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으니 멍해졌다.
계속 잠이 왔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우울함은 느낄 틈이 없었고
멍하게 있으니 무기력함은 전과 똑같았다.
병원에 방문해서 검사지를 제출하고 의견을 들었다.
의사는 번아웃 증후군과 만성 우울증을 이야기했다.
나의 우울증은 오래된 것이었다.
그동안은 우울함도 일종의 에너지로 삼아
버텨왔다면 30대의 중반을 지나
원했던 결혼과 자녀를 얻고 어느 정도
안정된 상황이 오자 미루어 두었던
나 자신의 대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이제 더 이상 나를 돌보는 것을 미루어 둘 수 없게 된 것이다.
겉으론 괜찮은 척 밝은 척 살아왔지만
실상은 버텨내 온 것뿐이었다.
마음에 외로움과 우울함까지도 양분을 삼아서
이제는 미루어 왔던 어릴 적 외로웠던 나와 만나
달래줘야 할 시간이었다.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위로와 애썼다는 칭찬을
그리고 존재하는 것 만으로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