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를 읽다 쓰다.
"여자는 몰래 음식을 먹는다. 몰래 산 옷을 옷장 속에 넣어 둔다. 제자들의 뒤를 밟고, 사람들을 훔쳐본다. 자신을 보이지 않고 타인을 지켜봄으로써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가 타인을 내 맘대로 조종하고자 한다. 엄마는 딸을,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자기 외의 모든 사람들을. 오직 여자만 판단하고, 평가하고, 타인을 벌줄 수 있다. 절대로 누구에게도 권리를 넘겨줄 수 없다. 통제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여자는 화장실에 숨어서 빵을 먹는다. 속이 보이지 않는 가방 안에는 쌍안경이 들어있고 신분증은 없다.” - <피아노 치는 여자> 중에서. -
나는 나를 보이는 게 싫었다. 내가 가진 건 온통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것뿐이었다. 콤플렉스라는 말도 몰랐을 때부터. 가난한 집, 못생긴 얼굴, 힘없는 목소리. 좋아할래도 좋아할 수 없는 나를 타인에게 들킬까 봐 늘 안절부절이었다.
서랍에는 멀쩡한 양말이 별로 없었다. 짝이 맞지 않거나 목이 늘어지거나 구멍 난 게 거의 다였다. 그나마 기워놓은 거라면 낫지만 미처 바느질을 해두지 못한 구멍 난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가야 할 때도 많았다. 그날의 신경은 온종일 양말에만 가 있었다. 신발을 벗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어쩌나. 선생님이 ‘신’ 비슷한 단어를 말할 때마다 움찔 놀랐다. 수업이 끝나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얼른 집으로 갔다.
이름을 말하면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 O숙? O성? ..O석, 이라고 말하면 남자 이름 아니냐는 말이 돌아온다. 지금까지도. 지금에야 웃으며 넘기지만 어린 나이에는 예쁜 이름이 아니라는 단순한 속상함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도 자기소개를 하는 첫 자리는 늘 부담스럽다. 그러잖아도 작은 목소리가 이름을 말할 때는 더 작아진다. 어린 시절부터 주눅 들었던 기억은 몸에 배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못생긴 얼굴, 초점 맞추기 힘든 눈동자로 살아간다는 건 도대체가 험난한 일이다. 잘난 외모가 능력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세상 아닌가. 일일이 예를 들 수도 없고 그럴 필요조차 없지만 나 자신이 기가 죽어서야 될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 역시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맞추면 식은땀이 난다. 제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 얼굴이 얼마나 빨개졌을지, 이런 나를 보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돼서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지경이 된다. 해야 할 말을 제대로 못했음을 뒤늦게 떠올리고, 내가 한심스럽고, 다시 방에 처박힌다.
미리 예상되었던 상황에서도 이럴진대, 우연한 마주침은 나를 더욱 불편하게 한다. 순수하게 반가워하지 못하고 내가 어떻게 보일까 또다시 전전긍긍한다. 범죄의 현장을 들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이쯤 되면 습관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문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타인을 대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숨고 용기를 냈다가 다시 자기비하에 빠지고 또 처박히고 궁리하고.
그러다 겨우 생각해낸 게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였나보다. 갓 들어간 회사에서, 명찰에 각자의 좌우명을 적으라고 했다. 그런 게 있었던 적도 없는데 만들어서라도 써야만 했으니, 나는 ‘항상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자.’라고 썼다. 그때 골몰했던 생각이었으니까. 언제라도 나를 보이는 게 괜찮을 수 있도록 늘 긴장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선배가 나에게 참 특이하다고,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쓰면 될 거 아니냐고 타박 아닌 타박을 했었다. 또 한 번 작아지는 순간이었다.
솔직하고 싶었다. 짐짓 꾸미지 않고 나를 그대로 보이고 싶었다. 그게 왜 이리 어려운 일인지. 나 자신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자꾸 가면을 쓰려 하고, 그런 내가 더 싫어서 숨을 곳을 찾는다. 도돌이표.
알고 있는데,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내 이런 태도가 오히려 타인에게 나를 존중하지 않을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나는 왜 나를 존중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을 위해 옷을 입는 게 아니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으면 된다. 나는 오늘도 이불을 정리하고 컵을 씻어두고 나왔지만,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내가 의식해야 하는 사람은 타인이 아니다. 사실 타인들은 내게 관심도 없지 않은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다만 얼굴이 빨개지지 않고 상대를 마주 볼 수 있기를. 두려워 말고 내 생각을 말할 수 있기를. 그래서 더는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은 가끔, 내가 부끄러워질 때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