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대로 써도 돼

프롤로그 - 김기덕의 <파란 대문>을 보다 쓰다

by 시린

스물 다섯 살에 예대에 들어갔다. 예대?


어릴 때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태권도학원 한 번 못 가 봤다. 꼭 학원을 가야 하나? 물론 독학이란 것도 있고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많지. 헌데 그 재능, 그러니까 싹수라는 게 하나도 없었다는 게 문제다. 우리 집 식구들은 예체능에 재능이 없어. 친척들 모두가 인정하는 그 중의 한 명 아니, 가장 심각한 게 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일관되게, 다른 과목 다 괜찮았지만 음악, 미술, 체육은 참담했다. 그런데 왜 예대를? 게다가 늦은 나이에? 못다 피운 재능을 뒤늦게 발휘하려는 것도 아닌데.


과를 선택하고, 입학을 하게 된 건 물론 수십 가지 이유와 수백 가지 변수가 작용한 결과다. 다만 확실했던 한 가지, 재미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예상 못한 스스로가 어이없을 만큼, 가야할 길이 온통 지뢰밭인 줄은 모르고.


같은 과 동기들은 대부분 예고, 미고, 공고 출신이었다. 전공은 회화, 조각, 디자인 등 다양했지만 분명한 건 드로잉 기초며 포토샵 사용법을 모르는 건 나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과목 중 애니메이션 수업이 있었는데 첫날 과제가 ‘1분짜리 CF 만들어오기’ 였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프로그램의 이름을 아직 외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자존심? 애초에 느껴본 적 별로 없는 감정이다. 막내 나이의 어린 동기들에게 물어보고, 부탁하고, 매달리고, 졸졸 쫓아다니며 배웠다. 그런 내가 귀찮았을지언정 그리 밉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동기들은 곧잘 나를 챙기며 도와주었다. 물론 눈물나게 고마웠다. 하지만 -“언니(누나)는 대체 왜 이 과에 들어왔어?”- 말에 담긴 무시까지 고마워할 순 없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무시를 무시로 받는 수밖에. 그저 웃었다. 그러자 또 다른 데서 문제가 나타났다. 동기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재능과 실력이 없는 내가 괜찮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다. 내 작품은 좋은 평을 받지 못했고, 수업 중에 하는 말에는 즉각적인 반대 의견이 붙었다. 실기 평가에서 좋은 점수라도 받을라치면 동기들은 대놓고 놀라워하거나, 불쾌해하거나, 혹은 둘 다였다.


늦깎이 예대생으로 고군분투하던 이야기를 하다 보니 타이핑하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혹 감정적인 표현으로 느껴진다면 그 탓이다. 실제로는 힘들지만 재미있었고, 동기들과 관계도 그리 나쁘지 않았으며, 무사히 졸업을 한 건 다 그들이 도와준 덕이다. 내가 그들을 귀찮게 했을지언정, 그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꼈던 건 전혀 아니다. 다만 충분히 나를 표현하지 못한다는 답답함은 있었다.


어떤 학기였더라. 교수님의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평론 수업 때 있었던 일이다. 첫 시간에 우리는 <파란 대문>을 보았고, 에세이를 쓰는 과제를 받았다. 다음 시간이 되기 전까지 온라인 채널에 올려 공유를 하고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은 후, 수업 시간에 모두토론을 한다는 스케줄이었다.


그때 쓴 글을 보관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기억한다. 첫 문장은 ‘그 대문의 색은 파란색입니다.’였다. 나는 파란 대문이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게 뭘까, 라는 물음으로 글을 시작해 영화 속의 상징들을 살피고 영화적 공간과 시간을 현실에 조금씩 섞어나가는 방식으로 에세이를 썼다.


거의 모든 동기들이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 대부분은 영화감상문 쓰랬는데 왜 상관없는 말만 하고 있냐,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런 의견이었다. 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글을 쓴 것도 오랜만이고 평을 듣는 건 더 오랜만이라 엉뚱한 데서 혼자 감개무량했을 뿐.


그저 그런 날들 중의 하루, 특별한 것 없는 수업 중의 한 시간이었을 뿐이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그날의 수업을 벅찬 마음으로 돌아보게 될 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이름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교수님. 그러나 그때의 표정만은 생생하게 기억나는 얼굴로 교수님이 내게 한 말. “학생의 사유는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의 것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탁월합니다. 더 붙일 말이 없습니다. 그대로 정진하십시오.” ‘정진하십시오’는 교수님의 말버릇이었다.


교수님은 사유에 대해 언급했을 뿐이다. 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계속 글을 써. 그렇게 네가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돼.” 나는 쓰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글이 아닌데도, 어깨너머로 본 사람들은 다들, 너는 왜 쓰는 거냐고 했다.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몰래 썼다. 그러다 점점 쓰지 않게 되었다. 글은 작가나 쓰는 거야, 네가 뭐라고 글을 쓰니? 좋지 않아, 그렇게 쓰는 게 아니야. 등 뒤에서 넘어온 목소리가 종이를 뺏곤 했다.


그날 이후로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싹 사라졌다는 치료기로 이야기가 끝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완성된 글을 쓰지 못했다. 교수님의 말은 내 심장에 울먹한 진동을 주었지만 끊임없이 닥치는 삶의 자극들로 이내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주 사라진 건 아니었다. 증거로 이렇게, 내 멋대로 독후감을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