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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eross Jan 05. 2024

시위 없는 화살 뿌리 없는 나무

어찌저찌해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여전히 무기력했고

아빠는 여전히 가정을 등지고 살았다.


졸업식 때 친구들이 졸업과 대입 선물로

받은 선물들을 자랑할 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마음껏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학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 당시 교회를 다니며 마음에 위안을 많이

얻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나보다 못한 처지에

친구들을 보며 어쩐지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뒤늦게 공부를 해서 천안에 소재한

한 대학교 사회복지 학과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고3 겨울 방학 때부터 등록금에 보태기 위해

물류창고,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주유소에서 첫 월급을 받던 날 그 당시에는 

계좌가 아닌 봉투에 현금을 담아서 직접 주었는데

한 80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 봉투에 담겨있으니

제법 두툼하게 느껴졌다. 


내 인생에서 처음 쥐어보는 큰돈이었고

그만큼 더욱 귀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겨울이었는데 피자가게에서 평소에 먹고 싶던 

피자를 한판 포장해서 집으로 향했다.


혹여나 잊어버릴까 월급봉투는 품 안에 꼭 품은 채로

따뜻한 피자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그때 그 감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고생하시는 할머니께 처음으로 30만 원을 건넸다.

할머니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셨다.

기쁨과 대견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안아주셨다.


그리고는 빚을 갚았다. 

큰 빚은 아니었고 내 명의로 아빠가 사용한 

미납된 휴대전화 요금 때문에 나는 첫걸음을

신용불량자로 시작했다.


은행에 가서 미납된 요금을 납부하고는

신용 불량자에서 벋어 나는 것부터 시작했다.


나는 당시에 나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지만

다른 친구들과 나를 비교해 볼 때면 항상 우울해졌다.


친구들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넓은 창공을 향해

멀리멀리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반면에 나는 시위 없이 던져진 화살처럼

힘없이 툭 떨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남과 비교할 때면 우울해지고는 했다. 


하지만 우울해하고만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방학 내내 열심히 일했고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통학을 하며

저녁과 주말 알바를 하며 지냈다.

적은 돈이 지만 내손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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