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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의 뇌 일부가 손상되었습니다.

by 해피써니쌤 Mar 17. 2025

브런치를 시작하면서부터 이 이야기는 꼭 쓰고 싶었다. 

언젠가 한번쯤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쉽게 시작하질 못했다. 그러다 지난 주말 아픈 두 아이를 키우며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글을 읽고 나도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다시 생겼다. 그 긴 이야기의 여정을 시작해보려 한다.


"태아의 뇌 일부가 손상된 것 같습니다."

임신 6개월에서 7개월로 넘어갈 때쯤이었다. 

의사의 청천 벽력같은 말 한 마디에 난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다니던 동네 산부인과에서 대학 병원으로 소견서를 써 주며 가보라고 할 때도 무슨 일이 있겠냐며, 괜찮을거라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검사도 혼자 받고, 결과도 혼자 들으러 갔다. 남편에게 "괜찮대."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됐다.

뇌 일부가 손상되었다는 말의 의미를 처음엔 잘 몰랐다. 그 결과를 듣고도 뭘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예후에 대해 질문하는 내게 의사 선생님은 장애를 갖고 태어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난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겁이 나서 더 이상 질문할 수도 없어 진료실을 그냥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 병원을 다녀온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처음 다니던 동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하셨다. 어떤 경로였는지는 모르지만, 대학 병원에서 소견서를 써 주었던 병원으로 검사 결과지를 발송한 듯 보였다. 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를 알고 전화를 하신 거였다. 

  "병원에서 지우라고 안 하던가요?" 

  "네, 그런 말 없으셨어요." 

  "아, 그래요?"

잠시 머뭇거리시던 의사선생님은 그대로 전화를 끊으셨다. 그걸로 통화는 끝이었다. 낙태를 한다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 때가 6,7개월 즈음이었고, 약하지만 발차기도 하면서 태동을 느끼던 때였다. 

뱃 속에 있는 아이는 초음파로 간접적인 검사만 가능할 뿐이라 "확실하진 않지만...."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게 의례적인 의사의 답변이었다. 나와 남편은 검사 결과와 달리 건강하게 잘 자라서 태어나길 기도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꼬박 10개월을 채우고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아기는 태어났다. 유도 분만을 하며 20시간 남짓 진통을 겪은 터라 난 기진맥진한 상태로 아이를 낳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무호흡 증세를 보여 바로 중환자실로 옮겼단 얘기를 뒤늦게 전해들었다. 상태는 호전되었지만, 이미 뇌에 이상 소견이 있는 채로 태어났기에 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자연분만으로 3일 만에 퇴원한 나는 아기를 보기 위해 산후 조리도 못하고 매일 택시타고 병원을 오갔다. 그 때만해도 운전을 못 하던 때라 콜택시를 불러 타고 갔다가 면회 시간 30분 동안 아이에게 젖을 물리곤,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중요한 일과였다. 아기도 없는 산모, 아기가 아프다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어 미래를 알 수 없는 산모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친정 엄마가 끓여 준 미역국을 먹다가 엉엉 울고, 젖을 짜다가도 엉엉 울었다. 별 탈 없이 이 땅에 태어난 수많은 아기가, 아기와 함께 퇴원하는 평범한 산모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아픈 아기라 초유는 반드시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 집에 혼자 있으면서도 손으로 가슴을 눌러 팩에 담았다. 첫 아이 출산이라 가슴만 터질듯이 너무 아팠지, 초유는 병아리 눈물만큼 쬐끔씩 나왔다. 그래도 노란 초유를 담은 팩을 얼려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중환자실에 갈 때마다 가져다 주었다. 

태어나자마자 아기는 엑스레이부터 시작해, 온갖 피검사와 MRI검사까지 모두 했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최종 진단이 내려졌다. 

  "오른쪽 뇌 일부가 손상되었습니다."

마디 듣는데 꼬박 15일이 걸렸다. 중환자실에서 이상 해줄 없었다. 이미 속에 있을 뇌출혈이 있었고 모든 피는 흡수 되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뇌는 일부 손상되었으니 앞으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의사의 소견이었다.


그렇게 아기는 15일만에 내 품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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