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 동료에게 가방 하나를 선물받았다. 여자들은 가방을 참 좋아한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게 무슨 심리일까? 저 가방 많아요, 괜찮아요,라고 말하지 않고 기쁘게 받았다. 그리고 가방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았다.
일요일 아침이다. 3번 가방을 챙겨 들고 그 안에 1번 가방에서 카드 지갑을 꺼내고 안경과 휴대폰을 챙겨서 3번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선다. 3번 가방은 간단한 외출이나 교회에 갈 때 들고 가는 가방이다. 이 가방 속에는 화장지와 신분증 등이 있고 여분의 마스크와 간편 선캡도 들어 있다. 이 가방만 들고나가면 웬만한 일을 다 해낼 수 있다. 3번 가방은 직장에서 말하자면 '기획' 정도는 될 정도로 충직스러운 역할을 하고 있다.
내일은 연휴다. 1박 2일 여행을 떠나는 날이라서 5번과 6번 가방을 챙겨 가게 된다. 5번 가방에는 셀카봉과 선글라스를 필수 아이템으로 챙겨 넣고 6번에는 휴대폰만 넣어서 맨다. 사실 6번은 해외여행 갈 때 여권과 휴대폰만 따로 챙겨서 걸고 있으면 안심이라 무척 요긴한 역할을 한다. 5번과 6번은 매주 한 번쯤은 간단한 여행에 챙겨나가는 가방들이다.
연휴가 끝나면, 1번과 2번 가방이 바빠질 것이다. 이 가방을 들고나간다는 것은, 정신없이 학교 생활에 바빠진다는 의미가 된다. 1번 가방 속에는 USB도 있고 기초화장품 등이 있다. 여분용 마스크며 메모지 등도 있다. 그야말로 '가방 사무실'이라 하면 된다. 6번은 코로나 시절에 무던히도 챙겨 다녔던 노트북 가방이다. 코로나 상황으로 등교와 재택근무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서 젤 먼저 챙겨둘 것이 노트북 가방이었다. 대면/비대면 수업을 대비하여 2번 가방을 몸의 일체처럼 챙겨야 비상상황을 대처할 수 있었다. 그나마 요즘은, 코로나가 잠잠해져 전면 등교를 강행하고 있어서 2번 가방은 비교적 한 곳에 머물러 있다.
밤이 되면 여지없이 4번 가방을 챙겨 들게 된다. 하루를 정리할 겸, 집 앞 공원에서 30분간 스트레칭 및 운동을 한다. 4번 가방 안에는 스포츠용 장갑이 들어있다. 공원에 있는 운동기구로 스트레칭을 하려면 장갑이 필수품이다. 당연히 휴대폰도 그 가방 속에 집어넣는다.
7번과 8번 가방의 용도는 내 삶이 여느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들이 10년째 병상에 누워 지내는데, 3년 전부터 재택 투병을 하고 있어서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아들이 있는 아파트는 그야말로 병실이다. 그러다 보니 세컨드 하우스에서 나온 빨랫감들을 7번 가방에 담아서 아들이 있는 아파트에서 세탁을 하고(세컨드 하우스에도 세탁기가 있지만 한 두 개의 빨래는 한 곳에 모아서 해야 하는 게 맞다) 건조기에 말려서 챙겨 오는 용도로 쓰인다. 8번은 남편이 그곳에서 일주일에 한 끼는 식사를 하게 되어 도시락을 챙겨가는 가방이다.
가장 늦게 역할을 분담받은 것은 9번 가방이다. 절친 동료가 선물해준 것인데, 받을 때는 3번 역할을 주고 싶었다. 그럴게 아니었다. 매주 토요일에 아들의 침상목욕을 시키기 위해서 아파트로 갈 때 휴대폰과 안경만 챙겨가면 그만이다. 그리고 어쩌다 이쪽저쪽으로 챙겨 날라야 할 간단한 것을 넣으면 되니 그런 용도로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토요일에 9번을 매고 나가니 한결 기분이 좋았다. 예쁜 9번 가방이다.
가방의 용도를 정리해 보니, 내 삶에는 적어도 9개 종류는 있어야 일상이 제대로 돌아갈 것 같다. 물론 이외에도 여행용 가방, 캐리어 가방, 시장바구니 캐리어, 백팩 등을 때로는 사용한다. 특히 1번 백은 계절에 따라 더 큰 것과 교체하거나 색상이 환한 것으로 바꾸어서 다니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몇 개의 가방을 로테이션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그걸 정리해보면 삶의 반경이 보일 듯하다.
남편은 휴대폰도 호주머니에 넣어버리고 맨손으로 집을 나선다. 남자분들은 가방이 필요 없나 보다.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