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주장 (4-27장)
엘리바스, 빌닷, 소발 이 세 사람에 대한 배경 지식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욥에게 한 말들을 토대로 각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인생의 경험과 신령한 체험을 근거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고, 빌닷은 앞 세대가 쌓아놓은 교리와 전통을 많이 의지합니다(특히 8장에서). 소발은 하나님의 초월성이라는 전제를 강조하며 자신의 주장을 단호하게 펼칩니다. 하지만 친구들 각각의 특징을 구분짓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동일한 신학으로 동일한 주장을 욥에게 쏟아놓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친구들의 권면들을 하나씩 살펴봅시다. 지금까지 순차적으로 욥기를 읽어왔지만, 이제부터는 이곳 저곳을 마구 뒤적여야 합니다. 욥기가 방대한 만큼, 지루함을 피하려면 순차적으로 읽어나가는 것 보다 그들의 주장들이 두드러진 구절들을 발췌하여 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것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친구들이 욥의 상황을 해석하는 근거는 '인과응보의 신학'입니다. 인과응보가 무슨 뜻인가요? 선한 일에는 좋은 결과가, 악한 일에는 나쁜 결과가 따른다는 의미이지요. 신학적으로는 이렇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한 행실을 하면 복이 따라오고 악한 행위를 하면 징계와 심판이 따라온다.
인과응보의 신학은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셨던 말씀와 맥을 같이 합니다. 신명기 28장을 다 살펴볼 수는 없지만 핵심적인 틀만 보여드리자면 이런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신명기 28:1-14)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게될 때 받게될 복을 열 네 절에 걸쳐 나열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불순종할 때는요? 그때 이스라엘이 받게될 재앙은 자그마치 15절부터 끝절인 68절까지입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이러므로 네 눈에 보이는 일로 말미암아 네가 미치리라 ....
(신명기 28:5-68)
읽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느낌이 듭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이란 이처럼 참혹한 결과를 맞이한다는 의미이죠. 이스라엘은 훗날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면서 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이와같이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는 원리가 바로 인과응보의 신학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와같은 신학에 근거하여 친구들은 욥에게 아래와 같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먼저 엘리바스의 말을 살펴볼까요?
생각해 보게. 죄 없이 망한 자가 있던가? 정직한 사람이 갑자기 죽던가?
내가 본 바로는, 악의 밭을 갈고 죄를 심는 자들은 뿌린 대로 거두며,
하나님의 숨결에 망하고, 하나님의 진노에 끝장이 난다네.
(4:7-9, 쉬운성경)
엘리바스는 악을 심는 자는 그가 뿌린대로 망하고 끝장난다고 욥에게 말합니다. 엘리바스가 처음 말을 꺼냈을 때는 아직 온건하게 욥에게 권면하는 분위기였으므로 '너가 바로 그다' 라고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욥이 충분히 그 의미를 이해하도록 얘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니 죄를 뿌린 사람은 반드시 그 대가를 받더라고... (지금 네가 딱 그모양이잖아)'
빌닷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악인의 결말은 망하는 길밖에 없고, 그들의 재산과 부귀를 붙든다 해도 하나님이 다 불어버리신다고 주장합니다. 욥의 재산이 끝장나버린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들의 운명이 이렇다네. 악인들의 소망도 이렇게 망해 버리지.
그들이 믿는 것은 정말 허무해서 마치 거미줄을 의지하는 것과 같아.
혹시 그들이 집을 믿을 수도 있겠지만 집도 의지할 것은 못 돼. 단단히 붙잡으려고 하겠지만, 도움이 안 되지.
(8:13-15, 쉬운성경)
소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악인의 결말은 그의 재산과 함께 휩쓸려가버리는 것입니다.
악인의 집은 홍수에 휩쓸려 가고,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그 재물은 급류가 쓸어버린다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악인의 운명이요, 악인의 기업일세.
(20:28-29, 쉬운성경)
친구들의 말들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의인들에게 복을 주시지만, 악인들은 망할 수밖에 없다. 네가 지금 고난당하는 걸로 보아 너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니냐?"
즉, 악인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에 근거하여, 욥에게는 숨겨진(어쩌면 본인도 인지하지 못했던) 죄가 있음이 틀림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욥이 당하고 있는 고난은 하나님의 징계요, 죄에 대한 결과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친구들의 이러한 해석이 맞나요? 1장의 천상회의를 엿볼 수 있었던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욥이 지금 시련 아래 있는 것은 그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친구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근거로 욥의 상황을 해석했지만 그들은 틀린 결론을 내고 말았습니다.
친구들이 말하는 두 번째 주장은, 욥이 "나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 이런 끔찍한 재앙을 당할 만큼 잘못하지 않았다."는 말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잘 살아왔다고 어필하는 것, 자신의 의를 그분 앞에서 주장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야 말로 의로움의 완전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행위는, 오히려 스스로의 더러움을 까발리는 자승자박 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와 비슷한 사례들을 성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환상 중에 보았을 때 자신의 존재가 썩은 듯이 변해버렸다고 서술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다니엘 10:8)
대표적인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죄악으로 가득찬 이스라엘에 가장 의로운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였을 때 그는 자신의 죄성으로 인해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이사야 6:5)
이들뿐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예외없이 두려워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한낱 피조물인 우리들과 비교의 대상이 아닌 의의 본체이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친구들은 욥의 몸부림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던 사람들도 하나님의 영광 앞에 고꾸라졌는데 어떻게 교만스럽게 그분을 향하여 자신의 의를 주장할 수 있냐는 것이지요.
엘리바스는 여자에서 난 사람(즉 모든 인간)은 의로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깨끗할 수 있으며 여자에게서 난 사람이 어떻게 의로울 수 있겠는가?
보게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천사들도 신뢰하지 않으시며, 그분이 보시기에는 하늘도 더럽다네.
하물며 가증하고 타락한 사람, 악한 행동을 물 마시듯 하는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15:14-16, 쉬운성경)
빌닷도 마찬가지의 말을 합니다.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벌레, 쓰레기와 같은 존재 아닙니까?
감히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다 말하고, 여자의 몸에서 난 사람이 깨끗하다 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달도 깨끗하지 못하고 별도 순수하지 못한데,
하물며 구더기 같은 인생, 벌레 같은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25:4-6, 쉬운성경)
소발은, 전능하신 창조주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했다가는 오히려 본인이 유죄 선고를 받고 말 거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자네가 하나님의 신비하심을 깨달을 수 있는가? 전능자에게서 어떤 한계를 찾을 수 있겠는가?
그것들은 하늘보다 높고 무덤보다 깊으니, 자네가 어떻게 알겠는가?
또한 그것들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도 더 넓다네.
그가 오셔서 자네를 잡아 가두고 재판을 하신다면, 누가 감히 그에게 반론하겠는가?
그분은 거짓된 사람을 잘 아시기 때문에, 그들의 죄를 모두 찾아 내신다네.
(11:7-11, 쉬운성경)
이처럼 친구들은 "주님, 나는 깨끗하게 살아왔습니다!" 라고 부르짖는 욥을 향해, "그 기도를 그만둬라. 쓸모없는 기도일뿐더러 오히려 네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다그칩니다.
친구들이 보기에 지금 욥은, 너무나 큰 재난에 빠진 나머지 불만과 불평이 입 밖으로 마구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받던 믿음의 위인이 이렇게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에 그들은 당황했고, 당장 그 부정한 언사를 그쳐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소망과 감사의 제목들을 애써 찾아도 시원찮을 판에 부정적인 말을 마구 쏟아내는 욥은 벼랑을 향해 폭주하는 열차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엘리바스는 불평과 불만이야 말로 미련한 자의 행위이며,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권면합니다.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5:1-2)
또한 그는 욥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에 귀 기울일 생각을 않고 도리어 대드는 행위를 당장 그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은밀하게 하시는 말씀이 네게 작은 것이냐
어찌하여 네 마음에 불만스러워하며 네 눈을 번뜩거리며
네 영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
(15:11-13)
빌닷 역시 욥의 불평불만이 스스로를 찢는 자해의 결과만을 가져올 무익한 행위라고 말합니다.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18:4)
긍정적인 언어는 중요합니다. 우리는 말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많이 들어왔고, 실제로 경험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모든 부정적인 언어들을 '합당하지 않은' 범주로 분류해야 할까요? 친구들은 불평과 불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매를 맞아도 하나님께 희망과 순종의 언어로 나아가야만 해결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욥을 설득합니다.
결국 욥을 향한, 친구들의 최종 제안은 '회개하라' 입니다. 이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일단 '잘못했습니다. 나 좀 살려주십시오' 하고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조건 꿇고 나아가면 그때부터 무언가 실마리가 풀리고 하나님께서 (네 죄가 무엇인지) 말씀하실 것이며, 결국에는 회복이 임할 것이다. 이것이 세 친구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욥에게 '순종하기'를 밀어붙이는 그들이 제시하는 약속은 달콤하기까지 합니다.
엘리바스가 말한 회개의 약속을 봅시다. 구절구절이 아름답습니다.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
(5:17-20)
특히 빌닷의 말은 우리에게 유명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8:5-7)
소발도 노골적으로 회개를 촉구합니다. 욥이 먼저 해야 할 것은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손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네가 기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될 것이요
네가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며 두루 살펴보고 평안히 쉬리라
(11:13-18)
친구들은 이런 논리들로 욥에게 권면을 했습니다. 그들의 말들은 화려하고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우리는, 친구들이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욥을 향한 그들의 말들에는 무엇이 잘못되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