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맘이 아리긴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을 즈음에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다.
"입원을 하셔야 됩니다. 혈액 검사 결과, 염증 수치가 매우 높게 나왔어요. 폐에 염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심한 건 아니고요."
'심한 건 아니고요',라는 그 말에 위안이 됐다. 미루어 짐작컨대 2~3일 정도 입원하면 될 것 같았다.
▮독박 간병 팔찌를 찼다.
"상주 보호자는 딱 한 분만 가능합니다."
간호사는 바코드가 찍힌 띠를 하나 건네며 말했다.
"이 팔찌를 낀 분만 병실에 있을 수 있어요."
"아하, 그러면 교대할 때는 이 팔찌를 다음 사람에게 전달해 주면 되겠군요."라고 내가 말했다.
"노, 노, 절대 안 됩니다. 교대하면 안 됩니다. 간병을 시작한 분이 퇴원할 때까지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할 수 없지 뭐, 이제 퇴임도 했으니 일명, 백수인 내가 간병하면 되지, 뭐.'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아들을 간병한 이력이 13년 차인데 못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어디로 보나 그 팔찌를 낄 자는 나였다. 그래서 끼고 있던 14K 액세서리 팔찌를 빼고 바코드가 선명한 오렌지색 팔찌를 왼쪽 손목에 꼈다.
▮남편과 활보쌤은 병원을 떠났다.
남편이, 필요한 것을 추가적으로 챙겨 오기로 했다. 본가에 가서 아들과 관련된 짐을 챙긴 후 세컨 하우스에서 내게 필요한 짐도 챙기기로 했다. 속옷이나 양말, 기초 화장품 등의 목록을 남편에게 카톡으로 적어 보냈다.
우리의 계획과는 다르게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다섯 명의 활보쌤이 돌아가며 아들을 돌보고 있다. 만약 아들이 입원하게 되면 활보쌤들이 순번대로 병원에 와서 아들을 간병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하게 됐다. 병원에서 오죽하면 그런 내규를 세웠을까, 그게 백번 이해됐다. 어쨌거나 혼자만 간병을 할 수밖에 없도록 일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일당 몇을 하게 생겼다.
병원을 떠나는 남편이나 병원에 남겨진 나도, 맘이 착잡했다. 마치 처자식을 두고 피난을 떠나는 가장처럼 남편이 축 쳐져 보였다. 남편은, 차에 기름을 주유하듯 식사를 때울 게 분명했다.
또 남편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병원에서 아내가 중증환자 아들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해야 하는 힘든 간병을 혼자서 무사히 해낼 수 있을까? 이러다가 이번에 아들에게 변이 생기지는 않을까? 아니면 힘겹게 간병하다가 아내가 쓰러지면 어쩌지? 이 일은 얼마나 오래 동안 지속될까? 손이 있어도 도울 수 없으니 기가 막힌다,라고.
▮아들과 나만 병원에 남았다.
"병실은 호흡기 내과 723호실입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보호사가 아들의 이송 침대를 격리실 밖으로 끌어내며 말했다. 일단 출세했다. 그 격리실을 나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만약에 아들이 감염균 보균자라고 판명 됐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지 않음에 대해 감사했다.
남편과 같이 했던 일을 혼자서 해야만 했다. 잠시 남편이 병원 일을 하던 역할에서 퇴장해 버린 격이다.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간호사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여러 가지 수속을 말했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여러 개의 짐을 이송용 침대 밑 칸에 욱여 싣고 환자 전용 엘베에 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알고 보면 나 혼자인 셈이다. 아들이야 옆에 있긴 하지만 소통 제로이니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아들일지라도 우리가 함께 있다는 생각에 뭔가 든든했고, 의지가 됐다.
해리포터가 마법의 학교로 들어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렇게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또한 오래전에 읽었던, '곰소로 가는 길'이었던가? 그 소설에서 주인공이 어느 날 곰소라는 세상으로 훅 들어가 버리던 장면도 연상됐다. 아들과 나는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될까?
▮호흡기 내과 병동으로 이동했다.
그래도 아들이 6년간 병원 생활을 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아들의 침상은 병실 왼편 창가였다. 병원생활을 해본 자는 알 것이다. 그 자리가 명당이란 것을... 창쪽에는 다른 환우가 없으니 절반은 자유로운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창문 너머, 겨울 산이 보였다. 커피를 마시며 우아하게 뷰를 만끽할 수 있겠다며 내심 기대했다. 수납장 속에 자질구레한 짐을 풀어 정리했다. '정리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나는 후딱 짐정리를 끝냈다.
"난 적응력이 너무 좋은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어쩌면 이게 문제인지도 모른다. 뭘 제대로 할 줄 모르거나 쉽게 적응을 못 한다면 이런 운명이 내게 오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신다고 하셨지. 차라리 바보처럼,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었더라면, 백치미가 있었더라면 신간 편하게 살 수 있었을까? 어쨌거나 일상을 떠나 병원으로 잠시 여행온 기분이었다.
▮ 편의점 김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남편이 추가적으로 더 필요한 짐을 챙겨 왔다. 병원 로비층에서 짐만 건네받고 신파 영화를 찍듯이 우리는 손을 흔들며 헤어져야 했다. 남편은 내가 고생할 것을 걱정했고 나는 남편이 혼자서 제대로 끼니도 챙겨 먹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다.
몇십 년을 같이 살았으니 내가 남편의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남편을 잘 안다. 남편은 병원에 남겨두고 가는 우리를 걱정하느라 병이 날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남편은 호흡이 곤란해지는 공황증세가 왔었다고 했다. 독감, 코로나 시국이 우리에게 애꿎은 생이별을 주고 말았다.
남편과 막 헤어진 후에 문득,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경황이 없던 터라 배고픈 줄도 몰랐다. 로비에 내려온 김에 편의점에 들렀다. 편의점 김밥을 샀다. 일단 먹어야 간병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사를 거르면 안 되니 보호자 식사를 꼭 신청하여 드시오."
남편이 내게 신신당부했었다.
편의점을 거쳐 병실로 들어가려는데 병동 입구에서부터 검문이 살벌했다. 영광스러운? 팔찌를 보여주고 무사히 통과했다. 엘베를 탄 후에는 팔찌를 터치해야 병실 층 넘버가 눌러졌다. 병실 보호자 침대에 퍼질러 앉아서 차디찬 김밥을 먹었다. 그날처럼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할 때면,
"금식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먹을 수 있다는 게 어디야."라고 말하곤 했다.
아들은 물 한 모금도 먹을 수 없잖은가? 편의점 김밥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됐지만 김밥을 먹는 중에 목이 메고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대문자 T인 나는 그러는 나 자신에게 당황했다. 김밥 속에 T를 F로 변하게 하는 재료가 들어갔나?
내가 왜 이러지? 뭣 때문에? 외로워서? 힘들어서? 서러워서? 아니면 아들이 짠해서? 남편이 걱정되어? 에라 모르겠다. 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김밥 하나를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함께 사온 디카페인 커피도 마셨다.
폭풍전야 같은 시간과 마주하고 있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이라
그 순간은 잠시 평온했다.
[대문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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