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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찬양Lim Jun 04. 2022

상추 씨름

- 포기할 수 없으니 끝까지

 길을 걷다가 야들야들한 상추가 자라고 있는 텃밭을 지날 때면 스멀스멀 탐욕이 생긴다. 꼭 한 번은 상추를 스스로 키워보고 싶었다. 그러나 숨 쉴 틈 없는 일상에서 그게 쉽지는 않았다. 지난해, 공지문 하나를 읽게 되었다. '상자텃밭 가꾸기 이벤트'였다. 상추를 키워보려고 사이트에 신청 접수를 했다. 발표일을 손꼽아 기다려서 당첨을 확인했다.


 ‘상자텃밭’에 채소·꽃 키우세요 - https://m.khan.co.kr/local/Incheon/article/202104182118005#c2b

  2세트를 배달받고 드디어 상추 기르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상자텃밭에 심겨 있던 상추가 시들시들 죽어가기 시작했다.

어라, 이게 아닌데?

 매뉴얼대로 했는데도 상추는 견디지 못했다. 정남향인 아파트 베란다에서 뭐가 부족해서 자라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베란다에는 군자란이나 사랑초 등이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는데 유독 상추는 힘을 내지 못했다. 속상해하고 있을 때, 지인이 텃밭에서 상추 모종을 가져다주어 다시  상자텃밭에 심었다. 그런데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또 몇 번 더 시도했던 것 같다. 산책길에 자라는 상추들은 운동선수들처럼 활기차 보였다. 별 게 다 부러웠다. 그 밭주인은 웃자라고 간격이 밴 곳의 상추를 솎아서 밭 옆에 내동댕이쳤다. 마치 내게는 르주아처럼 느껴졌다. 뿌리째 뽑힌 상추 몇 포기를 들고 와서 다시 상자텃밭에 심었다.


청승스럽게, 이제 그만 하지. 남의 것 손대면 안 돼. 남편이 남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필요 없어서 뽑아버린 건데요? 그게 어때서요. 나는 뾰로통하게 대꾸했다.

 상추와 씨름하듯 한 해를 보내고 있을 때,

상추는 실내에서는 힘들고 햇빛과 바람이 있어야 한대요.라고 지인이 귀띔해주었다.  


 늦가을이었다. 어느 텃밭 둑에 내동댕이 쳐졌다가 무심히 자라서 다 늙어 버린 상추 하나를 챙겨 와서 화분에다 심었다. 마침 그때, 집안 사정상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했었다. 그 빌라는 창틀에 빗물받이 차양 앵글이 있어서 화분을 두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 상추를 화분에 옮겨 심고 날마다 지켜봤다. 상추가 제대로 자랐다. 그 베란다 앵글은 상추를 키우는 환경으로 적합하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결국 상추는 꽃을 피우기까지 했다. 세상에 볼품없는 것이 있다면 상추 꽃이 아닐까. 그나마 찬바람이 불자 상추는 흉하게 시들었다. 나는 상추를 뽑아서 휴지통에 버리고 손을 씻었다. 긴 씨름의 끝이었다.


반드시 상추를 다시 한번 길러 보리라. 내심 다짐을 했다.


  해가 바뀌었고, 여지없이 곳곳에서 파릇하게 물기 머금은 상추들이 심심찮게 내 탐욕을 끌어올렸다. 밤 운동을 나갔을 때, 혹시 텃밭 주인이 내동댕이쳐둔 상추가 있는지 살펴봤다. 없었다. 한 포기의 상추를 어디서 어떻게 구한담?

[하룻밤 지낸 후에 세수를 한 상추]


 학교 운동장 한쪽에 여러 가지 야채를 기르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방과 후에 그곳을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고추, 쑥갓, 방울토마토, 가지 등이 잘 자라고 있었다. 아, 그런데 내가 원하는 상추는 딱 3포기만 있었다. 넓은 밭에서는 상추 한 포기쯤이야 별것 아니겠지만 3포기 있는 데서 1포기를 가져온다는 것은 맘이 내키지 않았다. 아, 그런데 그 옆에 떡잎으로 파릇한 것이 잔뜩 올라오고 있었다. 그게 자라면 쑥갓이 될지 상추가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상추가 될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래야 상추 한 포기 챙겨 오는 일이 양심에 덜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상추 한 포기를 훔쳐왔다. 상추를 기르던 분은, 한 포기의 행방에 대하여 무척 궁금해하실 것 같다. 언제 만나면 이실 직고를 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아예 마트에서 상추 한 봉지를 사드리든지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상추를 화분에 심고 창틀 비막이 앵글에 두었다. 이번 상추 키우기는 백발백중 성공일 것이다. 올 해는 상추가 제대로 자라는 꼴을 보게 될 것 같다. 안 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룻밤 자고 나서 살펴보니 상추가 생기 발랄한 모습이다. 스프레이로 세수를 시키고 사진 한 방을 찍었다. 이 상추는 어떤 여름을 보낼지 자못 궁금하다. 상추에 대한 나의 탐욕을 다 삭혀주면 좋겠다.

 상추 씨름  

탐내지 말라 했지만
연한 상추들이 야들야들한 걸 보면
다이아몬드 보듯 탐이 난다

꼭 한 번은  
상추를 손수 가꿔서
손마디보다 작은 것들
우두둑 뜯어서
국산 참기름 듬뿍 쏟은 쪽파 양념장 끼얹어
비빔밥을 먹어보리라

별짓을 하며
올 한 해 상추와 씨름했으나
상추는 번번이 쓰러진다

고갱이 솟은 상추 불뚝이를
난간 앵글에서 건사하여
겨우 상추 꽃을 보았다

내 탐욕의 끝은, 부질없이
그 꽃 잘라서 휴지통에 버리는 것이었다 (21.10.23)

[사진 일부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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