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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향기와 찬양Lim May 29. 2022

결국 사달이 났어요.

- 사제 축구 대회  D-day

  회갑이 넘은 여성이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풀타임으로 축구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올해로 3번째, 학교 사제 축구 대회의 일원이 되어 축구를 했다. 당일에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 매일 밤 '야밤에 뜀박질'을 했었다.

 https://brunch.co.kr/@mrschas/61

  그런데 일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대회 일주일 전부터 교사들과 함께 30분씩 연습을 해두었다. 당일에 남자 교사를 대신하여 학부형 선수 두 분이 급하게 교체 멤버로 영입되었다. 대회 시작 1시간 전에 공 돌리기 연습을 하던 중에 그분들이 보내주는 공을 처리하려다가 미끈하여 나는 발라당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져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아프고 말고를 떠나서 일단 창피해서 얼른 일어나게 마련이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어떻게 넘어졌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일어났던가도 생각이 가물거린다. 다만 오른쪽 손목이 단번에 욱신거렸고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실제 경기 중에 그랬다면 모두가 걱정을 했을 테고 창피는 나의 몫이었을 것이다. 최소 1,200명 정도는 관람했던 경기다.


  아픈 손목을 개념치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축구를 했다. 압박 수비를 잘하여 박수를 받았고 헤딩도 한 번 하고 백패스도 멋있게 했다. 내 자리를 열심히 지키며 한몫을 단단히 해냈다. 몸이 힘들거나 숨이 차지는 않았다. 한 달간의 특훈이 효과가 있었다.

  학교는 3년 만에, 현장 체육대회가 부활되어 모두가 행복에 겨웠다. 올해는 학년별 교사 릴레이도 있었다. 축구보다도 릴레이가 더 체질이어서 그것도 뛰기로 했다. 축구 리허설을 하다가 손목을 다쳤으니 바통을 주고받다가 혹시 실수를 할까 염려되어서 보건팀에 가서 에어파스도 뿌리고 패치용 파스도 붙였다.

  체육대회가 끝나자 손목에 통증이 심해졌다. 덜컥 겁이 났다. 아들을 드레싱하고 목욕시키는 전담인데 그 일이 걱정됐다. 퇴근하자마자 곧바로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 결과로는 골절은 아닌 것으로 나온다고는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자유롭지 못할 게 뻔했다. 의사 선생님께 부탁했다. 단 하루라도 병가를 내면, 동 교과 선생님들께 민폐이고, 1-2주 정도 병가를 내면 강사를 구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손가락 부분은 남겨두고 깁스를 해달라고 했다. 그 덕택으로 깁스 위에 위생 장갑을 낀 채로 아들의 머리를 감기고 목욕도 시켰다. 그러나 드레싱과 손톱 깎는 일은 불가능하여 잠시 깁스를 풀어두고 해냈다. 오른손이 열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덩그마니 돕기만 하던 왼손이 일을 하고는 있지만 매사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일치감치 양손을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두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된다. 지금도 깁스를 낀 채로 글을 쓰고 있는데 몹시 불편하다.


  그렇게 하고도 글을 쓰나? 남편이 비아냥댄다.

  노름하던 사람 어떻게 해도 다시 한다잖아요? 내가 대꾸했다.


  언젠가 읽었던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포항공대 총장이 교내 체육대회에서 발야구를 하다가 넘어져서 별세했다는 내용이었다. 사고는 순간에 오는 것이고 그 사고로 사망을 하기도 하고 내 아들처럼 기약 없이 누워 있기도 한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맞다.


 [역사 속의 오늘] 포스텍 김호길 초대 총장 별세 - 매일신문

  http://mnews.imaeil.com/page/view/2008043007323815243

[다시 부활한 체육대회]

   교사 릴레이는 800M 트랙을 반 바퀴(400M) 도는 것이었다. 한 달가량 전력 질주 연습을 해둔 것이 잘 된 일이었다. 학부모 릴레이팀이 즉석에서 결성되었다. 그 팀에는 유치원 때부터 육상 선수였던 분이 있어서 학부모 팀이 우승할 것이 뻔하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릴레이를 시작하니 손목을 다친 나는 내 몫을 거뜬히 달리고 바통도 무사히 잘 전달했다. 육상 선수였던 그분은 두 번이나 넘어졌다. 한 달간 야밤에 뜀박질을 했던 자가 선수 출신보다 나은 것은, 준비를 했던 것 때문이었다. 준비라는 것은 때로 실력을 이길 수도 있는 것이었다. 400M 트랙을 돌았으나 숨찬 줄을 몰랐다.




  내년에도 변함없이 릴레이 선수를 하고 축구 경기에 참가할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열심히 훈련하고 당일에 내 몫을 해내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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