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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아빠 Jan 30. 2022

삶은 기적과 일상의 반복일까요?

임신 제33주

예비아빠는 실상 전업 당근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경우 지난 2주간  10번의 거래를 했는데, 판매자와 채팅하고 시간 조율하고 가격 흥정한 시간까지 합하면 웬만한 직장인 업무시간에 준하는 노동이다. 임신 내내 그래 왔다는 얘기는 아니고, 30주를 넘기면서부터 이렇게 당근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드디어 현실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겐 여유가 넘쳤다. 올해부터 대폭 인상된 출산지원금 받을 생각에 히죽거리기나 하고, 아내 배를 쓰다듬으며 “베일리, 거기 안에서  지내고 있지?” 하며 헤벌레하는   주된 역할이었다. 그러다 어느  무심코 계산을 해보니  달이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오동통한 난쟁이가 정확히 7  오만상을    품에 안겨 자신의 생존을 위탁할 것이라는 현실 전속력으로 다가왔다. 과연   생명을 오롯이 책임질 정서적, 심리적, 물리적 준비가 되어 있나? 애초에 정서적 준비와 심리적 준비는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차치하더라도, 물리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었다. 인터넷에 ‘신생아 준비물 검색해보니 흡사 국토종주보다 필요한  많았다. 세상에 이렇게도 다양한 ‘싸개들과 ‘시트들이 존재한다니. 당장 베일리를 병원에서 집으로 데려올 카시트도, 베일리의 대소변 변천사를 목도할 기저귀 갈이대도, 베일리를 목욕시키고 발라  영아용 로션도, 장장  페이지에 걸친 리스트  우리가 가진  당장 필요도 없는 토토로우주복과 모빌거치대 따위뿐이었다.


 일상을 반납하고 당근에 매진하기를 열흘째. 리스트  뭐가 필수품이고 뭐는 반짝 유행인지 분간하는 안목도 생겼다. 굵직한 당근 거래  건을 성사시킨 다음 , 자축의 의미로 마실 삼아 아내와 해룡면에 있는 기적의도서관에 갔다. 처음에는 무슨 이름이 촌스럽게시리 ‘기적의도서관이지 싶었는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이유를   같았다. 영유아와 저학년생의 지상낙원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모든 가구와 시설이 어리신 분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계된 이곳은 아동문학부터 그림책과 만화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장서량을 뽐내고 있었다. 도서관 곳곳에 아이들이 편하게 널브러져 책을 읽을  있는 안락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여기저기 배치된 식물들이 한데 우거져 짙은 녹음을 발산하고 있었다. 


내가 “우와”를 연발한 곳이 두 군데 있었는데, 첫째는 바로 도서관 안쪽에 있는 이른바 ‘수영장’이라 불리는 공간이었다. 이곳은 바닥보다 한 계단 낮게 만들어진 뻥 뚫린 공간으로 아이들이 자유롭게 퍼질러져 뛰놀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또 하나 압권이었던 것은 도서관 정중앙에 있는 대나무밭이었다. 2-3평 남짓한 이 공간은 사면이 유리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야 이곳이 실내가 아닌 엄연한 야외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도서관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사계절을 관람할 수 있게끔 도서관을 설계하신 정기용 선생님에게 마음속으로 절을 두어 번 올렸다.


예전에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린아이를 키우는  가족이 독일의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로 놀이터 순례를 다녀오는 내용이었다. 저자 이소영은 달랑 나무기둥  , 타이어  , 그물망  개만 있는 휑뎅그렁 독일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어느 때보다  노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디즈니랜드를 방불케 하는 한국 아파트 단지의 형형색색 놀이터와 비교했을  그저 앙상해 보이기만  독일의 놀이터가 오히려 아이들의 상상력을 끌어내고 무한대의 가능성을 제시할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이소영은 어쩌면 한국의 놀이터는 노는 아이들이 아닌 그들을 저만치에서 지켜보는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이지 않은가, 그리고 독일의 놀이터가 진정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일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도서관을 기웃거리 왠지 이곳이라면 독일의  어떤 놀이터에도 꿀리지 않을 것이라는 난데없는 자부심이 일었다. ‘열람실이나 ‘종합자료실’ 같은 건조한 단어들 대신 ‘도란도란방, ‘비밀의정원’, ‘별나라다락방같이 동심이 뚝뚝 묻어나오는 공간들로 이루어진 이곳에서 아이들은 제멋대로 상상의 가지를 뻗을 것이다.  태어날 베일리가 비밀의정원에서, 별나라다락방에서 하염없이 보낼 시간에  가슴이 괜히 설렜다.


도서관에는 어린이책 뿐만 아니라 부모를 위한 육아 관련 책들도 많았다. <생후   >, <2 국어 아이 키우기> 같은 제목들을 유심히 쳐다보던  불현듯  이곳이 ‘기적의도서관인지   같았다. ‘기적 도서관의  이용객인 어린이를 예찬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과 떼려야   없는 육아라는  역시 ‘기적으로 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안의 냉소주의가 딴지를 걸었다. 만약 출산과 육아를 마냥 즐겁고 행복한 일로 미화하려는 속셈이라면 선뜻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검색해보니 네이버사전은 ‘기적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없는 기이한  정의했다. 긍정적 의미를 예상했는데 뜻밖이었다. 이런 의미라면 흔쾌히 동의할  있었다. 아직 육아를 시작하기도 전인 풋내기들이지만, 그런 우리에게도 베일리는 충분히 기적적인 존재다. 베일리의 탄생을 말미암아 서울을 뒤로한  순천행을 택했고, 아파트 대신 주택살이를 택했다. 이젠 책을 빌려도 육아책을 빌리고, 중고를 사도 아기용품을 산다. 임신 전의 삶과 비교했을 , 지금의 삶은 실로 비상식적이고 기이하다.


미국의 소아과 의사 벤저민 스포크는 예비부모들이 가장 흔히 하는 착각  하나가 바로 출산만 끝나면 일상을 되찾을  있다 생각라고 했다.  구절에서 유난히 뜨끔했다.  역시 베일리가 태어나기만 하면 우리 둘의 순탄했던 일상으로, 다만 둘이 아닌 셋이 되어 돌아가리라는 기대가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 스포크는 우리가 기다려온 것이 출산의 끝이 아닌 생명의 시작임을 다시금 일깨워 줬다. 그의 말이 맞았다. 지나온 8개월은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인고의 시간이 아닌,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기 위한 웅크림의 시간이었다. 과연  웅크림이 끝날 무렵, 우린 무사히  일상으로 걸어 들어갈  있을까. 겁은 나지만   있으리라 믿는다. 처음에는 태풍처럼 삶을 뒤흔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잔잔한 파도가 되어 일상으로 스며드는 일들을   경험한 적이 있다. 결혼이 그랬고, 임신이 그랬다. 베일리라는 기적도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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