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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Aug 28. 2022

닮은 듯 다른

무더운 날씨 탓에 아이스크림을 찾는 아이들과 가게에 들렀다. 첫째가 묻는다.

“몇 개 사?”

“세 개만 사.”

별생각 없이 그냥 뱉은 말이었다. 하나는 적고, 다섯 개는 많은 거 같아서. 설마 딱 세 개만 살까 싶어서. 몇 개 더 산다고 조르면 못 이기는 척 얼마든지 더 사 줄 심산으로.

“세 개 다 골랐어.”

‘응? 이게 아닌데.’

넘어갈 수밖에 없게끔 나름의 애교를 부려가며 몇 개 더 산다고 떼쓰는 반응을 예상했건만. 동생은 옆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이스크림을 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몇 개 더 사도 되냐는 말을 어떻게 안 할 수가 있지. 정말 그 정도로 만족해서였을까. 아님 더 사고 싶다는 말을 꾹 참았던 걸까.  


      

“친구들 있는지 나가서 찾아보고 놀다 올게. 몇 시까지 와?”

“30분만 놀다 와.”

“네, 차 조심하고 위험한 곳 안 가고 재밌게 잘 놀고 올게요.”

전화벨이 울린다. 집에 오기로 약속한 시간이 10여 분 남았을 즈음.

“엄마, 시간 조금만 더 주면 안 돼요?”

“어디야? 뭐하고 노는데?”

듣자 하니 술래잡기 비슷한 놀이를 하는 중인데 무척 재미있는지 집에 빨리 오기 아쉬운 모양이다.

“10분만 더 놀다 와.”

“네, 고맙습니다.”

기쁨에 찬 목소리로 전화를 끊는다. 단 10분을 허락받고도.    


     

“엄마, 공원 쪽 가도 돼요?”

“공원 가려면 길도 건너야 하는데 그냥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지, 왜.”

“친구들이 공원 간다는데 같이 가고 싶어.”

“누구누구 있어? 가서 뭐 할 건데?”

“그네도 타고 축구도 한대.”

“알았어, 그럼. 차 조심하고.”

“응. 차 잘 보고 건너고 조금만 놀다 올게.”

신이 나서 친구들을 향해 같이 가자고 외치는 소리가 미처 끊어지지 않은 전화기를 통해 들린다.        


 

떠올랐다. 나의 어린 시절이. 놀다 보니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이 되어 전화기를 빌렸다. 조금만 더 놀다 가면 안 되냐고 물어보려고.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 친구들을 뒤로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오후 6시면 집에 가야 하는 고등학생이었다. 더 어린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는 실컷 놀게 해주고 싶었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 만큼.     


“당연히 들어주겠지만 아이에게 계속 관심을 보이고 귀찮게 하세요. 30분이 한 시간 되고 한 시간이 두 시간 되는 건 금방이에요. 언젠가는 들어주겠지만 늦출 수 있는 만큼 최대로 늦추세요. 계속 귀찮게도 하고 관심도 보여야 느껴요. 부모의 사랑을.”

부모 교육 강의를 듣기 전에는 흔쾌히 들어주었는데 요즘은 일부러 늦추는 중이다. 30분 허락하고 싶은 것도 10분만.         



놀러 나간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대체 전화를 몇 차례나 하는 건지. 물론 어디서 누구와 무얼 하는지 밝히는 것이 당연하지만. 매번 그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한 번쯤은 묻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은데. 생각은 이렇게 해도 막상 또 말도 없이 다른 곳 가고, 약속 시간보다 집에 늦게 오면 다그쳤을지도.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시도 때도 없이 말한다. 뜬금없이. 갑자기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에 쳐다보면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거나 손가락 하트를 날려준다. “사랑해”라는 말과 함께. 이렇게 수시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는 아이들은 원하는 만큼 사랑이 충족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던데. 자신이 먼저 말을 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을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라고. 그렇기에 부모가 먼저 해주어야 한다고 들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쉽지 않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내가 어릴 때 우리 엄마와 많이 닮았다. 무뚝뚝하고, 표현 못 하고. 마음과 다르게 말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첫째에게.    


그래도 엄마보다는 내가 낫다. 사랑한다는 말에 “엄마도 사랑해”라고 맞장구치고 또 아주 가끔씩은 아이보다 먼저 얘기할 때도 있으니까. 내가 먼저 사랑 표현을 할 때면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행복해다.     


이유가 무엇이건 먼저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손을 잡아주는 아이가 나보다 나은 지도. 나는 생신이나 어버이날 같은 기념일에 편지를 쓰며 형식적으로 덧붙였을 뿐 말로 전해본 적은 없는데. 같이 걸을 땐 손잡을 용기를 내지 못해 종종걸음을 걸어야 했고. 자식과 걸을 때조차도 속도를 맞출 줄 모르고 엄청 빨리 걷는 엄마 뒤를 쫓아가느라.     


아이와 나 그리고 어린 시절 나와 엄마의 모습은 닮은 듯 다르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뜨거운 마음만큼은 꼭 닮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에게 느꼈던 감정과 마찬가지로 아이도 내가 무서운가 보다. 아이스크림 몇 개 더 산다는 말도 삼킬 만큼. 사소한 것도 일일이 물어보고 허락을 구할 정도로.         


오늘도 반성과 다짐을 동시에 한다. 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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