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얼마나 추우려나?
'어둠 속에 있을 때 우리 눈은 보기 시작한다'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
날씨가 부쩍 추워졌습니다.
아침에 길을 나설 때 뺨에 닿는 차가운 공기 냄새에, 패딩을 입고 빠르게 걸어가는 길 풍경에, 길 가다 보이는 붕어빵 트럭에 달라진 계절을 실감합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붉은 단풍잎이 가득했는데, 벌써 겨울이 와 버렸네요. 사실 저는 겨울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습니다.
투병을 하면서 아프던 나날은 마치 겨울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병마가 잠잠하여 꽃 같던 봄날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계절이 바뀌듯 또다시 냉정하게 불어닥치던 통증에 무너져 내리길 수백 번. 약을 먹어도 무엇을 해봐도 듣지 않아 그저 주어진 고통을 감내하는 법 외엔 길이 없었습니다. 춥고 외로운 마음에 그저 바닥에 엎어져 있기도 했지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몸을 달래며 이끌어 할 일을 해냈고, 죽을 것 같은 때에도 침착하게 증상을 완화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마음이 무너질 때는 자신을 다독이며 쉬어갈 줄도 알았고.. 그렇게 밟히면 밟히는 대로 다시 일어났습니다.
약이 이제야 드는 건지 요즘엔 정말로 살만해졌습니다. 아니 사실은 약은 똑같은데, 통증이 귀신같이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류마티스는 파도치는 병이라던가요. 염증이 마구 밀려들어 활성화되었다가, 갑자기 썰물처럼 스윽 사라져 버리곤 하니까요. 지금은 좋은 시기이지만 곧 또다시 겨울이 오겠지요. 하지만 미래야 어찌 되었든 아침마다 생각합니다. '그래도 살아남길 잘했어'라고. 그래서 아침에 맛있는 밥도 먹을 수 있고, 좋아하는 소설도 읽을 수 있습니다. 공기가 맑고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날엔 마음껏 걸으러 나갈 수도 있고요. 저만의 봄날을 즐기는 행복한 요즘입니다.
계절이 몇 번을 바뀌어 벌써 투병이 9년 차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겨울을 몇 번 겪어내었고, 지금은 전보다 훨씬 단단하게 삶에 뿌리를 내렸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전엔 조금만 아파도 눈앞이 캄캄해져 살기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 지금은 글쎄요... 여전히 너무 힘들 땐 삶을 포기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시기만 잘 보내고 나면 또다시 '살아있길 잘했다'는 날이 올 거라는 것을 압니다.
친구와 대화하다가 '회복 탄력성'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넘어져도 다시 올라오는 힘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약한 부분을 안고 있고, 계속해서 장애물에 걸려 넘어집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다시 일어서다 보면 좀 더 빨리, 덜 아프게 일어서는 방법을 나름대로 익히게 된다는 겁니다. 바닥에 주저앉는 것을 이전보다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감정의 변동폭이 줄어들어 안정감을 얻습니다. 강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다 보면 강해지는 거죠.
혹독한 겨울을 치러내고 나면 마침내 봄날이 오고, 깊게 뿌리내린 삶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린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
고된 비바람에 삶을 부여잡는 많은 새싹들이 잘 견뎌내었으면 좋겠습니다. 겨울이 지나 봄에는 더 많은 꽃을 피우고, 더 많은 열매를 맺기를요. 시간이 지나 이 모든 것을 웃으며 얘기하는 그날까지요.
-11월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