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에 걸친 욥기 강의가 끝났습니다. 이제 욥기라는 성경의 메시지가 어느정도 눈에 들어오시나요? 이 책의 내용이 여러분께 잘 전달이 되었다면 욥기가 단순히 고난을 잘 견뎌낸 한 위인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고대를 배경으로 한 욥의 이야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함께 살펴본 내용들을 정리하며, 그 내용들을 살펴봅시다.
욥기는 고난에 대한 성급한 해석을 경계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주인공인 욥입니다. 그는 이 세상 누구보다 끔찍한 재난을 당했지만 그 이유는 그가 이 세상 누구보다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친구들로부터 죄인임을 의심받으며 더욱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엘리후는 욥의 고난이 더 큰 성숙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임을 주장했지만 이 또한 틀린 것이었습니다. 연륜과 지식이 원숙한 욥의 친구들, 그리고 젊고 패기있는 엘리후의 말들은 진실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 무엇보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지만, 성경은 우리가 공식처럼 생각해낼 수 있는 것들이 정답이 아닐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욥기는 절망하는 모습 자체가 불신앙이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삶의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버린 욥은 믿음을 굳건히 지키는 듯했지만, 이내 "죽고싶다"며 한탄했고 불신앙처럼 보이는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고난에 직면한 모든 사람이 보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믿음 = 흔들리지 않음'이라는 고정관념은 시련 앞에서 보이는 자신의 반응에 죄책감을 가중시키고, 고난을 당한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고통 앞에서 얼마든지 좌절하고 절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신앙의 모습이 아닙니다. 나아가 성경은, 우리가 거친 언어를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것을 촉구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감당하시고 받아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욥기는 누군가를 향한 어쭙잖은 위로가 도리어 그 사람을 더욱 망가뜨릴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욥을 돕고자 했지만, 그들의 말은 욥을 더욱 잔해할 뿐이었습니다. 친구들의 하나님 이해는 은혜와 긍휼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과응보라는 원리로 여겼고, 그것을 욥에게 전했습니다. 욥은 친구들을 돌팔이 의사라고 판단하며, "나를 제발 그만 괴롭혀다오"라고 요청할 정도로 괴로워했습니다. 욥기가 이런 친구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쓸모없는 의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편적인 교리나 성경말씀으로 누군가를 쉽게 위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럴듯한 말들은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더욱 괴롭게 만들 뿐입니다. 오히려 욥의 진심어린 탄식과 토로는 친구들이 처음 그를 찾아와 '아무런 말없이' 함께해 주었던 행동 때문에 터져나왔습니다. 가장 좋은 위로는 무엇일까요? 욥기는 이에 대한 Best 대신 Worst 사례를 보여주며 공동체 안에서 위로와 나눔을 전하고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욥기는 하나님을 향한 몸부림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욥의 기도는 과격했습니다. 그는 반 실성한 사람처럼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친구들은 이러한 욥의 시도가 무의미하다고 말렸지만, 욥은 하나님께 소송까지 불사하며 그분을 향한 질문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원수처럼 대적하시고 굳건한 벽처럼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것 같이 보였음에도, 욥은 "죽어서라도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보였습니다. 욥의 이런 거친 행동은 사실 하나님을 향한 신뢰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온 몸으로 맞닥뜨리면서도 그분을 '고엘(구속자)'라 부르는 욥의 모습은, 때때로 하나님을 향한 기대를 포기하고 싶어하는 우리들에게 도전과 격려를 줍니다.
욥기는, 하나님의 지혜가 결코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 얻어낼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합니다. '지혜의 장'이라 불리는 욥기 28장은, 인간이 결코 발견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는 지혜의 영역이 있다는 것과, 그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모든 주권을 인정하는 가운데(그리고 그분의 허락 가운데) 그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뜻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치열한 질문 속에서 욥기는 여렴풋한 하나의 길 하나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 비밀을 깨닫게 해 줄 뿐 아니라, 이후 거친 신앙의 순례길에서도 동행해 줄 것입니다.
욥기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 중심의 신학에서 벗어나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하도록 이끌어줍니다. 매정하고 무서운 것처럼 느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욥을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게 해 주는 자비로운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나'를 세상의 중심에 놓은 상태에서 시도하는 해석들은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욥기는 이 세상에 인간이 결코 이해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설령 어떤 질문에는 답변이 주어지지 않을 수 있음에도- "나는 모릅니다"라는 겸손의 자세를 요청합니다. 나아가 욥기는 완전한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신앙의 삶으로 우리를 초청합니다. 우리는 혼돈스럽고 악한 세대를 살면서도 힘을 얻고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눈에 보기에 실망스러운 결과들이 펼쳐진다 할지라도 안심하며 걸어갈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통치자께서 나를 생각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욥기는, 비록 거칠더라도 하나님을 향해 질문하는 사람이 그분께 인정받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사람은, 말씀과 교리로 그분을 변호하던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아닌, 회의의 질문들을 쉴새없이 던졌던 욥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무엇일까요? 그분에 '관해'(about) 아는 것은 비인격적인 지식의 축적일 뿐입니다. 거기에 머무른 채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을 '향해(to)' 질문하며 배우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설령 그 모습이 때로 신성모독적이고 과격할지라도, 중심에 진실함이 있다면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들의 질문들을 들으시고 자신을 계시하실 것입니다.
욥기는 이해불가한 세상의 일들, 특히 말씀과 괴리를 일으키는 듯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루어 줍니다. 질서정연한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는 성경들 가운데 무질서와 혼돈의 실재를 붙들고 씨름하는 책이 함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큰 위로와 복이 아닐까요? 욥기는 그 어떤 정답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이 세상과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우리를 인도해 줍니다.
이 책은 욥기를 전체적으로 개관하는 내용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보다 깊이 욥기를 묵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저의 목적이었으니까요. 이제 다시 욥기 1장을 펴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펴본 큰 그림을 갖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한 절 한 절 본문들을 곱씹는다면 여러분께 더욱 큰 은혜가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