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의 굴레

by 작은콩






"니가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한 건 내 탓인가부다."


저녁을 같이 먹다가 문득 엄마가 저런 말을 툭, 던진다. "너는 원래부터 좀 몸이 약했어. 어릴 땐 비염이랑 코피를 맨날 달고 살았고, 이도 그렇게 잘 썩었고. 한때는 입에 구내염도 엄청 심했었잖아."

그랬다. 난 원래부터 좀 아픈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는 비염이 심해서 이비인후과를 제집 들듯 드나들었는데도 맨날 콧물이 질질 나서 애들이 코흘리개라고 불렀던 것 같다. 당시엔 특히 코가 약했던 것인지 코피도 엄청 잘나서, 눈싸움한다고 누가 던진 눈 뭉치에 스쳤다가(맞은 게 아니라 정말 살짝 스쳤는데!) 코에서 피가 후드득 떨어진 적도 있었다. 시험공부한다고 밤을 새운 것도 아닌데 책 보다가 갑자기 투툭, 떨어지면 코피였다.(덕분에 선생님들께 성실한 모범생(?)으로 알려졌다.) 멍도 엄청 잘 들어서 어디 부딪히지 않아도 자꾸만 커다란 멍이 허벅지 중간에 떡하니 생기곤 했다. 이빨은 또 얼마나 잘 썩는지! 썩은 이 치료비로 치과에 기둥 하나쯤은 세워주었을 것이다. 그땐 몰랐다. 이것들이 면역 이상의 신호들이었다는 걸.



'신체발부는 수지 부모라'

몸은 부모님께 받은 것이므로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날 때부터 슈퍼 불효녀인 셈이다. 늘 건강치 못한 몸으로 부모님께 걱정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냥 좀 허약한가 보다 했던 애가 결국은 자가면역질환까지 걸려서 지금은 나이 지긋하신 부모님이 내 수발을 들어주시는 지경이다(뭐 직접 밥 먹여주고 똥 치워주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결국 난 부모님께 큰 의존을 하며 산다). 번듯하게 자리 잡는 모습은커녕 맨날 골골대는 모습만 보여드려서 죄스러운데, 반대로 엄마는 다 큰 딸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미안하다고 했다. 약한 몸을 줘서, 그리고 어릴 때 더 신경을 못 써줘서.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늘 죄인이다.








■야, 너두 나을 수 있어. 이것만 사면.


죄책감 같은 약한 감정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용해먹기 딱 좋은 사냥감이다. 의료 관광을 포함한 의료 시장은 미래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한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서 적었으나 쉽게 말하자면 몸도 마음도 약해져 있는 병자와, 그 병자를 약점으로 둔 가족들은 뭔가 팔아먹기에 아주 적합한 대상이란 뜻이다. 그래서인지 아픈 이의 주변에는 수많은 유혹이 넘쳐난다.


아프고 나서 보니 세상엔 참 많은 치료법이 있더라. 병원에서는 약만 먹으면 나아질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약만 먹고 완치한 사람은 없었다.(남는 것은 약에 대한 내성과 부작용뿐...) 결국 민간요법과 한방에 의존하게 되는데, 누구는 식단을 조절하면 된다고 하고 누구는 '관절 팔팔 보*웰리아'를 먹으라 하며 누구는 18시간 단식을 하면 면역세포가 리부팅된다고 했다. 아니 아예 모든 것을 다 놓고 시골 가서 요양하며 살라고도 했다. 어떤 한의사는 자기 한약만 먹으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건강한 사람이 들으면 '요즘 세상에 누가 저런 걸 믿고 돈을 써'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린 정말 간절했기에 허투루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가족들의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가족들은 나를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꺼내 주고자 이 미심쩍은 민간요법 중에서 뭐라도 찾아보겠다고 정신없이 헤맸다. 먹으면 나아진다는 영양제를 덥석 사고, 비싼 pt권을 끊기도 하고... 효과가 있다는 방법은 한 번쯤 해보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불확실한 희망을 사는 동안 누군가는 배를 불렸다.


사람이 사기에 당하게 되는 것은 멍청해서가 아니라 '간절해서'라고 한다. 돈 사기는 그만큼 돈이 간절하게 필요했던 사람이라서, 건강식품 사기는 그만큼 병이 나아지고 싶었던 사람이라서. 다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발버둥 치다가, 타이밍 좋게 미끼를 던진 이들에게 낚여버린 것이다. 근데 (어쩌면 당연하게도) 큰 효용이 없으면, 또다시 왜 더 좋은 선택을 하지 못했었는지 자신을 탓하는 것으로 되돌아온다. 그럼 또 누군가가 희망을 팔러 오겠지. 그렇게 자본주의 시장은 굴러가고, 환자는 이 탓의 굴레에서 끝없이 뱅뱅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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