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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Mar 16. 2024

수제비~, 좋죠~!

- 영양 만점 수제비를 끓였어요

"여보, 오른손 들고 나를 따라 해 봐요."


남편이 선서하듯 오른손을 들었다.


"삼식이는"

"삼식이는"

"주는 대로 먹는다."

"주는 대로 먹는다."

"아멘!"

"아멘!" 


전업 주부 생활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매일 식사를 챙기는 일이 한몫이었다. 하루 세끼 밥을 먹을 수는 없어서 한 끼 정도는 별미를 먹기로 했다. 저녁 준비를 하려다 말고 남편에게 선서를 시켰다.

오늘 저녁은 수제비였다. 내 맘이었다. 삼식 씨*는 주는 대로 먹기로 선서했으니...




수제비에 얽힌 일이 몇 가지 떠올랐다. 수제비에 대한 추억이 솔찬하다. 


어릴 때 소 먹이러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면 할머니나 어머니가 수제비를 끓여 주셨다. 별미가 없던 시절에 수제비는 참 맛있었다.

시멘트 담장 밑에 콘크리이트 벽돌 몇 개를 놓고 그 위에 양은솥을 걸었다. 땔감도 제대로 없어서 밀짚으로 불을 지폈다. 수제비 반죽은 질펀했다. 그래서 다른 대접에 맑은 물을 따로 떠놓고 수제비를 한 번 뗀 후에 반죽 묻은 손을 그 물에 담갔다가 수제비를 뗐다. 때로는 수제비 덩어리가 밀짚에도 떨어지고 불속으로도 떨어졌다. 불에 떨어진 반죽 덩어리는 구워져 맛있는 간식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 수제비 반죽을 물컹하지 않게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여고 시절이었다. 교회 학생회 수련회를 갔을 때, 교회 후배 은도는 수제비 반죽을 만두피 반죽처럼 되직하게 했다. 그 수제비 피를 큰 쟁반에 많이 떼어 두었다가 육수가 끓으면 하나씩 집어넣었다. 수제비를 그렇게 끓이는 것이 내게는 도시스러워 보였다. 은도는 역시 달랐다. 그때부터 나는 수제비 반죽을 은도처럼 했다. 질펀하게 된 반죽으로 수제비 끓였던 방식을 잊기로 했다. 그때부터 은도는 내게 커 보였다. 내 후배 은도에 대한 이야기를 브런치 글로 발행한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mrschas/8




대학을 졸업한 후 미발령된 상태로 친구 A의 집에 잠시 얹혀 지낸 적이 있다. A는 대학 진학 대신에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여 합격했다. 부모님이 부산에 미리 아파트를 구해놓은 상태였다. A 혼자 그 아파트에 지내기가 뭣하여 신혼부부에게 아파트의 작은방을 세놓고 있었다.


그 신혼부부는 매일 한 번씩 수제비를 끓였다. 한 부엌을 사용하니 그 집 살림을 훤히 알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만 해도 아파트인데도 연탄을 땠다.

신부는 수제비를 끓일 때 계란물에 송송 썰은 파를 담갔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그것을 떠서 끓는 수제비에 넣었다. 그냥 파를 넣고, 계란을 깨뜨려 넣는 것이 아니었다. 수제비를 맛있게 끓여 먹은 후에 그 부부는 방으로 들어가서 교성을 질러대거나 쿵쾅거렸다. 그래서 그곳에 오래 얹혀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수제비를 잘 먹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의 출산을 앞두고 매일 한 번씩 수제비를 끓여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이왕 불러 있는 배, 그래서 배 나오는 것에 대하여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아구에 찰 때까지 수제비를 먹었다. 임산부인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편과 딸내미도 수제비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때처럼 수제비가 맛있던 적은 없었다. 우리 아들이 분식을 좋아했던 이유가 그때 먹은 수제비 때문이었을 것 같다. 12년째 세미 코마 상태인 아들이 일어난다면 꼭 맛있는 수제비를 끓여 주고 싶다.




오늘의 수제비는 나의 야심작이다. 일단 수제비 반죽의 차별화다. 밀가루: 견과류 분말: 표고버섯 가루= 5: 3: 2 정도로 하여 반죽했다. 반죽할 때 소금 한 꼬집 넣은 물을 섞어가며 대충 버물렸다. 그런 후에 그 반죽을 비닐로 씌워 냉장고에 한 동안 두어 숙성시켰다. 수제비를 끓이기 위해 그 반죽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치대니 손에 들러붙지 않아 좋았다.


육수는 요즘 나오는 '황금비율 진한 육수 한 알'이란 것으로 했다. 간은 액젓으로 맞췄다. 파 송송 썬 것에 계란을 미리 풀어 두었다.


[대충 반죽을 한다. / 비닐로 밀봉하여 냉장 보관하여 숙성시킨다.]
['황금 비율 진한 육수 한 알' 2개를 넣었다. 편리했다. / 송송 썰은 파에 계란을 미리 풀어둔다.]




"속이 확 풀리네."

"웰빙이다. 웰빙."


남편이 손들고 선서를 했기 때문인지 아주 맛있게 먹었다.


[웰빙 수제비, 모양은 기존의 것보다 투박해보이지만 맛있었다. 건강에도 좋다.]


'황금 비율 진한 육수 한 알'을 넣고 끓인 수제비의 국물이 맑지는 않았다. 그러나 맛은 좋았다.  

우리는 수제비를 두 그릇씩 해치웠다.


우린 수제비 도둑이었다.


*삼식이: 삼시 세끼 다 집에서 챙겨 먹는 남편을 일컫는 말

#수제비  #멸치 육수  #삼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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