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돈독한 우정엔 '코로나' 따위 일없다

- 팥찰밥과 드립 커피

by Cha향기

코로나 재확산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설마? 또다시 코로나?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코로나 팬데믹이 막 시작될 때였다. 조카가 아주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이모, 이거 엄청 무서운 거래요. 지금 우리 놀러 갈 때가 아니에요."

그날 조카와 함께, 우리 가족은 영종도 '하나개' 해수욕장 해변 데크길을 걷기로 했었다. 통·번역사인 조카는 알고 지내는 원어민을 통하여 한 걸음 빠른 뉴스를 접했단다. 그게 뭔데? 그게 그렇게 무서운 건가? 사스, 메르스, 신종 플루 등을 다 겪었는데?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거라고? 다소 담대한 조카가 무섭다고 하는 걸 보니 코로나라는 게 심상찮은 것인가 보다,라고 짐작했다.


COVID-19의 전파 (출처:MSD매뉴얼)
COVID-19(코로나)는 주로 감염자가 기침, 재채기, 노래, 운동 또는 말할 때 생성되는 호흡기 비말을 통해 사람들 간에 전파됩니다. 바이러스는 짧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큰 호흡기 비말'을 통해, 또한 몇 시간 동안 공기 중에 남아 보다 먼 거리(최대 약 6피트[2미터])를 이동할 수 있는 '작은 호흡기 입자 에어로졸'을 흡입함으로써 전파됩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는 확진자가 생기면 알림 문자가 왔다. 확진자가 산책했던 길에도 갈 수 없었고 확진자가 다녀간 마트나 공공기관 등은 대대적인 소독을 실시했다. 확진자의 동선은 시간대 별로 일일이 공개되었고 당분간 영업을 못하게 되는 가게도 있었다. 그러다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세세한 정보는 알리지 않았다. 확진자가 범죄자와 유사한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하여 출생 연도에 따라 약국 앞에 줄을 섰다가 오히려 감기에 걸리는 사례도 있었다. 발열체크가 필수적이었고 가정마다 비접촉식 체온계를 마련해야 했다. 손소독제를 물 쓰듯 썼다. 방역 투표를 했던 기억도 있다. 아무튼, 그러한 모든 일은 생전 겪어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예방 접종에 대한 괴담도 많았다. 코로나 예방접종을 하면서 몸에 특수 칩을 넣는 것이라는 정보를 사실인양 믿고 끝까지 예방 접종을 거부한 사람도 있었다. 코로나 예방접종 증명서가 필요하던 때도 있었다. 팬데믹 초기에 코로나 감염으로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죽었고 혹시 고생 끝에 낫더라도 후유증이 심했다. 가족이 사망해도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가정도 있다.


학교 현장에도 그 여파가 엄청났다. 한 학생이 확진자 가족이었다는 이유로 그 학급에 수업 들어갔던 교사들이 일주일 간 가정에서 유폐되어 있기도 했다. 모든 수업은 비대면으로 진행됐고 학생들은 간간이 과제를 제출하러 학교에 나왔다. 신입생 입학식을 6월이 되어서야 했던 학년도 있었다. 그즈음에 모든 학교는 'EBS 온라인 클래스'를 의지할 정도였다. 학교에서 코로나를 대처했던 일을 브런치글로 발행했었다. 언감 생심, 코로나는 학교를 덮치지 못한다라는 내용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사제지간의 정이 쌓여갔다는 따뜻한 얘기가 담겨 있다.


우리 모두 코로나를 겪을 만큼 겪었다. 우리 아들은 중증 환자로 재택 케어 중이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예방 접종을 할 수가 없었다.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어서 그냥 버텼다. 그럴 때 의료진이 가정으로 방문하여 예방 접종을 해주는 제도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크로닌의『성채(The Citadel)』에서 주인공 앤드루 맨슨(Andrew Manson)이 시골 마을로 왕진을 간다. 앤드루가 자전거를 타고 먼 시골 지역을 돌아다니며 환자를 돌보거나 환자의 집에서 진료하며 인간적인 교감이 이루어지는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나라 의료 복지가 중증 환자에게 왕진 가는 수준까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아들은 코로나에 감염되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 줄줄이 확진됐다. 7대 비극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라는 글에서 코로나 감염으로 고생했던 일을 기록했다.


가장 친한 지인의 혼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예식 참석자 49명 제한에 걸려 초대받은 자만 갈 수 있었다. 예식장에 가지 못해 유튜브 실시간 라이브 생방송으로 현장을 봤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결혼식이었다.




그렇게 기막힌 일 여정 가운데 따뜻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코로나 정찬'을 먹었던 일이다. 교회 선배 언니랑 후배와 셋이 서로 40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당장에 만날 수 없었다. 식당이나 카페에 거리 두기 제한이 있었다. 때마침 아들 때문에 세컨 하우스를 구해 두었던 때였다. 거기서 모이기로 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려고 했다. [메밀국수와 돈가스]로.


'팥찰밥 하려고 팥 불리고 있는 중이야.'

라고 언니가 톡을 보내왔다.


'그리고 커피는 드라이브 스루해 가지고 갈게.'라고 했다.

'식사는 배달시키면 되고요, 우리 집에 커피도 있어요.'라고 내가 답장을 보냈다. 먹는 게 뭐 대순가? 얼굴 보는 것이 중하지. 그랬더니, 후배가 보낸 톡이 단톡방에 떴다.


'커피는 핸드 드립으로 맛있게 내려 드릴게요. 10년 바리스타 믿고 기다리세요.'라고 했다. 그냥 오라고 했더니,

'이미 다 챙겼어요. 이건 제 취미생활입니다.'라고 했다. 후배는 교무실에서 커피 내리는 담당을 도맡아 하는 모양이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2월 24일,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얼싸안을 수도 없었다. 중문 앞에서 소독제를 온몸에 뿌린 후 집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최소한 1박 2일을 해야 밀린 얘기를 좀 풀어놓을 수 있을 텐데... 코로나가 끝나면 1박 2일, 콜이요. 호텔은 제가 책임지고 예약할게요.'라고 내가 톡을 보냈다.


'팥찰밥이랑 곰국 끓여 가마, 방역과 맛! 두 마리를 잡은 식사를 합시다. 그러니 식사 배달 주문 하지 마세요.'라는 언니 톡이 왔다.


언니가 준비해 온 것은 간단한 식사가 아니었다. 텀블러에 각자의 곰국을 따로 담고 보온 도시락에 팥찰밥을 담아 왔다. 장조림, 숙주나물, 겉절이 김치, 굴비까지 따끈하게 준비하여 쿨러 가방에 챙겨 온 언니, 이런 분은 말릴 수 없다. 그냥 맛있게 먹는 게 예의요 도리다. 집밥과 사 먹는 밥은 왜 다를까? 그나저나 코로나 정찬, 그 맛은 잊을 수 없다.

KakaoTalk_20250816_211238953.png [ 언니가 차려왔던 밥상. ⓒ AI]

후배는 명품 원두커피와 드리퍼, 필터, 커피잔까지 트레이에 담아 왔다. 나의 세컨 하우스는 한식 레스토랑과 뷰맛집 카페로 변했다. 무슨 얘기를 해도 재미있었고, 뭘 먹어도 맛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중에 무지개처럼 찬란하게 기억되는 코로나 정찬이다. 또한 후배가 내려준 커피는 코로나의 칙칙한 기분을 다 날리고도 남을 만한 향이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진 후에 내가 보낸 카톡 전문이다.

KakaoTalk_20250819_171323590.png

그때 먹었던 팥찰밥이 간간이 생각났다. 그러나 간단한 일이 아닌 듯하여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참에 한번 해보기로 했다. 레시피를 이용하면 못 할 요리가 없다.


전기밥솥으로 만드는 팥찰밥 만들기 레시피다.


- 찹쌀은 물에 씻어 체망에 담아 물기를 뺀다.

- 팥은 물에 1시간 정도 불려두었다가 한번 씻어서 삶는다. 이때 소금을 약간 넣고 뚜껑을 연채로 10분 삶고 찬물에 헹군다.

- 한번 삶은 팥을 뚜껑 닫고 센 불(인덕션 '터보' 기능 활용)에서 15분 정도 삶는다.

- 삶은 팥은 소쿠리에 걸러 따로 담아두고 팥 삶은 물은 밥물로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버리면 안 된다.

- 찹쌀과 삶은 팥에 팥 삶은 물을 붓고 '잡곡' 기능으로 취사버튼을 누르면 팥찰밥이 완성된다.


KakaoTalk_20250818_091603226_01.jpg
KakaoTalk_20250818_091603226.jpg
KakaoTalk_20250818_105046528.png

1년 365일 찰밥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남편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런데 나는 찰밥을 두 끼 연달아 먹지 않는다. 처음 해본 찰밥, 다음에는 좀 더 고슬고슬한 밥으로 지으리라. 팥을 몽땅 삶아 두었으니 밥 하듯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선, 후배와 먹었던 코로나 정찬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핸드 드립커피를 내려봤다. 딸내미가 드리퍼와 원두를 챙겨두고 갔다. 딸내미가 맛있게 내리는 법을 몇 번이나 복창했다. 그래서 아예 냉장고 옆에 드립 커피 레시피를 적어두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일 로스팅하는 매장을 알아두어 그곳에서 주문 배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은 없는 게 없다. 심지어 드리퍼와 필터 기능을 겸할 수 있는 특이한 드리퍼도 있었다.


드립 커피 내리는 법을 공유해 본다.


- 유리 서버 위에 드리퍼를 올린다.

- 그 위에 필터를 깐다.(드리퍼와 필터를 겸한 제품을 구입하면 1번과 2번은 한 번에 해결된다.)

- 물의 온도가 중요하다. 정수기 100도 물을 드립 포트에 담은 후 차가운 물을 살짝 보태면 95도 정도가 된다.

- 물을 천천히 넣고 잠시 뜸 들이기를 한다.

- 거품이 서버에 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게 팁이다.

- 이렇게 내린 커피를 머그잔에 부으면 드립 커피 완성이다.


KakaoTalk_20250819_171625304.png [드리퍼와 필터를 겸한 제품]



코로나가 좀 잠잠해졌을 때, 우리 셋은 본격적으로 다시 만났다.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그 근처 맛집 앞에서 오픈런했다. 여유롭게 식사하며 밀린 얘기를 했다. 그 이후 우리는 몇 년간 못 보고 지냈다. 겨우 약속을 잡은 날이 하필 지난주 수요일이었다. 그날 새벽 4시에 후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재난 문자가 빗발쳐요. 폭우가 심하다고 외출 금지하라는 내용이에요. 우리 만남을 연기해야겠어요. '


그래서 그날 약속을 취소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대급 폭우가 쏟아졌다. 아들이 있는 본가로 가는 길이 물바다였다. 전철역이 잠기고 도로에 물이 가득 찼다. 차량들은 물속에 꼼짝없이 갇혔다. 아들을 돌보러 오는 활보쌤도 20분 거리를 1시간 30분 이상이나 제자리에서 갇혀 있었다.


일주일 후인 바로 어제, 우리는 만났다. 예술의 전당에서. 그리고 헤어지면서,


"우리 1박 2일 한 번 해요."라고 내가 제안했다. 을왕리 해수욕장 근처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우리는 뿔뿔이 헤어졌다. 돈독한 우리 우정 앞에 코로나 따위 일없었다.

KakaoTalk_20250819_175652352.jpg




미리 구입해 둔 '소위' 작가님의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책을 들고 갔다. 그분들은 이 책을 집중하여 읽을 것이다. 미리 설렜다. 그 책을 얼마나 좋아할지 미루어 짐작이 갔다. 어떤 리뷰를 보내올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다시는 코로나가
만연하면 안 된다.

'코로나 정찬'은
일생일대 단 한 번으로
충분하다.


#코로나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COVID-19, #비말, #팬데믹, #확진자, #마스크, #방역투표, #예방접종, #후유증, #EBS온라인클래스, #성채,#크로닌, #의료복지, #49명 제한, #코로나정찬, #바리스타, #팥찰밥, #드립커피, #예술의전당, #재난문자, #부사가없는삶은없다, #소위작가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4화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