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소중하다'는 거짓 위로에
속지 말고 살아가세요

이렇게 아픈 삶이라도, 살아갈 이유를 직접 만들어갔으면

by 작은콩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어린 시절 할머니 따라 성당을 다녔었는데 거기서 이 노래를 참 많이 불렀던 것 같습니다. 수련회 가서도 꼭 율동과 함께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이유도 모르고 노래니까 재밌게 불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감동적인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앞으로 자라나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의심하지 않고 험한 세상 잘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던 게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은 살면서 무수히 많은 순간 '내가 왜 사는가'를 고민하게 만들더군요. 살아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많은 인풋이 필요한 일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을 자고 몸을 뉘일 공간은 물론 마음이 원하는 바까지 실현해야 비로소 사람다운 삶이라 부를 수 있으니까요. 그야말로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갑니다. 헌데 그에 비해 병까지 가진 내가 실현할 수 있는 일들은 너무... 너무나도 초라했습니다.


수학을 잘 못하는데도, 삶에 들어가는 인풋과 아웃풋을 비교 계산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었습니다.












옛날 야생에서는 적과 아군이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적인 포식자로부터 생존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고, 살아남아 종족 번영을 이루는 것이 삶의 목표였기에 진정 '살아 있음'이 곧 그 존재의 역할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직접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외부의 적이 사라지면서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그로 인해 개체수가 너무 많아졌고 생명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현대 사회는 인간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죽어도 대체할 인간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언제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해놓고, 정작 살아보니 사랑을 받으려면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야 했습니다. 우리 존재는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잉여 인간이었습니다.

그 허무함과 두려움이 결국 마음을 좀먹는 포식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라진 줄 알았던 그는 사실 우리 내부 마음속으로 들어온 겁니다. 많은 이들이 마음속 우울증으로 고통받게 되었고, '이럴 거면 그만 살아도 되지 않나?' 타당한 삶의 이유를 구하지 못해 제 손으로 삶을 끝내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존재의 이유? 데카르트 같은 유명한 철학자도 존재의 이유를 구했는데, 그런 어려운 질문을 어찌 답할 수 있을까요. 점점 아파지기만 하는 병자에겐 미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숨만 붙어있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아픈 몸을 부여잡고 흐릿해지는 미래를 바라보며 당장 삶이 끝난다면 어떨까 수없이 생각했죠. 생명의 소중함 같은 이야기는 귓가를 맴돌다 저 멀리 흘러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용기 내어 온라인에 그림으로 투병일기를 올렸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많은 사람들이 반응해주고 응원해주면서 작은 즐거움이 생겨났습니다. 쩍쩍 갈라져 모든 것이 메말라가던 일상에 작은 새싹이 피었습니다. 누군가는 내 글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또 누군가는 나 덕분에 용기를 갖고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그 모든 따뜻한 글들이 한 글자 한 글자 방울 되어 내려, 마음을 다시 촉촉하고 생명력 있는 흙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좌절의 늪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 준 건 바로 창작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 여기에 나의 '쓸모'가 있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



자잘한 집안일 같은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노동도 어렵던(즉 돈도 별로 못 버는) 내게도 쓸모가 있다니!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살아있음에 필요한 그 모든 비용이 헛된 것이 아니어서 기뻤습니다. 그때부터 아픈 날에도 덜 외로웠습니다. 내일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이 그저 좋았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삶을 이어나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에겐 '살아갈 이유'가 필요하다.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저자인 폴 칼라니티는 인도 출신 미국인 신경외과 의사였습니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병원의 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 중, 수료를 1년 앞둔 6년 차에 폐암 선고를 받습니다. 당시 여러 유명한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으며 빛나는 커리어의 절정에 있던 상황이었고, 아내 루시와 어린 딸 케이디가 있었습니다. 절망적이었지만 움직일 수 없게 되기 전까지 환자를 돌보았고, 바쁜 와중에도 삶의 마지막을 글로 기록했습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아내가 그의 사망 이후 그가 투병기간 동안 적었던 글을 책으로 엮어 출판한 책입니다.





문학을 전공하려다가 의사, 그것도 힘든 신경외과 의사를 선택했던 그에게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소명이 없었다면, 지켜고 싶은 가족이 없었다면 이렇듯 폐암 투병이라는 거대한 고통 속에서 끝까지 살아낼 수 있었을까요? 이 책에는 어린 딸에게 적은 편지가 있습니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인생의 막다른 순간에선 자신의 존재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는 것을요. 이렇듯 태어난 자체로 자신에게 커다란 행복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딸에게 남김으로써, 어린 딸이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기를 바란 것입니다.








... 결국 이 시기에 내게 활기를 되찾아준 건 문학이었다.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죽음의 그늘이 너무 짙어서 모든 행동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짓누르던 근심이 사라지고,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의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숨결이 바람 될 때] 중, 폴 칼라니티









감동적인 그의 사연만큼 숭고한 가치가 아니어도 됩니다. 평범한 우리가 모두 '인생이란 무엇인가' 같은 심오한 질문에 철학적인 답변을 할 필욘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걸 하기 위해 죽으면 안 돼'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부모가 강한 이유는 지켜야 할 자식이 있기 때문이고, 직장인이 사표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갚아야 할 집 대출이 있기 때문이겠죠.

물론 그것이 과하여 현재의 행복을 놓쳐도 안 되겠지만, 좌절의 순간에 마포대교를 가기 전 한 번쯤 발목을 잡는 것이 되어주지 않을까요.






이 사실을 많은 사람들, 특히 저와 같은 환자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창작을 하는 이유는 좌절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서입니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쓸모없어도 괜찮다'는 공허한 위로에 괜히 헷갈려하다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또다시 좌절하며 삶의 방향을 잃지 않길 바랍니다.(정작 그 책의 저자는 당신 같은 사람을 위로하는 데에서 쓸모를 찾았을 겁니다)


이렇게 아픈 삶이라도, 살아갈 이유를 직접 만듭시다. 그렇게 계속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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