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자기 가치를 찾는 법

by 작은콩






■자신의 삶을 의심하고 있다면?


얼마 전, 나와 비슷한 톤을 가진 다른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을 본 적이 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셨는지 팔로워는 적었지만, 그림이 예쁘고 스토리가 공감 가서 얼른 팔로우했다.


그런데 고작 한두 달 뒤 뜬 작가님의 소식이 충격적이었다. 나보다 훨씬 전에 시작하셨는데 이미 팔로워 수에서 나보다 훨씬 앞서 나가셨던 것이다. 거기다 이 분은 회사 다니시면서 취미로 하시는 일인데도! 물론 '아, 이분은 잘 되겠다' 싶긴 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팔로워 수가 목표인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 숫자 크기로 판단받게 되는 SNS 세계에서 이런 비교는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특히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잘 되었다면 그러려니 할 텐데, 내가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분야였기 때문에 더더욱 비교가 뼈아팠던 것 같다.


'나.. 가망성 없는 일에 헛짓하고 있는 건 아닐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테서는 <자기 평가 유지 이론> (Self-evaluation Maintenance Theory)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중요한 일에 있어서는 가까운 사람이 자신보다 더 좋은 성과를 보이는 것에 대해 큰 위협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잘 되길 바라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반대의 감정도 동시에 갖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기 가치가 위협받는 느낌을 '자기 평가 유지 모델'로 이론화하였다.




이런 심리를 가벼운 질투심 정도로 치부하면 안 된다. 이렇게 심어진 작은 감정의 씨앗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침투해 있다가, 마음의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순식간에 자신을 잠식해버리기 때문이다. 자기 정체성과 가치를 의심하는 데에서 시작해 동시에 이런 '유치한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게 큰 실망을 하게 된다.









■자신의 가치를 비교 없이 판단하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외부 자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겠지만, 내가 생각한 방법은 1. 욕심을 덜어내고, 2. 자신이 가진 것을 돌아보는 것이다.




1. 욕심 덜어내기

비교에서 오는 괴로움은 남들보다 우위를 점하고 싶은 욕심에서 오는 감정이다.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똑똑해지고 싶은 마음 말이다. 그런데, 정말 내가 질투하는 그 사람이 가진 것, 내가 갖는다고 행복할까? 아닐 수도 있다. 막상 손에 넣으면 시들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니까.


애초에 그 욕심이 진짜로 내 마음속에서 나타난 건지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고도화된 마케팅과 미디어의 자극에 노출된 사람들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쉽게 똑같이 원하게 된다. 욕심대로 모든 것을 쟁취하는 것이 곧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당신이 아래 2번을 알지 못한다면.





2. 진짜 자신이 가진 것을 돌아보기

이상 속에만 존재하는 나를 잠시 걷어내었다면 이제는 현실 속 자신이 가진 것을 돌아볼 차례다. 나의 경우 복잡하게 멀리 갈 것 없이, 매일 눈을 뜨고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고통 없이 평안한 상태'가 바로 내가 가진 것이다.


병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몰랐던 시절, 아침마다 관절은 퉁퉁 부어 비명을 질렀고, 종아리에는 칼을 넣어 쑤시는 듯한 근육 신경통이 있었으며, 체력이 갑자기 꺼지듯이 사라져 길에 주저앉아 숨쉬기도 어려웠던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은 백만장자도 그다지 부럽지 않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건강한 사람들이 똑같은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자신이 가진 것이 디폴트였고, 그 이상 먼 곳만을 바라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건강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지금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가치 있는 것이 되는구나. 시간이 많기만 하면 좋은 게 아니라,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가치 있게 쓸 수 있구나. 돈이 많기만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돈의 소중함을 먼저 알아야 그것이 가치가 되는구나.


난 이미 가치 있는 것을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그동안 몰라봤을 뿐.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소유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당신의 손에 무엇이 있든, 그것을 당신이 돌아보아야 의미가 생긴다.















류마티스 관절염 발병 후, 경쟁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남들이 다 고속도로에서 빵빵거리며 아웅다웅 달려갈 때 한적한 국도로 혼자 빠져나왔다.

물론 여전히 달려가고 싶었지만 몸이 그만큼의 속도를 견뎌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자기 평가에서 좀 자유로워진 부분도 있다. '난 아프니까 이만큼만 하는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편안하진 않았다. 세상은 병자라고 봐주진 않더라. 나 혼자 너무 세상 안일하게 사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자신을 괴롭혔다. 환자에 대한 비교 기준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평가하는 방법은 온전히 직접 정해야만 했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에 이 병은 너무 무거웠고, 그렇다고 나만의 속도에 맞춰 살기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간격 속에서 늘 괴로워했다.






마음가짐을 바꾼 이후, 내가 가졌던 것들-그동안 냉대받아 초라했던-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일'이 되었다. 왜냐하면 가지고 있는 건강함과 시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들을 사랑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는데 돌이켜보니 이게 자존감이라는 거더라.



이제는 비교에 조금 면역이 생겼다. 물론 한참 모자라고 부족한 것을 알지만, 그래도 가진 것이 이것뿐이니 소중히 여길 수밖에. 신기한 것은 이렇게 나만의 것을 찾아내자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좋아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혼자 알던 장점 정도였는데, 그걸 모두가 와서 사랑해 주니 진짜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마치며


비교를 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지구 반대편의 소식까지 몇 분 만에 접할 수 있다. 세상에서 누가 제일 '잘 나가는지', 누가 '쉽게 벼락부자가 되었는지', 누가 제일 '똑똑한지'. 비교는 순식간에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는 끊임없이 의식을 깨워 지치게 만든다.


이것은 성과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정신건강에 치명적이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상품이 되어 끊임없이 외부의 기준에 따라 평가받는다. 부와 명예, 실력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 우선순위가 매겨지기 때문에 누가 우위에 있느냐가 결국 자신의 가치와 직결된다. 당신이 괴로운 것은 속이 좁아서가 아니라 현대 경쟁사회 탓이며, 잘못된 기준 탓이다.





이런 세상인데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 발전이 없지 않냐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기준에서 다른 이를 이겨서 행복을 얻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후자는 끊임없이 괴로울 가능성이 커진다. 왜냐하면 위로 향하는 비교는 끝이 없을 테니까.


혹자는 질투심을 통해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데, 삶은 그냥 살아내는 것이지 발전에 목적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을 때 내가 좀 더 발전할걸, 하고 후회하기보단 어차피 죽을 거 그냥 좀 더 행복하게 살걸, 이라고 생각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내게 발전이라는 것은 어제보다 더 자신다운 삶을 찾는 것, 그것뿐이다.





당신이 삶을 의심하지 않으면 좋겠다. 가만히 바르게 앉아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내 힘으로 꼿꼿이 선 척추뼈와 움직이는 심장을 하나하나 느끼며 살아있다는 걸 느껴보기를. 살아 있는 것이 삶이다. 이것이 의미가 있는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 우리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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