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기와 퍼프가 필요한 삶
딸내미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교체하는 공사가 있었다. 13층을 오르내리기 불편하니 아예 우리 집에서 당분간 지내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들렀다 가곤 했던 딸이었는데 그 일로 말미암아 우리 집에서 잠깐 살게 됐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일상이 송두리째 딸에게 드러나고 말았다. 동동거리며 사는 엄마의 삶이 딸에게 거슬렸던 것 같다.
엄마는 원더우먼이 아니에요.
엄마는 너무 쉴 틈이 없어요.
엄마는 이래요.
엄마는 저래요.
엄마가 다른 사람들에게 책 잡히지 마시라고 드리는 말씀이에요.
딸내미는 이런저런 얘기를 자꾸 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맞는 말이라고 해서 듣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며칠간 함께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폭발하고 말았다. 아들을 돌보러 본가로 막 나가려는 참이었다.
"나도 힘들어. &^%$#$@%&%$&#@, 때로는 죽고 싶어."
사실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13년간 쌓아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졌다. 쉬지 않고, 내 속에 있던 모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속사포처럼 말을 다 쏟아놓고 나서 정작 나 자신이 더 놀랐다. 내 속에 할 말이 그렇게 가득 차 있었다는 걸 몰랐다. '죽고 싶다'는 말이 내 입 밖으로 나오다니... 어쩌면 무의식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던 핵심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13년 전, 아들이 사고를 당했을 때, 남편은 3개월 정도 주야장천 눈물을 쏟아냈다. 수도꼭지에서 물 흐르듯 남편은 울었다. 그에 비해, 나는 병원에 누워있던 아들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빠졌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아니,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고 입을 꽉 다물었다. 그 후로 이불을 둘러 쓰고 몇 번 통곡하긴 했지만 울기보다는 아들을 돌보는데 급급했다.
당시 정신과 의사는,
"이런 방식이 썩 좋은 건 아닙니다. 이건 자칫하다가는 늘어난 고무줄이 터지고야 말듯이 한순간에 터질 수 있습니다. 조금씩 빼내지 않으면 팽창하여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귓등으로 듣고 일상에 묻혀 그렇게 13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인지 없이 누워 있는 아들에게서 맘이 떠나 본 적 없다. 6년간 병원에서 지냈을 때도, 7년째 집에서 돌볼 때에도...
더군다나 지난 4개월 간은 아들이 병중에 병을 얻어 나 혼자 독박 간병하느라 혼이 날아갈 정도였다. 비록 '엄마니까 다 할 수 있더라'(그때 일을 기록한 매거진)라고 했지만 인간 한계를 넘는 일이 닥치니 어안이 벙벙했었다. 그 고비를 지나면서 스트레스 팽창은 극에 달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결국 터질게 터진 것 같다.
"나도 내려놓을 수만 있으면 다 내려놓고 싶어. 포기할 수 있다면 포기하겠어. 그런데 묘책이 없잖아."
그렇게 쏟아놓고 세컨 하우스를 나와 본가로 향하는데 그제야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아들에게 갔다. 아들 앞에서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아들에게 드레싱을 해주고 양치도 해줬다. 물론 농담도 하면서... 상한 마음을 숨기고 아들을 대하는 내 연기력이 그 정도인 줄 몰랐다.
딸 입장에서는 부모가 동생에게 발목이 묶여 힘들게 지내는 것을 보니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아니, 딸도 한 가족이니 우리 만큼 맘이 다치고 우울한 상태였다. 아들로 인하여 온 가족이 맘 아픈 상태다. 그걸 생각하니 딸 앞에서 감정을 있는 대로 쏟아 놓고 나왔던 것이 영 찜찜했다. 딸내미 맘이 많이 상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본가에 있는 아들을 돌본 후에 세컨 하우스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딸에게 말해야지, 하고 싶은 말 다 쏟아 놓으라고, 다 들어주어야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남편과 딸이, 본가에 갔다가 돌아온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 이건 뭐지? 내가 상상했던 장면이 아니었다.
"엄마,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엄마한테는 환기와 퍼프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 여보, 우리 가까운 오키나와라도 다녀오세. 당신이 랩을 하고 가서 딸내미가 깜짝 놀랐다잖아."
내가 감정을 쏟아 놓은 걸 '랩을 했다'라고 딸이 표현했나 보다. 난 래퍼가 아닌데... 내가 본가에서 아들을 돌볼 동안 부녀간에 이미 여행 계획을 다 짜놓고 있었단다.
"난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oo이는 어쩌고?"
아들 걱정부터 앞섰다. 5명의 활동 보호사가 24시간 빈 틈 없이 돌보고 있지만 반드시 내가 해야 하는 일과 남편이 하는 일이 따로 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아들 돌보는 일을 내려놓지 않았다.
"다 돼요. 엄마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부터 버려요."
"그래, 좀 내려놓읍시다."
"지난해 푸꾸옥 다녀왔을 때도 그 난리가 났잖아? oo이 온몸에 발진이 돋아서 치료하느라 혼났어."
우리가 잠시 집을 떠나면 아들에게는 이상 반응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나들이를 거의 하지 않으려고 맘먹고 살고 있다.
"엄마는 이제 퇴임도 하셨으니 틈틈이 여행하며 즐길 타임이라고요."
"무슨 해외여행을 해마다 가냐? 지난해, 푸꾸옥 다녀왔잖아. 아무튼 난 싫어."
"그래도 그게, 엄마를 버티게 했을 거예요. 엄청 힐링이 되었을 거란 말이에요."
아픈 맘으로 맘 아픈 엄마를 챙기는 짠한 딸을 쳐다보니 거절할 일이 아닌 듯했다. 못 이기는 듯이 가겠다고 했다. 뉴욕, 토론토, 북경도 가봤지만 정작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일본은 갈 기회가 없었다. 일본은 내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왜냐하면 친정어머니가 일본에서 태어나 열 살에 귀국하셨으니 어머니의 속에는 일본 문화가 잠재되어 있었다. 그 피가 내게도 흐르고 있을 것이었다. 또한 소설, <파친코>를 읽고 드라마로 두 번이나 봤다. 일본에 한 번은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품고 있었다.
2시간 반이면 가는 오키나와,
엎어지면 코 닿을 그곳에
가족여행을 가게 됐다.
랩 한 번 하고 해외여행이라니...
5/19 ~ 5/22(3박 4일)에 다녀온 '오키나와' 가족 여행기입니다.
#가족 여행
#오키나와
#래퍼
#파친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