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를 읽다 쓰다

by 시린

스무 살에 <콘트라베이스>를 만났다. 정신없이 빠졌고, 수도 없이 읽었다. 주인공이 "그러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하고 소리칠 때, 나는 매번, 한 번도 빠짐없이, 조금도 식지 않은 열기를 느끼며, 처음인 양 전율한다. 언젠가 세상을 향해 나도 이렇게 소리치리라.


왜. 왜. 왜냐고 사람들은 자꾸 묻는다. 왜 결혼을 안 했어요? 왜 일을 그만뒀어요? 왜 제주도에 왔어요? 왜 그렇게 부정적이에요? 왜 강의를 들어요? 왜 시를 써요? 왜 좋아요? 왜 싫어요? 왜요?


얼마든지 대답해 줄 수 있다. 정말로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라면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테니까. 그런데 문제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라는 거. 답을 정해두고 묻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거. 그런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 따위 듣지 않는다. 질문을 하려면 들을 자세를 먼저 갖추고 해라, 그게 예의 아니냐고 말하고 싶다. 정말로.


한동안 나를 미치게 했던 말이 있다. 책도 읽어요? 왜 읽어요? 정말 할 말이 없다. 예, 읽습니다. 그냥요. 해야 할 집안일도 없고 키울 아이도 없으니 시간이 남아돌아서요. 상대는 이상야릇한 표정을 짓는다. 상관없다. 어차피 무슨 말을 했대도 그랬을 테니까. 대답 따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니까. 도대체가 책‘을’도 아니라 책‘도’ 읽냐고 묻는 물음에 뭐라고 대답을 할 수 있냐 말이다. 이 사람은 ‘당신이 책을 읽는 모습은 어색해 보이네요.’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 책을 읽고 이해할 만한 지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데요.’라고 말하고 있는 거다. 내가 꽤나 멍청해 보였던 모양이지. 그렇다면 책을 읽고 이해할 만한 지성이 있어 보이려면 어떻게 생겨야 하는 거냐고 묻고 싶다. 그 외에도 따져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관둘란다.


꽤 오래 책 얘기에 목말라 있었다. 책 말고 책 얘기, 그러니까 책을 읽은 후에 나누는 말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인지,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친구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너를 만나니까 ‘히가시노 게이고’ 얘기를 하게 되는구나. 어디 얘기할 만한 데가 있어야지.

그랬다. 어디서 얘기할 데가 없었다. 사람들은 바빠서 책을 못 읽는 건 그렇다 쳐도, 얘기를 들어주지도 않았다. 어떤 자리건 내가 요즘 이런 책을 읽고 있는데, 라고 말을 꺼내는 순간 비난이 돌아온다. 너는 책 읽을 시간도 있고 좋겠다. 뭐니, 지금 잘난 척 하는 거니? 그만두는 게 낫다.


나를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말이 그거다. 잘난 척. 애초에 내가 책 얘기를 하지 않게 된 것도 그 말이 시초였다. 고등학교 1학년, 월요일이었다. 서로 책을 빌려주며 읽던 친구가 주말에 뭐 했냐고 물었다. 책장 정리하다가 셰익스피어를 꺼냈는데, 전에 읽었는데도 기억이 잘 안 나는 부분이 있어서 훌훌 넘기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첨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어. 근데 처음 읽었을 때보다 더 재밌던데?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더라고. 너도 좋아하는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봐, 라는 말까지는 하지 못했다. 친구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나에게, 너는 모든 말이 다 잘난 척이구나! 하고 소리 지르고는 가버렸으니까. 나는 영문을 몰랐고 그저 가슴이 아팠다. 그 후로 나는 책 정리를 좋아한다는 말도, 책을 두 번 읽는 게 즐겁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아예 책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그 잘난 척이라는 말. 이 말의 뜻은 ‘당신은 잘나지 않았어요.’이다. 그러니 어울리지 않는 말은 집어치우라는 거다. 왜 그렇게 잘난 척이에요? 내가 잘나지 않았다고 치자. 거짓말을 해서라도 잘난 사람으로 보이면 내가 얻을 게 뭔가? 당신이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라도 한다는 건가? 미안하지만, 난 당신에게 원하는 게 없다. 그리고 당신은 내가 잘나지 않았다고 단정짓고 있는데, 그렇다면 내가 묻고 싶다.


내가 잘나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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