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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아빠 Jan 06. 2022

미필과 예비아빠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임신 제30주

미필과 예비아빠 사이엔 뜻밖의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해당 신분에 편입됨과 동시에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 아킬레스건은 그 어떤 갑옷으로도 보호할 수 없으며, 당사자를 삽시간에 무장해제 시키는 고약한 약점이다. 미필의 경우 “군대 안 갔으면 짜져 있어”가 그것이고, 예비아빠의 경우 “9개월 동안 애 니가 달고 다녔어?”가 그것이다. 이 짧은 말 한마디 앞에서는 그 어떤 견고한 논리도 구멍 난 풍선처럼 쪼그라든다. 군대에 안 간 자에겐 현역의 말이 진리이고, 임신을 안 한 자에겐 아내의 말이 법이다. “나도 훈련소는 갔다 왔는데”라든지, “나도 옆에서 힘들었는데”와 같은 주절거림은 씨알도 안 먹힐뿐만 아니라, 당사자를 한없이 구차하고 초라한 인간으로 만드는 역효과를 낳는다.


난 사회복무요원(공익)으로 집 근처 중학교에서 2년간 복무했다. 그럼에도 앞서 나 자신을 미필로 칭한 것은 현역의 분류체계를 따랐기 때문이다. 현역은 공익, 면제, 방위를 구분 짓지 않는다. 현역에게 이들은 모두 ‘미필’일 뿐이다. 다른 공익들은 군필들 사이에서 어떤 존엄한 대우를 받는지 모르겠지만, 난 군대 얘기만 나오면(무조건 한 번은 나온다) 결혼한 친구들 사이에 낀 솔로처럼 붕 떠오르는 무중력 존재가 되었다. 조용히 입을 닫고 이 의미 없는 대화가 빨리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으면, 눈치 빠른 친구 하나가 “어이 공익”하고 날 불러 세우는 쓸데없는 관심을 베풀곤 한다. 간혹 훈련소 관련 얘기는 그나마 건드려볼 껀덕지가 있다고 판단하여(공익도 훈련소는 간다) 한마디 보태기라도 하면, “에이, 너 군대 안 갔잖아”라는 거의 자동반사적 차단에 막히기 일쑤다.


그렇다고 내가 서운함이나 소외감을 느낀다는 얘기는 아니다. 차라리 현역으로 다녀와 대화에 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2년 동안 열심히 삽질하고 온 친구들에게 잠시나마 웃음거리가 되어주는 건 어렵지 않다. 한번은 내가 한술 더 떠서 앞으로 군대 얘기가 나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전 군대를 안 갔습니다”라고 큰소리로 자진신고하겠다고 했다. 친구들이 깔깔대며 좋아했다.


그렇다면 예비아빠의 아킬레스건은 무엇인가. 부부가 9개월이란 시간을 같이 견뎠다 해도(우린 아직 2달 남았지만 앞으로 크게 달라질 거 같진 않다), 배를 움켜쥔 아내 앞에선 난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일 뿐이다. 현역과 미필의 역학관계처럼, 남편에게 산고란 불가침의 영역이다. 한번은 “애 니 배 속에 있어?”라는 말이 하도 억울해서 이런 상상까지 해봤다. 먼 미래에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임신을 남녀가 번갈아 하는 것이다. 자궁 대신 체외 발육기 안에서 태아를 길러, 한 사람이 하다가 힘들면 배우자에게 바톤터치하는 식으로 사이좋게 발육을 분담하는 것이다. 발육기 교체를 위해선 집 근처 산부인과를 방문하여 “저희 교체하러 왔어요~”라고 하면 직원이 “아 교체실로 들어가셔서 직접 하시면 돼요~”라고 하는, 마치 전기차 충전하듯 발육기를 떼었다 붙였다 하면 된다. (단언컨대 이런 미래에는 성차별이 없을 것이다.)


아내의 필살기를 맞고 억울함이나 섭섭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때때로  절대권력을 행사하려는 그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지난 7개월 남짓 아내의 임신을 지켜본 결과, 아무리 생각해도 여성 혼자 임신을 전담하는  진화론적 버그가 틀림없다. 진화란  유전자 변이의 축적이고, 이엔 목적지향성이나 의도성이 없다는  알지만, 그래도 몸이라는 ‘제품 사용하는 유저 입장에서  점은 고객센터에 신고하고 싶은 불만사항이다. 가끔  근처 하천에서 오리떼를 보면 태생 난생을 지향하는 그들이 그렇게 현명해 보일 수가 없다. 마치 “뭐하러 불편하게시리 몸 안에서 길러? 알 낳아서 밖에서 기르면 될 것을"라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오리가   없고, 그리고  신고를 받아줄 고객센터도 없다. 그저 이따금 아내에게  아킬레스건을 내주며 여생을 보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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