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살던 집은 연립빌라였는데
오래된 집이라 창틀은 얇디얇고
집여기저기에 외풍이 들이닥쳐
겨울이 되면 바람에 달그락거렸고
밤에 자려고 이불을 덮으면 바닥은
뜨거웠지만 코는 시릴정도로
웃풍이 심했다.
학교를 가기 위해 아침에 씻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는데 기름보일러로
교체하기 전까지만 해도
연탄으로 난방을 해서 가스불에
큰 주전자를 올려놓고 기다리면
물이 끓으면서 하모니카 소리가 났다.
(그렇게 만들어진 주전자이다.)
그 소리가 들리면 겨우 두꺼운 이불속에서
기어 나와 따듯한 물과 찬물을 섞어
최소한의 노출된 신체만 얼른 씻었다.
그러고 나면 머리에서 허연김이 피어올랐다.
등유보일러로 바꾸고 나서는 그나마 많이 편해졌지만
문제는 등유값이 연탄값 보다 비싸다는 사실이었다.
형편상 기름을 늘 가득 채울 수 없었기에
할머니의 야채 노점이 잘될 때마다
1-2만 원씩 기름을 받으러 다녔다.
물론 집안에 기름을 사 올만한 유일한 사람인
내가 손수레에 기름통을 싣고
20분 거리에 주유소를 왕복했다.
한 번에 많이 넣으면 좋으련만
그럴 형편도 아니었고 내가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등유의 양도 한정적이었다.
물론 탱크를 가득 채우면 배달을 해주기도 했지만
한 번도 그랬던 적은 없다.
날씨가 유난히도 매서운 날은 등유를
사러 가는 길이 너무도 추웠다.
많은 표현들이 있겠지만 너무도 추웠다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을 만큼 추웠다.
그래도 한편 기름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 번은 할머니가 몸살이 나셔서
일주일 정도 장사를 하지 못하셨는데
그때 나는 매일 보일러의 연료 게이지를 확인했다.
게이지가 줄어드는 만큼 내속은 타들어갔다.
머지않아 게이지의 바늘이 바닥까지 내려갔고
내 마음도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추위 속에서 한주를 보냈다.
어릴 적을 이렇게 춥게 보내서 인지 추위가 지긋지긋하다.
실질적인 추위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큰 마음의 추위 때문인 것 같다.
그 차가움
그 쓸쓸함
그 허탈함
하지만 겨울은 계속되지 않는다.
머지않아 꽁꽁 언 대지가 녹고 새싹이 돋고
꽃이 핀다.
우리 인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