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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eross Dec 29. 2023

포기

고등학교 2학년 봄으로 기억한다.

집안사정은 뭐 말할 것도 없었고

나는 별 다를 것 없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

한참 이었고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한 장의

통지서가 날라들어왔다.


인천구치소에서 온  통지서였는데

아버지의 이름 석자가 박혀있고

현재 수감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구치소로 전화를 했다.

아버지의 수감을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확인해 주었고 가족면회 신청과 영치금에

대한 이야기를 안내받았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가 끊기자

내 마지막 희망의 끈도 끊긴 느낌이었다.


심각한 죄목은 아닌 것으로 기억하지만

어린 나이에 구치소에 있는 아버지를 믿고

더 이상 세상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하고 5만 원의 영치금과

약간의 차비를 받고는 우선 학교로 향했다.


사정을 설명하고는 조퇴를 했다.

버스를 타고 구치소로 향하는 길에

차창밖으로 햇살이 환하게 부서졌다.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봄날 햇살을 맞으며

아버지의 면회를 가는 기분이라니

구치소에 도착해서 간단한 절차 후

나는 플라스틱 벽을 가운데 두고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네가 왜 여기 오냐며

짜증 섞인 모습이었지만

나는 영치금 이야기와 필요한

책 같은 게 있다면 이야기해 달라고

하고 간단하게 면회를 끝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또다시 포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 사치같이 느껴졌다.

가정으로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될 것 같았다.

바보같이 가엾이 어린 나는 그런 결심을 했다.


다음날 학교를 찾아가 상황을 이야기를 하고

자퇴에 아버지가 동의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선생님들과의 몇 번의 상담 후

자퇴를 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등교를 하지 않으니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았다.


몇 주 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내 이야기를 듣고는 나를 데리고

학교로 찾아가 자퇴를 무효화하고는

복학을 시켰다.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아버지에게도 나의 자퇴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는지 그 뒤로는 조금은 집에서

생활하시고 일도 하시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내 마음속엔 이미 불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내가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다는 무력감도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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