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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Jun 20. 2024

아빠와 폴 오스터

<4321>을 읽다 쓰다

요즘 뭐가 재밌냐? 아빠가 물었다. 상품권 나도 있어, 라고도 덧붙였다. 책 얘기였다. 당신이 읽을 책을 묻는 법은 좀처럼 없는 분인데, 딸이 골라줬다며 엄마가 사들고 온 책이 좋아보였던 모양이다. 과장하자면, 샘났던 거다. 모녀가 자기들끼리만 속닥거리는 게. 나이 들면 아이로 돌아간다지 않나.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감정이 순수해지고, 즉각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리 변하는 사람이 많다.


뭐뭐가 인기더라고 말해주고 돌아왔는데, 책장을 훑어보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나는 거다. 어느날 전화가 왔다. 꼭 필요할 때만 전화하는 아빠의 용건은 <1Q84>를 보내달라는 거였다. 이십 대 초반까지 아빠랑 살았는데 암묵적 약속이 있었다. 내가 살만 한 책만 산다, 서로가 살만 한 책은 사지 않는다. 중복구매와 책장붕괴를 막기 위해 필요한 약속이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책이 있고 내가 신작을 챙겨보는 작가가 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 모두 사는 편이었다. 내가 따로 살기 시작하며 약속은 의미를 잃었지만, 하루키를 즐겨 읽던 딸에게 책이 있을 거라 확신한 아빠는 전화를 한 거였다.


심지어 나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읽기 전이었지만 전집을 다 보냈더랬다. 다 읽고 다시 보내달라 했던가 안 했던가, 기억은 안 난다. 아무튼 아빠는 가끔 그런 전화를 했다. 체호프 단편집 어디 있냐고, 밀란 쿤데라의 <농담>과 폴 오스터 <우연의 음악>을 보내 달라고.


실은 아빠가 읽을만 한 책을 물었을 때 고민했다. 이 책을 과연 좋아할까, 매번 망설여졌다. <4321>이 나는 재미있지만 팔순 노인에게도 그럴까 싶었는데 쓸데없는 고민은 관두기로 했다. <해변의 카프카>와 <느림>을 재미있게 읽는 노인이라면 괜찮을 거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폴 오스터는 아빠랑 한두 살 차이밖에 안 나고 <4321>이 나왔을 땐 70세였다. 어제 택배로 책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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