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마토를 못 먹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키스 앤 텔>을 읽다 쓰다

by 시린

알랭 드 보통은 '키스; 사랑'과 '텔; 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과 대화는 상대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한 과정이자 도구이다. 그런데 말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 타인과 소통하는 것은 가능한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입고 있는 옷이나 취미, 좋아하는 책이나 음식 등으로 어떤 사람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는 오만하다.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내가 그 사람의 성격이라 믿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약간의 지식 사이에 억지로 끼워 맞춘 편견과 고정관념이다. 본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몇 가지의 표면적인 정보로 연역해 낸 편견으로 타인을 보는 것이다. 물론 A와 B 사이를 잇는 연관성이라고는 없다. 우리가 그 사실을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과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헛된 시도일지라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한다면, 좋다. 어긋난 추론으로 인한 결론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계속해서 수정해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고칠 수 있다면 고정관념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좀처럼 자신의 생각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취향이 성격의 일부를 이룬다는 생각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음식과 성격의 상관관계도 분명 있긴 할 거다. 그런데 그 상관성을 지나치게 믿으면 좀 곤란하다. 식단이란 본인의 의지와는 다른 이유, 예컨대 신체, 환경, 경제적 조건 등의 이유로 수시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실 역시 우리는 곧잘 잊는다. 음식으로 성격을 판단하려는 시도에서 생기는-생길 수밖에 없는-편견은 사소한 오해를 부른다. 당사자로서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런 오해로 인해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토마토를 못 먹는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썩 좋아하진 않았지만 엄마가 설탕을 뿌려주면 곧잘 먹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어느 날부턴가 토마토를 먹으면 혓바늘이 돋고 입술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몸속에 어떤 물질이 일정량 쌓이면 알러지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니 딱 그런 모양이었다. 조금만 먹어도 응급실에 갈만큼 심각하진 않다. 케첩이 많이 들어간 햄버거나 피자를 먹으면 혀와 입술이 쓰라리고 치과에서 마취주사를 맞은 것처럼 뻣뻣해지기 시작하는 정도. 그래서 늘 음식에 토마토가 들어 있는지 잘 살핀다.


그런데 어떤 때는 토마토가 들어있는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위험을 감수하고 그냥 먹기도 한다. 토마토를 골라내는 걸 보고 이상한, 때로는 혐오스런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토마토 싫어하나 봐요? 제가 잘 못 먹어요. 토마토가 몸에 얼마나 좋은데요.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어요, 알러지가 있어서요. 그래도 한 번 먹어봐요. 익히면 몸에 더 좋대요. 알러지가 있어서.. 이쯤되면 난데없는 심문이 되기도 한다. 그럼 파스타도 안 먹어요? 토마토소스는 못 먹고 크림소스만 먹어요. 햄버거도 안 먹어요? 토마토만 빼고 먹으면 괜찮아요. 근데 왜 못 먹는 건데요? ..네? 먹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토마토를 나중에 뺀다 해도 옆에 묻었을 텐데. 그 정도는 괜찮아요. 그럼 그냥 먹어도 되는 거 아녜요?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알러지가 일어나면 바로 응급실에 가야 하던데. ... ...

결국 음식을 제대로 못 먹거나 체하고 만다.(나는 뭘 먹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금세 체한다.) 게다가 심문에 지쳐 우울해진다. 상대는 내가 까다로운 사람이라며, 혀를 차는 건 아니지만 분명 호의는 아닌 표정을 짓는다. 결국 서로 불편해진다.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 혓바늘이 돋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못 먹거나 먹기 힘든 음식이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 마른 오징어를 못 먹고, 홍차와 인삼을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는 건 분명 내 탓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고의적으로 까다롭게 군다는 듯 탓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이젠 놀랍지도 않다.


비약이 심하다고 할지 모르나, 나는 이 일로 사람들은 좀처럼 타인을 이해할 수 없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타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쉽게 판단하고 쉽게 말한다. 대답을 제대로 들을 생각도 없다. 사람들은 내가 토마토를 못 먹든 안 먹든 관심이 없다. 그저 자기는 좋아하고 몸에도 좋은 토마토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먹기 싫은 걸 골라내고 좋은 것만 취하는 까다롭고 편협한 사람으로 본다.


나는 산낙지를 먹지 않지만 산낙지를 먹는 사람들이 모두 잔인하고 폭력적인 본성을 갖고 있어서 언제든지 사이코 살인마로 돌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감자튀김에 케첩을 찍어먹지 않고 카프레제 샐러드에서 치즈만 먹고 토마토를 남긴다고 해서 까칠하고 속 좁은 사람이라고 단정 짓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성격이란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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