 좋겠다.
[커버 사진: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