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은 꾀죄죄한 몰골과
세심한 손길이 부족해 제멋대로인 성격
그리고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환경 때문에
친구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것 같다.
이때 사람을 조금 배웠다고 할까?
싫은 건 아무리 그러지 말아야 해도 싫은 거다.
친구들도 모두 친하게 잘 지내야 하는 걸 알았을 것이고
많은 공부 봐 시험을 걸쳐 오랫동안 교직에 계셨던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차별 없이 대해야 한다는 걸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더 잘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내가 똑같은 상황에 놓일지라도 부모님의 손길아래
깨끗하고 잘 교육받은 아이와 친구를 더 좋아했을 것 같다.
그렇게 안타깝게도 나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은 슬프게 흘러갔다.
하지만 5학년쯤 됐을 때는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움츠려드는 것도 한계까지 움츠려 들다 보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기 마련인데
그 당시의 내가 그랬던 것 같다.
반쯤 포기의 마음으로 될 대로 되라의 마음으로
활달한 척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썼고
외모에도 관심이 생겨 옷을 깔끔하게 입고
위생에도 나름(?) 신경을 쓰고 지냈더니
어느새 아웃사이더를 벗어나 친구들도 많아지고
성격도 밝아졌다.
남들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그 당시 가정형편을 학교에서 조사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 방식에 굉장히 오픈되어 있었다.
수업시간에 담임선생님이 집이 자가인 사람
자동차가 있는 사람 부모님의 직업 같은 것을
거수로 확인하는 방식이었는데
그 질문 중에서 부모님 중 한 분이 안 계시거나
집이 월세이거나 기초생활 수급자 이거나
등의 항목이 나오면 나는 쭈뼛거리며 손을 들어야 했다.
그 조사(?)가 끝나고 나면 어린 나의 등은 식은땀으로 젖어있었고
친구들의 눈빛이 어느새 달라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또 하나 다른 것은 모든지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그때 거의 대부분이 우유 급식을 했는데
나도 우유가 먹고 싶었지만 형편상 세끼의 밥도
다 먹지 못했는데 우유 급식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준비물도 비싸지 않은 것들은 괜찮았지만
간혹 내 기준에서 제법 비싼 준비물들은
감히 살 엄두가 나지 않아 과감하게 혼날 각오를
하고 무거운 마음과 가벼운 손으로 등교했던 기억이 난다.
그 밖에도 극기훈련이나 수학여행을 갈 때도
목돈이 들었는데 당시 어린 마음에 친구들과
가는 여행은 꼭 가고 싶어 할머니께 통신문을 보여드리고
가기는 했지만 여기저기 돈을 빌려 내 손에 쥐어주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그런 기억들 때문일까?
내가 유년시절 가장 먼저 배운 건 포기이다.
내가 욕심을 내면 우리가 힘들다.
할머니가 힘드시다.
그러니 내가 포기하면 편하다.
이 어리석은 마음이 훗날 내 인생을 얼마나 많이
갉아먹었는지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20대의 반 이상이 훌쩍 지나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