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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뜬 눈으로 고스란히 지새웠다

- 입원한 중증 환자 곁에서

by Cha향기

▮온몸에 주렁주렁 많이도 매달렸다.

아들이 병실로 올라오자마자 팔을 접는 부분에 놓았던 주사 라인에서 피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 다시 아들의 왼쪽 손등에 주사 라인이 잡혔다. 그 라인에 몇 개의 수액이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손바닥 만한 크기의 해열제도 덩달아 매달렸다. 아들의 몸속으로 여러 가지 수액이 앞다투어 들어가고 있었다.


왼손 엄지에는 산소포화도 측정기 클립이 세팅됐다. 울긋불긋한 수치가 잔뜩 적힌 산소포화도 측정기는 틈만 나면 삑삑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들의 목관에는 산소 발생기 튜빙 세트가 연결됐다. 그리고 양 가슴에는 자석 패치가 기다랗고 가는 선으로 연결됐다.


"열이 안 떨어지네요. 얼음팩 드릴 테니 찜질 좀 해주세요."


해열제가 주사 라인을 통해 들어가고 있는데도 열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온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도 모자라 얼음찜질까지 하란다. 얼음팩을 겨드랑이에 넣자마자 아들의 가랫소리가 커졌다. 가래를 좀 뽑아달라고 간호사에게 말하면 석션을 해주러 왔다. 그럴 때마다 가래통에는 벌겋게 핏빛 가래가 더해졌다.


내가 석션해 본 지 13년 차이건만 이 병원에서는 간호사만 그걸 해야 하는 모양이다. 급할 때는 차라리 내가 해버리면 속 시원하겠다. 비상벨을 눌러봤자 간호사가 당장 달려오는 것도 아니다. 기다리다가 답답한 나머지, 간호사실에 가보면 담당 간호사가 자리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자리에 있다 해도,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한다. 그 '잠시'라는 것이 때로는 한 시간이 될 때도 있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내가 석션을 할 수 있는데 손을 묶어 두고 간호사만 기다려야 했다. 그것도 고문 아닌 고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아들은 가래가 끓을 때마다 괴로워했다.


▮욕창 예방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게 욕창이었다. 13년간 '무 욕창' 환자였는데 이번에 자칫하다가 욕창이 생길 것 같았다. 왜냐하면 성능 좋은 여분의 매트를 찾을 시간이 없어서 오래전에 사용했던 물짠 에어매트를 들고 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매트의 공기 주입구에서 실바람이 솔솔 나왔다. 에어가 새고 있었다. 결국 욕창매트는 예상했던 대로 거의 유명무실했다. 가래 및 염증 치료를 위해 입원했다가 욕창이 생긴다면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집 태우는 격이 된다. 욕창이란 것은 일단 생겨 버리면 치료가 잘 안 된다. 여차하면 한두 시간 만에도 욕창이 생길 수도 있다. 욕창이 생기면 감염이 될 수도 있다.


아들의 온몸에 주렁주렁 라인이 달려있거니와 산소 포화도 측정기도 걸려있고 목관에 튜빙까지 세팅되어 있는 상태다. 과연 그런 와중에 체위 변경을 할 수 있을까? 욕창을 방지하려면 최소한 2~3시간 만에 한 번씩 체위 변경을 해주어야만 한다. 집에서는 성능 좋은 에어매트를 사용 중이기 때문에 오전, 오후에 한 번씩만 체위변경을 해준다. 밤 시간 동안에는 그냥 두어도 괜찮았다. 그리고 체위 변경용 베개인 삼각 쿠션이 있으므로 체위 변경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병원에는 삼각 쿠션 베개가 없다. 대략 난감했다.


[안되면 되게 하고(군인은 아니지만)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결한다.(난, 군인이 아니다)]

이것이 나의 간병 노하우이며 철학이다. 환자용 이불을 둘둘 감았다. 챙겨갔던 종이테이프로 이불을 묶었다. 임시변통으로 체위 변경용 쿠션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쿠션만 있다고 다 된 건은 아니다. 내게 곰 같은 힘이 생겨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들은 내게 1도 협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버티고 강직을 해댔다. 곰 같은 아들을 체위 변경하기 위하여 모로 눕히려면 곰보다 더 센 힘이 필요하다.


"곰보다 더 센 힘이여, 솟아라!"


13년째 누워 지낸 아들의 몸은 처질대로 처지고 몸무게도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수액을 쉬지 않고 투여하고 있으니 곰 같은 아들이 물먹은 하마가 됐다.


[일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야. 일은 요령으로 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셨던 말이다. 이 상황에서 요령을 생각해내야 했다. 일단 아들을 침대 저쪽으로 최대한 당겨놓는다. 깔아 둔 패드를 끌어당기면 움직여진다. 집에서 들고 간 패드는 그때도 요긴했다. 그다음은 다시 이쪽으로 와서 아들을 내 쪽으로 잡아 젖힌다. 아, 내 키가 10cm만 더 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뒤꿈치를 최대한 들고 아들을 힘껏 당겼다. 아들의 몸이 살짝 들렸다 싶을 때 그 공간에 바지 뭉친 것을 집어넣는다. 그렇게 일단 틈새를 마련해 둔다. 그런 후에 저쪽으로 가서 최대한 아들을 밀어 올리고(지렛대 원리? 아, 물리는 어려워서 제대로 못 배웠다.) 그 틈에 얼른 이불로 만든 쿠션을 집어넣는다. 앗싸,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체위 변경 자세가 완료됐다. 어이, 어이, 욕창아, 물렀거라.


그런데 이것도 한두 번이지.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야 한다. 작은 키에 이러고 있자니 종아리에 무리가 오는 듯했다. 다리에 쥐가 올라왔다. 아들을 체위 변경할 때 도와줄 사람은이라곤 없었다. 일이 그렇게 꼬일 대로 꼬였다. 나 혼자 해내야 했다. 무인도에 있는 것과 진배없었다.



▮잠들지 않는 아들 때문에 잠을 못 잤다.

"처얼썩, 처얼썩!"

대학생 시절에는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면 날이 허옇게 밝아 왔었다. 눈앞의 바다에서는 파도 소리가 새벽바람을 타고 들려오곤 했다. 밤새 잠 못 이룬 우리를 위해 파도가 노래하며 춤을 춰댔다. 하룻밤쯤은 잠을 못 잤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던 젊은 날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몇 시간만 잠이 부족해도 그다음 날은 파김치가 되어 무기력해지고 지쳐버린다.


그런데 아들이 이틀이나 잠을 한숨도 자지 않았다. 환경이 바뀌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알 수 없었다. 덩달아 나도 눈 한 번 붙이지 못했다. 그래도 정신력이란 게 비상식량처럼 내 몸을 지탱했다. 잠시 0.1초 정도 깜빡 졸고 나면 하룻밤을 잔 듯이 개운했다. 간헐적 수면이었다.


"눈 한 번 감지 않아요. 왜 잠을 자지 않을까요?"


아들의 주사를 살펴보러 온 간호사에게 하소연하듯 말해봤다. 하도 답답하니까.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냐는 듯이 내 말이 씹혔다. 잠을 자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소변을 자주 누게 된다. 10분에 한 번씩 소변을 보기도 했다. 소변이라기보다는 물을 내보는 느낌이었다. 쉼 없이 들어가는 수액 때문에 소변이 계속 나오니 소변 색깔은 그냥 옅은 미색이었다. 어쩌면 소변이 자주 마려워서 잠을 못 자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들의 소변은 위생팩으로 받아낸다. 그것을 오물처리실에 들고 가서 소형 저울에 무게를 달아야 한다. 그런 후에 침대에 걸려있는 병상일지에 소변량과 시간을 기록한다. 극한 간병이 따로 없다. 나중에는 소형 저울에 올려 소변량을 재지도 않았다. 눈짐작이 저울이었다. 100cc, 200cc, 300cc 정확했다. 소변 누는 간격이 소물 때는 10/20/30cc를 누기도 했다. 그럴 때는 밀봉하여 모아 두었다가 세숫대야에 한꺼번에 담아 들고 오물처리실로 들고 갔다.


잠시라도 눈을 감으면 좋으련만, 아들의 눈이 말똥말똥했다. 그러면 걱정되는 일이 있었다. 아들의 오른쪽 눈에는 의료용 렌즈가 끼워져 있다. 잠을 안 자면 눈이 충혈되어 토끼눈이 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렌즈를 교체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렌즈까지 교체해야 한다면 두 손 두 발 다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렌즈를 교체하는 일이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렌즈를 교체하는 어려움을 적은 글


한편, 보호자 식사는 정한 시간에 어김없이 배달되어 왔다. 아, 차려주는 밥상이 얼마나 고마운지. 식사가 도착하면 일단 짬을 내어 먹어 치웠다. 한가할 때 먹으려다가 때를 놓쳐 식어버리기도 하거니와 식판 수거용 캐리어에 제때 식사 트레이를 반납하지 못하게 된다. 중증 환자를 돌봐야 할 때는 보호자 식사를 신청하여 먹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노다지 굶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먹는 것도 없는 아들에게서 자꾸 피를 뽑아갔다.

그동안 키워 두었던 아들의 근육이 다 빠져나가고 있었다. 경관 영양식으로 연명하며 만들었던 소중하고, 귀중한 피가 틈틈이 한 대롱씩 뽑혀 나갔다. 무슨 피검사는 그렇게 자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만큼의 피를 만들려면? 에구, 맘 아팠다. 먹는 것도 없는데 피만 빼가니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수액만 맞힐 게 아니었다. 그래서 영양제를 놓아 달라고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그러잖아도 내일부터 식사를 조금씩 시작할 거예요."라고 간호사가 말했다.

아, 드디어 아들의 금식이 끝나나 보다. 뭐라도 좀 먹여야지. 아픈 환자가 배까지 고프니 잠이 올 턱이 없었겠다. 아무튼 그날까지는 그나마 할 만한 간병이었다. 그냥 간병의 시작일 뿐이었다.


다음날부터 쓰나미가 밀려왔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극한 간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대문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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