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봄으로 기억한다.
집안사정은 뭐 말할 것도 없었고
나는 별 다를 것 없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
한참 이었고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한 장의
통지서가 날라들어왔다.
인천구치소에서 온 통지서였는데
아버지의 이름 석자가 박혀있고
현재 수감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구치소로 전화를 했다.
아버지의 수감을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확인해 주었고 가족면회 신청과 영치금에
대한 이야기를 안내받았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가 끊기자
내 마지막 희망의 끈도 끊긴 느낌이었다.
심각한 죄목은 아닌 것으로 기억하지만
어린 나이에 구치소에 있는 아버지를 믿고
더 이상 세상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하고 5만 원의 영치금과
약간의 차비를 받고는 우선 학교로 향했다.
사정을 설명하고는 조퇴를 했다.
버스를 타고 구치소로 향하는 길에
차창밖으로 햇살이 환하게 부서졌다.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봄날 햇살을 맞으며
아버지의 면회를 가는 기분이라니
구치소에 도착해서 간단한 절차 후
나는 플라스틱 벽을 가운데 두고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네가 왜 여기 오냐며
짜증 섞인 모습이었지만
나는 영치금 이야기와 필요한
책 같은 게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고
하고 간단하게 면회를 끝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또다시 포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 사치같이 느껴졌다.
가정으로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될 것 같았다.
바보같이 가엾이 어린 나는 그런 결심을 했다.
다음날 학교를 찾아가 상황을 이야기를 하고
자퇴에 아버지가 동의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선생님들과의 몇 번의 상담 후
자퇴를 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등교를 하지 않으니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았다.
몇 주 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내 이야기를 듣고는 나를 데리고
학교로 찾아가 자퇴를 무효화하고는
복학을 시켰다.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아버지에게도 나의 자퇴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는지 그 뒤로는 조금은 집에서
생활하시고 일도 하시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내 마음속엔 이미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내가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다는 무력감도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