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드니!>를 읽다 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드니 올림픽 관전기, 라고 할까. 특수한 상황에서의 여행 에세이라고 하면 될까. 이런 종류의 글을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렴 어때, 장르 따위. 그래 이런 글을 쓰고 싶었어, 어린 날 그랬던 그대로, 나는 페이지마다 탄식했다.
“언제부터 작가의 꿈을 꿨냐.”
고 책방 주인이 물었다.
꿔본 적이 없다. 꿈 너머의 꿈이었다. 어느 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리 되었다.
고 나는 대답했다. 사실 아직 작가라는 호칭은 어색하다. 그리 부르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다행이다.
쓰는 걸 좋아하고, 읽는 건 더욱 좋아했을 뿐이다. 살다 보면 곧잘 써야 하는 자기소개서 ‘취미’ 난에 ‘독서’라고 써본 적은 없다. 취미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 더 삶의 근본에 가까운 행위다. 요즘처럼 책 한 권 못 읽는 날이 길어지면 나 지금 뭘 하며 살고 있는 거야? 몹시 화가 난다. 그런 거다.
일기와 습작 노트는 몸에서 한 시도 떼놓지 않던, 어린 나의 보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시작된 불안이 몇 달이 되고, 몇 년이 되어 이제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고 절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십 대의 나는 여전히 어렸고, 겉멋과 치기로 가득했고, 그것이 내성적인 성격을 뚫고 나오지 못했기에 더욱 심각하고 위험했다. 친구도 없고 취미도 없었다. 구석에 처박혀 책만 읽었다. 잉게보르크 바하만, 전혜린, 한나 아렌트,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 알바레즈의 자살의 연구.. 그 땐 아직, 책 속에 답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익지도 않은 머리에 잘 이해되지도 않는 문장들을 쑤셔 넣기 바빴으니.
소설과 희곡, 동화 가리지 않고 좋아했지만 에세이류는 잘 읽지 않았다. 그때 나의 책 고르는 첫 번째 기준은 ‘오래 읽을 수 있는 책’ 이었다. 두껍거나 어려운 책을 먼저 읽었다. 훌훌 읽어 넘길 수 있는 책은 서점, 도서관 서가에서 읽는 걸로 충분했다. 그러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는 아마 내가 처음으로 산 책이었을 거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에 끌려 소설인 줄은 모르고 책을 읽었고, 작가에게 흥미가 생겼고, 책을 찾아 읽다 보니 에세이도 읽게 되었던 건데..
그래, 이런 글을 쓰고 싶었어, 페이지마다 탄식했다. 하루키의 책을 읽다보니 ‘쓰고 싶다’는 마음이 보글보글 일어났던 거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이 자꾸만 무언가 끄적이고 싶어 움찔거렸다. 나는 근질거리는 손가락에 한껏 힘을 넣어 주먹을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썼다. 하루키의 문장을 읽으면 살맛이 난다고. 그의 글을 보며 맥주와 샌드위치를 먹었고, 사진을 태울 수 있는 철제 휴지통을 갖고 싶어 했다. 얼굴은 곧 죽을상이었으나 그의 유머에 속웃음을 피식거리곤 했다. 그렇게 조금씩 회복되었다. 그때부터 작가의 꿈이 시작됬다는 게 아니고, 쓰는 것에 대한 욕망을 깨달았다고 할까.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확인하게 되었던 날이다.
시드니? 그때와 똑같았다. 여기저기 도망쳐 다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와락 겁이 났다. 불을 끄고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서 다시 켜기를 반복했다. 발작적으로 울다가 아픈 머리와 악몽을 끌어안고 데굴데굴 굴렀다. 아침이면 시계를 보지 못했다.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잠이 오지 않았다. 몽유하듯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화들짝 놀랐다. 캄캄하여 보이지 않았지만 눈앞은 대개 벽이었다. 정확하게는 벽에 있는 책장이었다. 기계적으로 아무 책이나 들었다. 안 읽은 책이 있네. 기계적으로 중얼거리면서. 안 읽은 책이 있다니, 전 같으면 생각도 못 할 일인데. 밀린 숙제하듯이 읽지 못하고 있던 책을 읽고. 읽다가 하루키의 책을 들었다. 이미 몇 번 읽은 책이지만 하루키의 경쾌하고 힘이 들어가지 않은 유머, 살맛나는 문장이 필요했다. 읽었다. 꼭꼭 씹었다. 똑같았다. 웃지는 못했지만 마음에 빗방울이 떨어지듯 타닥타닥 튀는 게 있었다. 그래, 이런 글이 쓰고 싶었다. 읽었던 책을 또 읽고 다른 책을 또 읽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주문했다.
시드니! 하루키는 이 책을 위해 올림픽이 열리는 3주 정도를 시드니에서 올림픽을 보고 글만 쓰며 보냈다고 했다. 매일 분량의 원고를 써야 했으니 시간의 제약이 있었다. 그래서 글은 더 구체적이고 현장감이랄까, 날 것 같은 느낌이 진하다. 이런 것까지 쓰다니! 할 정도로 세세하다. 그야말로 일기를 쓰듯 몇 시에 일어나고 어디에서 무엇을 먹었으며 몇 시에 잠들었다는 얘기까지 있다. 그런 책이 재미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말없이 책을 들이밀겠다. 시비를 걸고자 했던 사람이라도 전투력을 상실할 것이다. 그런 책이다. 올림픽의 영광? 스포츠 정신? 글쎄.
하루키의 문체 아니, 어투는 여전했다. 딱히 어떻다, 라고 정형화할 순 없지만 오래 읽다 보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어투와 기대하게 되는 유머가 있다. 기대했던 이상이었다. 더 생생했다. 피부에 와 닿았다고 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그렇게 느낄 정도였다. 글을 쓰는 데 글감 같은 건 정말 아무 상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신했다. 글을 쓰는 상황이며 장소는 중요하지만 좋은 상황과 장소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도.
하루키가 나의 멘토라거나 영향을 준 사람이라 할 수는 없다. 내가 그를 최고의 작가라고 여기는 것도 아니다. 그의 책을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권한 적도 별로 없다. 그러나 그의 책은 내 삶에서 하나의 계기, 문이 되었다.
신형철(평론가)의 대사를 따라해 본다. 최고의 작가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