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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역전극 02화

싸움

by homeross

어릴 적 기억들이 희미한 데다 그 기억들도

모두 사진과 같은 단편적 기억이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물론 좋은 기억들도 있지만

그나마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좋은 기억이 아니다.


부모님은 많이 다투셨다.


너무 어렸기에 상황도 이유도 몰랐지만

두 분은 심하게 다투시는 일들이 많았고

우리 남매는 그 싸움에 휘말리고는 했다.


울고 있는 우리에게 엄마와 아빠 중 한 명을 고르라고

했고 누나는 마지못해 울며 엄마를 선택했지만

어린 나는 누구도 선택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마음속으로는 엄마를 따라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어서 누군가가 지쳐 싸움이 끝나고

다시 아무 일도 없는 것만 같은 고요의 순간이

찾아오기를 고개를 숙인 채로 바랄 뿐이었다.


한 번은 어느 날과 같은 싸움 중에 악을 쓰는

엄마를 어찌하지 못해 엄마 대신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이유 같다)

아빠는 내 엄지발가락을

라이터로 지졌고 엄마는 자지러지게 우는

나를 부둥켜안고 아빠에게 더욱더 악을 썼다.

그 뒤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릴 적의 내가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후에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내 나이는 7살 겨울이었다.

기억의 파편 들은 아마도 5~6살의 기억일 텐데

10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는 지금의 내가

부모님의 싸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너무 나도 가엾다.


어린 내가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고

어린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던


어린 날의 기억의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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