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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Apr 01. 2024

'재미'에 재며들다*

- MZ세대는 경탄 중입니다

오래 전 일이다. 김정운 교수님이 '재미학'에 대해 강의하셨다. TV로 그 강의를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있다.


그분은 화려한 입담으로, 삶에 있어서 재미가 무척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강의가 내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가왔다. 강의 요지는 '재미있어서 감탄하는 만큼 성공한다.'였다. 재미에 대해 익숙하지 않았던 내게 경종을 울렸다. 인생은 재미있어야 한단다. 즐길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ztcKahnmkQ


요즘의 화두인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나는 유년 시절에 '재미'와 담을 쌓고 살았다. 내 어린 시절은 즐기지 못하여 노잼이었다.





마을의 중담에는 조무래기들이 구슬 치기를 하려고 늘 모여들었다. 구슬치기 하는 곳은 숫제 반들반들했다. 땅바닥에 몇 개의 구멍을 파 놓고, 구슬을 퉁겨 차례로 넣는 놀이다. 그냥 상대방의 구슬을 맞히면 따먹는 법도 있었다. 온종일 구슬치기를 하는 애들은 구슬 부자였다. 자기 집 한 구석에 따모은 구슬을 가득 쌓아놓고 자랑해 댔다.


"이리 온나, 얼라 업어줘라."

막 '재미있게' 구슬을 따기 시작할 즈음이면 할머니가 불렀다. 도살장에 끌려 가는 심정이었다. 눈앞에 오색찬란한 구슬이 어른거렸다. 아쉬워서 글썽이는 눈물도 구슬처럼 반짝였다.


딱지 치기도 재미있었다.

땅바닥에 딱지를 놓고 다른 아이가 자기 딱지로 상대 딱지의 옆이나 위를 힘껏 내리친다. 그 딱지가 뒤집히면 따는 것이다. 딱지가 달싹 달싹 잘 넘어갔다. 나는 딱지 넘기는 비결을 터득했다. 재미나기 시작했다. 내 딱지가 많아지고 있을 때쯤에,


"밭에 가서 고추 따라."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소중한 딱지 한 두 개를 흘리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으로 서둘렀다. 두둑해진 내 딱지를 집어던져 버리고 싶었다. 다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놀이에도 나는 고수였다. 내가 빠지면 안 된다고도 할 정도였다. 그래도 한두 번 하고 나면 꼭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다른 애들과 달리 우리들이 해내야 하는 집안일이 많았다. 부모님이 장사하느라 장터에 나가시기 때문이었다.


겨울에는 온 동네 애들이 털모자를 눌러쓰고 연을 날렸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서, 훨훨 날고 있는 연을 바라보노라면 나는 차라리 연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더 먼 세상을 보고 싶었다. 가오리연과 방패연이 싸움을 붙기도 했다. 아랫담과 윗담 사이에 연싸움 대결이 벌어지면 애들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러댔다.


"너거 엄마랑 아부지가 싸움 났다."

한창 '재미있을 때'였다. 부모님은 날거리를 하듯 싸우셨다. 연날리기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슬며시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못 노는 것도 속상한데 부모님이 다투는 것이 애들에게 창피했다. 밥을 굶어도 좋으니 부모님이 싸우지만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겨울철 '최고의 재미'는 썰매 타기였다. 송판으로 만든 썰매를 타면 맘 속에 있던 고민이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썰매를 맘껏 타 보지 못했다. 고향 논 바닥을 얼린 후에 썰매를 타보고 싶은 마음이 때때로 생길 정도로 한이 된다.


"쇠죽 끓여라."

할머니가 다가와서 내 목덜미를 끌고 나갔다. 나는 썰매처럼 미끄러지면서 논 밖으로 나가곤 했다.

재미있다거나 즐거웠던 추억이 별로 없던 유년시절이다. 막 재미있을 때쯤이면 언제나 내게서 재미가 거세되었다.




빈원더스는 온통 재미로 가득한 곳이었다. 재미가 고프면 빈원더스에 가면 될 성싶다. 몇 가지 어트랙션을 즐기며 재미있게 놀았다. 재미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도 슬슬 재미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다음에 우리가 간 곳은 '4D 체험을 하는 알라딘 양탄자' 타는 곳이었다. 어지러울 것 같다며 남편이 슬슬 겁을 냈다. 나는 '바이킹 리버 라피드 라이더'를 거뜬히 탔으니 알라딘 양탄자 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졌다. 우리 모두는 양탄자를 타고 사막을 날아다니고 궁궐 안을 쳐들어가기도 하며 신이 났다. 온통 휘돌리고 어지럽게 했다. 그것이 스릴이었다.


다음에 들린 곳은 '드래곤 스펠'이란 곳이었다. 역시 여기도 4D관이었다. 우리가 권총을 잡고 화면에서 달려드는 적을 사격하는 곳이었다. 빌딩 숲을 날아다니며 쉴 새 없이 총알을 갈겼다. 정조준하여 잘 쏘면 그것이 점수가 됐다. 게임장이었다. 사위가 1등 했고 남편은 부진아 수준의 낮은 점수를 받아 꼴찌 했다. 남편은 게임 룰을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때 군대에서 명사수였다는 그의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뻥이었나?


웃고 떠들며 고함지르니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재미였다. 어떤 이는 조작된 스릴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쌓인 재미가 많지 않아서일까? 나는 그런 것 마저도 재미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하는 것은 뭐든지 좋았다.




저녁 시간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현대적인 기술을 이용했다는 대규모 멀티미디어 라이브 공연을 보기로 했다. 우리는 일찌감치 도착하여 정중앙에 앉았다. 사진도 찍고 코코넛 주스도 마셨다.

[3D 매핑: 실제 환경에 매핑한 기술이 돋보인다.]


원스쇼는, 3D 매핑, 연기, 불꽃, 얼음… 최대 61미터 높이까지 분사할 수 있는 39개 이상의 화염 노즐, 150개의 안개 분사기, 10개의 최첨단 예술 프로젝터 등 커팅 엣지로 재탄생시킨 동화 세계라고 빈원더스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 홈피에서는,


"상상 속에만 있는 동화의 나라를 탐험하세요."라고 호객 멘트를 날렸다.


[객체를 3차원으로 프로파일링 하여 실제 사물과 한데 어우러지게 하는 기술이 돋보인다.]


원스쇼는 기술 효과, 효과음 및 조명 효과 외에도 이야기와 상상력의 통합을 중시한다고 했다. 과연 그랬다. 원스쇼는 통합, 종합 예술이었다. 3D는 물론 '사람과 3D와의 콜라보'를 보여주었다. 뮤지컬, 영화, 오페라의 요소가 다 가미된 라이브 쇼였다. 


[실제 불이 나서 앞에 있는 우리에게까지 열기가 다가왔다.]


배우의 연기와 3D 화면이 협연하는 장면은 가히 걸작이었다. 분사된 안개를 스크린 삼아 연출되는 갖가지 3D화면은 신기술의 극치였다.


"와아, 와아."

딸 내외는 쉬지 않고 경탄하고 있었다. 물 위에 실제 불이 나기도 했다. 불이 관객 가까이에서 타올라 현장감이 쩔었다. 물, 불 가리지 않고 쇼로 표현하고 있었다. 베트남어로 내레이션을 하여 내용을 알 수 없었으나 악한 것을 혼내는 것 같았다. 권선징악, 그런 내용으로 이해됐다.


하루에 한 번만 쇼를 한다고 원스쇼라고 했나 보다. 짐작컨대.


사위는 이번 여행 중, 그 곳에서 가장 감동하는 듯했다. 쉬지 않고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MZ세대들은 이렇게 맘껏 감동한다. 그들은 재미를 알고, 재미를 즐기고 있다.

[마치 건물에 불이 점점 켜지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시각화했다.]


그 전날 그랜드 월드에서 봤던 분수쇼도 좋았지만 이 원스쇼는 '쇼의 완전체, 쇼의 결정체'다.


이제부터, 틈나는 대로 재미를 느끼며 살아야겠다.

재미가 창조란다.




*재며들다: 재미에 스며들다는 의미

#원스쇼  #분수쇼  #안개 분사  #빈원더스  #라이브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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